비자, 미국 오픈뱅킹 사업부 전격 폐쇄…은행–핀테크 간 데이터 갈등 격화

[리드] 글로벌 결제네트워크 기업비자(Visa Inc.)미국 내 오픈뱅킹 사업부를 공식적으로 폐쇄했다. 이는 은행과 핀테크 기업 사이에서 고객 데이터 접근권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나온 결정이다.

2025년 8월 22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사업부는 핀테크 업체들에게 은행 데이터를 간편하게 연결·활용할 수 있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도구를 제공해왔다. 이러한 도구는 이용자 가입 절차를 간소화하고 자금 이체를 원활하게 만들어, 핀테크 서비스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최근 JP모건체이스(JPMorgan Chase)와 PNC파이낸셜(PNC Financial)을 포함한 대형 은행들이 데이터 접속 비용 부과 방안을 공식 거론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블룸버그가 7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는 핀테크 파트너사들에 “비(非)무상” 정책을 통보하며 상당한 수준의 수수료를 예고했다. PNC의 빌 뎀첵(Bill Demchak) 최고경영자 역시 동일한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픈뱅킹이란 무엇인가?

오픈뱅킹(open banking)은 은행이 보유한 거래 내역·잔액·신용 데이터 등을 API 형태로 제3자 기업(주로 핀테크)에 공유하도록 해 금융 서비스 혁신을 촉진하는 제도적·기술적 프레임워크다. 고객은 권한만 부여하면 자신이 이용하는 여러 은행 정보를 한눈에 조회하거나, 별도의 서비스에서 손쉽게 송금·투자·대출을 받을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2018년 시행된 PSD2(지불서비스지침 2)를 통해 은행의 데이터 개방을 의무화했으나, 미국은 아직 명확한 연방법 규제가 마련되지 않았다.

“은행들은 데이터 보안 유지를 위한 비용 회수를 주장하지만, 핀테크 업계는 고객이 소유한 정보에 요금을 매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한다.”

실제로 벤처캐피털 대형사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의 알렉스 램펠(Alex Rampell) 파트너는 은행 측 수수료 정책을 “오퍼레이션 초크포인트 3.0”*역사적 맥락상 정부가 특정 산업의 금융 접근을 제한했던 전략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비자, 글로벌 전략 방향 전환

비자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처럼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시장에 오픈뱅킹 전략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은 규제 기반이 이미 자리 잡았고, 브라질·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 주요국 역시 데이터 포터빌리티(data portability) 법제화를 진행 중이어서 확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규제 공백이 장기간 지속돼 왔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금융보호국(CFPB)개인금융정보 공유 규정(Section 1033)을 재정비하겠다고 예고하면서 법·제도적 틀이 조만간 명확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문가 시각과 향후 전망

업계 분석가들은 비자의 이번 결정이 단순 사업 정리라기보다는 규제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는 데 공감한다. 실제로 미국 내 핀테크 기업 상당수는 은행들과의 데이터 계약 재협상 과정에서 비용 상승서비스 중단 위험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오픈뱅킹 주도의 금융 혁신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다만 CFPB의 규정 개정이 빠르게 진행돼 데이터 이용 표준화·수수료 상한선 등이 명문화될 경우, 비자의 미국 복귀 카드가 다시 거론될 여지도 남아 있다. 한편, 은행권과 핀테크 간 ‘데이터 비용 분담’ 논의가 자율적으로 타결된다면 시장 교착 상태가 조기 해소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이번 사태는 금융데이터의 소유·통제 권한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다시 한 번 부각시켰다. “데이터는 고객의 것이며, 고객을 위한 혁신”이라는 핀테크 진영의 주장과, “데이터 보호 투자 비용을 무상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은행권 논리가 미국 금융규제 체계 안에서 어떻게 조율될지가 향후 수년간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 Operation Chokepoint는 2013~2015년 미국 법무부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무기·포르노 등 고위험 산업을 대상으로 은행 계좌 개설을 사실상 제한한 정책을 일컫는다. 알렉스 램펠은 은행 수수료 부과를 통해 핀테크 기업의 사업 모델을 옥죄는 현 상황을 이에 빗댔다.

※ 본 기사에 사용된 모든 기업명, 인용문, 통계 및 날짜는 로이터(Reuters) 원문 기사를 근거로 하며, 추가적인 추정·가공 정보는 포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