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발 로이터 통신 — 브라질 재무장관 페르난두 하다드가 11일(현지시간)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와 진행할 예정이던 화상 회의가 전격 취소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안이 양국 간 통상 협상에 “중대한 후퇴”를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2025년 8월 11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회의는 원래 13일 수요일로 잡혀 있었으나 회의 이틀 전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보냈다. 브라질 정부는 즉각 대체 일정을 요청했지만, 현시점에서 “새 날짜는 전혀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 하다드 장관의 설명이다.
브라질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브라질산 상품 여러 품목에 부과한 50% 고율 관세 문제를 협상하려 했으나, 대화 채널 자체가 봉쇄되면서 협상 기회를 놓쳤다. 하다드 장관은 글로보뉴스(GloboNews) 인터뷰에서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보지도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워싱턴에는 자국 이익을 해치는 ‘가짜 브라질인’들이 있다. 그들이 로비를 벌인 결과, 정작 정부 대표단은 대화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 페르난두 하다드 브라질 재무장관
이번 관세 인상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우 동맹이자 브라질 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에 대한 재판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파급력이 크다. 보우소나루는 2022년 대선 패배 후 쿠데타 시도 혐의로 기소돼 있으며, 이를 둘러싼 긴장감이 무역 현안까지 확전된 셈이다.
특히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아들인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 하원 의원은 3월부터 미국에 체류하며 ‘사법 방해에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제재를 촉구하는 로비 활동을 이어왔다. 하다드 장관은 별도 브리핑에서 “국회의원의 개인적 행보가 국가 전체 무역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 정부는 대미 수출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동남아 시장을 보다 공격적으로 개척할 것”이라며, 메르코수르(Mercosur)와 유럽연합(EU) 간 무역협정을 조속히 타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다드 장관은 “해당 협정은 이미 20년 넘게 표류 중이지만, 지금이야말로 막판 스퍼트를 가할 때”라고 말했다.
[용어 풀이] 메르코수르란 아르헨티나·브라질·우루과이·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이 결성한 관세동맹으로, 역내 관세를 없애고 역외 공통관세를 적용해 시장 통합을 추구한다. 실제 발효 시 EU·메르코수르 FTA는 전 세계 인구 7억 7,000만 명, GDP 20조 달러 규모의 거대 자유무역지대를 형성할 전망이다.
하다드 장관은 이어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약 1만 개 브라질 기업이 직접 타격을 받게 됐다”면서, 대책 패키지를 담은 대통령령을 조만간 발동하겠다고 예고했다. 핵심 골자는 수출보증기금(FGE) 개편, 특정 정부 구매 지원, 그리고 낮은 금리의 유동성 공급으로 요약된다.
수출보증기금(FGE)은 브라질이 1997년부터 운용해 온 대외수출보험제도로, 수출업체가 해외 거래에서 겪는 파산·환변동·정치적 리스크를 정부가 대신 떠안아 주는 구조다. 하다드 장관은 “제도의 노후화로 보증 한도와 프로세스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보증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인허가 시간을 단축하겠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브라질 경제가 이미 고금리와 환율 변동성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어, 관세 충격까지 더해지면 중소 수출업체가 가장 먼저 흔들릴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무역분석가 파울루 알비스는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흐름 속에서 브라질은 지정학적 ‘틈새’에 놓여 있다”며, “관세가 장기화될 경우 일부 기업은 아예 생산 기지를 동남아나 멕시코로 이전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 브라질 헤알화(Real)는 올해 들어 달러 대비 8% 약세를 기록해 수출가격 경쟁력을 일정 부분 상쇄했지만, 관세 50%라는 추가 부담은 기업 수익성을 근본적으로 압박한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재무부의 재정 대응, 외교부의 통상 교섭이 ‘삼각편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충격 완화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기자 해설] 이번 사태는 무역정책과 내정(보우소나루 재판)이 뒤엉키면서 외교·경제 라인을 동시에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회의 취소가 단순 일정 조정에 그치지 않고 협상 동력 자체를 꺾을 가능성이 크기에, 브라질 정부는 동남아 및 유럽 시장 다변화 전략을 단기간에 현실화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상파울루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정부가 관세 문제를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시나리오도 검토할 수 있지만, 분쟁 절차가 2~3년 소요될 수 있어 단기 처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브라질이 과거 항공·설탕 보조금 분쟁에서 WTO 승소 판정을 받았음에도, 그동안 쏟아진 비용과 시간은 상당했다.
결국 브라질이 직면한 과제는 두 갈래다. 첫째, 미국과의 교역 구조를 재편해 단기 충격을 흡수하는 동시에, 둘째, 메르코수르·EU·동남아 등으로 시장을 넓혀 ‘탈미국 의존’을 가속화해야 한다. 하다드 장관은 “단일 해법은 없다. 다각적·병행적 대응만이 1만 개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유일한 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