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ristol Myers Squibb·BMS)가 중국 합작법인 지분 60%를 전격 매각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중국 사업 재편 흐름이 다시 한 번 부각되고 있다.
2025년 9월 17일, 로이터(Reuters) 보도에 따르면 BMS는 1982년 설립된 중·미 합작사 Sino-American Shanghai Squibb Pharmaceuticals Limited(이하 SASS)에서 보유하던 지분 60%를 매각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회사 측은 “글로벌 네트워크 전반에 걸쳐 변화하는 비즈니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자원을 재배치하는 장기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BMS 대변인은 이메일을 통해 “거래 세부 사항은 사내 정책상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영향을 받는 모든 직원들을 지원할 것”이라며 인력 보호 의지를 밝혔다. 그는 “직원들의 기여에 깊이 감사한다”는 입장도 함께 전달했다.
합작법인 SASS의 역사적 의미
SASS는 1982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중·미 합작 제약회사로, 국내 제약산업 현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해 왔다. 2010년 BMS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상하이 생산시설은 중국의 초기 ‘현대식 의약품 제조 기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첨단 제조·품질 관리 기술을 현지에 도입한 공로를 인정받는다.
합작사 생산 라인에서는 당뇨병 치료제 메트포르민(metformin)1과 해열·진통제로 널리 쓰이는 파라세타몰(paracetamol)2 등 다양한 의약품이 공급돼 왔다. 특히 메트포르민은 제2형 당뇨병의 1차 치료제로 권고되는 세계적 블록버스터 약물이며, 파라세타몰은 한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알려진 복통·발열 완화 성분이다.
세계 제약사의 중국 철수 가속화
BMS의 결정은 최근 다국적 제약사들이 중국 사업을 정비하는 움직임과 궤를 같이한다. 로이터는 이번 매각이 ▲공급망 혼란 ▲중국 경기 둔화 ▲국가 의료보험 등재를 위한 가격 인하 압박 등 누적 악재에 따른 방어적 행보라고 평가했다. 앞서 스위스계 산도즈(Sandoz), 벨기에 UCB도 중국 내 자산 매각 또는 구조조정을 발표한 바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 시장의 성장성은 여전히 높지만, 현지 규제·가격 정책 변화 속도를 감당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슬림화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의약품 국가보험(의보) 목록 편입 시 약가를 대폭 인하하는 정책을 지속해 왔으며,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서 현지 제조·물류 비용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BMS의 장기전략과 향후 변수
BMS는 최근 몇 년간 항암제·면역항암제와 같은 고부가가치 치료제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편해 왔다. 이번 SASS 지분 매각으로 확보할 현금은 ▲혁신 신약 연구개발(R&D) ▲고수익 신시장 투자 ▲주주환원 정책 등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관측이다.
다만 계약 조건·매각가·거래 완료 시점 등 핵심 지표는 비공개인 탓에 시장 파급 효과를 가늠하기까지는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 또 매각 후에도 SASS의 나머지 40%를 보유한 중국 파트너사가 어떤 경영 전략을 선택할지에 따라, 해당 생산시설의 고용·공급망·의약품 접근성에 변수가 남는다.
글로벌 제약 M&A 시장에서는 중국 자산의 ‘저평가 매물’이 늘어난 만큼, 재무적 투자자(PEF)나 현지 제약사 인수 경쟁이 가열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대형 제약사가 떠난 공백을 중국 로컬 기업이 메우는 ‘리버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전문가 시각·전망
“BMS의 이번 매각은 단순 현금화 작업을 넘어, 글로벌 제약사와 중국 정부가 그려 왔던 ‘윈윈 모델’의 균열을 시사한다. 중국 의약품 시장은 여전히 성장성이 있지만, 규제 리스크와 가격 압박이라는 이중 난관을 관리할 거버넌스가 관건이 될 것” — 상하이 소재 헬스케어 컨설팅업체 파트너
전문가들은 ‘중국 리스크 프리미엄’이 제약·바이오 밸류체인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본다. 이에 따라 글로벌 빅파마가 고위험·저수익 사업을 현지 파트너에게 넘기고, 연구·임상·상업화 외부 협업(오픈 이노베이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결국 BMS의 SASS 지분 매각은 중국 내 생산 거점 축소라는 차원을 넘어, 글로벌 제약 비즈니스 모델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향후 중국 정부의 의약품 가격 정책, 지분 매입 주체, 공급망 안정 대책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관련 종목 변동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메트포르민: 인슐린 분비 촉진 없이 혈당을 낮추는 경구용 제2형 당뇨병 치료제.
2 파라세타몰: 해열·진통·소염 효과를 가진 일반의약품 성분으로, 한국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