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가 2007년 두 채의 주택을 동시에 ‘주거용(주거지)’으로 신고한 사실이 블룸버그 통신의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 같은 행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 이사 리사 쿡 해임을 시도하면서 ‘모기지 사기’라고 규정했던 사례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25년 9월 17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베센트 장관은 뱅크오브아메리카와 맺은 모기지 계약서에서 뉴욕 주 베드퍼드힐스 주택과 매사추세츠 주 프로빈스타운 주택 모두를 각각 ‘주거용(primary residence)’으로 기재했다. 이는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곳을 ‘주요 거주지’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모순된 서약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가 입수한 서류에 따르면, 2007년 9월 20일 베센트 측 변호사는 두 채 모두를 향후 1년간 그의 ‘주거지’로 사용할 것이라고 서약했다. 다만 모기지 전문가들은 “문서상 불일치(incongruity)는 드문 일이 아니며, 이번 사례만으로 불법·사기 여부를 단정하긴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우리는 베센트 장관이 두 주택 모두를 실제로 상시 거주지로 사용할 것이라고 전제하지 않았다”
고 설명했다. 즉, 은행은 대출 심사 과정에서 해당 서약을 필수 요건으로 삼지 않았다는 의미다.
베센트 장관 측은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즉각 답변하지 않았다.
정치적 파장
베센트를 임명한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행정부 인사들은 민주당 출신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지명한 쿡 이사가 취임 전 모기지 사기를 저질렀다고 주장해 왔다. 쿡 이사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1913년 제정된 연방준비제도법은 중앙은행을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유가 있을 때(for cause)’에 한해 대통령이 이사를 해임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사유’의 정의나 절차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지금까지 어느 대통령도 Fed 이사를 해임한 전례가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쿡 이사를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해임하려 했으나, 9월 15일 미 연방항소법원은 해임 불허 결정을 내렸다. 백악관은 이 결정을 연방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법무부는 조지아주와 미시간주에서 대배심 소환장을 발부하며 쿡 이사에 대한 형사 모기지 사기 수사도 개시했다. 로이터가 확인한 애틀랜타 소재 주택 대출 견적서에는 해당 부동산이 ‘별장(vacation home)’으로, 미시간 앤아버 당국 자료에는 기존 주택이 ‘주거지’로 기재돼 있어 세금 규정 위반 사실은 없다고 명시됐다.
‘주거지(principal residence)’ 개념
미국 모기지 계약에서 ‘주거지’는 대출자가 최소 1년 이상 실제 거주하겠다는 의미로, ‘별장’이나 ‘투자용’과 구별된다. 동시에 두 곳을 주거지로 신고하면 서류상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으며, 고의성이 입증될 경우 모기지 사기(mortgage fraud)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실거주 여부를 엄격히 검증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관행적으로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연준 인사가 모기지 사기를 저질렀다면 반드시 조사해야 하며, 그런 사람이 국가 최고 금융 규제기관에서 일해선 안 된다.”
베센트 장관은 2025년 8월 27일 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시장 관계자들은 “베센트 사례 역시 서류상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쿡 이사 해임 근거로 내세운 ‘모기지 사기’ 논리에 흠집이 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베센트 사례가 확대 해석될 경우, 행정부가 중앙은행 인사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에서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번 논란은 연준 독립성을 둘러싼 법적·정치적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대법원까지 갈 경우, ‘for cause’ 조항 해석과 대통령의 해임 권한을 둘러싼 첫 판례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