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 미국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사들이 용량 확대와 비용 상승에 대한 업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올해 구속력 있는 장기 판매계약(SPA)을 역대 두 번째로 많이 체결할 전망이다.
2025년 11월 6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미국 LNG 생산업체들은 올해 들어 10월까지 연간 2,950만 톤(mtpa) 규모의 판매·구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이는 2024년 한 해 체결된 700만 톤의 4배 이상이며, 컨설팅사 라피단 에너지 그룹(Rapidan Energy Group)의 집계에 따른 것이다.
이들 SPA는 최장 20년에 이르는 고객 고정 물량을 근거로 프로젝트의 현금흐름 창출 능력을 입증해 자금조달을 뒷받침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라피단 에너지에 따르면, 미국 수출업체들이 더 많은 구속력 계약을 체결했던 유일한 시기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였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분산을 모색하는 다수의 구매자들은, 미국 LNG 개발사들이 천연가스를 액화해 선박으로 운송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과정에서 부과하는 액화 수수료 인상을 감수하고 있다. 또한 LNG 트레이딩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기업들 역시 미국산 물량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미국 LNG 증설 가속… 글로벌 공급과잉(글럿) 우려 부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재집권 이후 친(親) 석유·가스 행보를 강화했다. 그는 유럽과의 통상 협상에서 LNG 거래를 촉진했으며, 유럽은 미국산 에너지 7,500억 달러어치 구매에 합의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시행했던 신규 LNG 수출 프로젝트 승인 유예를 해제했다.
이후 최종투자결정(FID)이 잇달아 이뤄지며, 연간 6,150만 톤(mtpa)의 신규 LNG 생산능력이 기존 연간 1억2,000만 톤 규모의 수출 기반에 추가될 예정이다. 올해만 해도 치니어 에너지(Cheniere Energy), 벤처글로벌(Venture Global), 셈프라(Sempra), 넥스트 디케이드(Next Decade), 우드사이드 에너지(Woodside Energy)가 새로운 설비를 승인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의 전체 LNG 처리·수출 능력이 2029년까지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이면 미국이 전 세계 LNG의 3분의 1을 수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빠른 LNG 증설은 글로벌 공급과잉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가격 하방 압력이 예상된다. IEA의 사다모리 게이스케 에너지시장·안보국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미국과 카타르 등에서 새로운 공급이 시장에 진입함에 따라 가격에 하방 압력이 가해질 것이다. 이는 전 세계 가스 수입국들에 반가운 완화를 제공할 것”
토탈에너지(TotalEnergies)와 셸(Shell) 등 생산업체들도 LNG 가격 하락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우드사이드와 벤처글로벌 등 신규 수출 설비에 투자한 일부 투자자들은 공급과잉 우려가 과장됐다고 본다. 우드사이드 CEO 메그 오닐은 9월 행사에서 “우리는 장기 LNG 수요에 매우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벤처글로벌 CEO 마이크 세이블은 데이터센터 확산과 아시아 국가들의 석탄에서 LNG로의 전환이 수요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로이터에 “데이터센터는 대규모의 신규 수요 원천이 될 것이며, 오늘날 가스 생산능력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밝혔다.
건설비 급등… 액화 수수료 인상으로 채산성 방어
포튼 앤 파트너스(Poten and Partners)의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총괄 제이슨 피어에 따르면, 숙련 인력 부족에 따른 노동비 인플레이션과 관세로 인한 설비 가격 상승이 건설비를 밀어올리고 있다. 토탈에너지 CEO 파트리크 푸야네는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일부 프로젝트의 비용이 최대 20%까지 상승해, 채산성이 떨어지는 사례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벤처글로벌은 연 2,720만 톤 규모의 플라크마인스(Plaquemines) LNG에서 비용 초과를 보고했다. 엑손모빌(Exxon Mobil)과 카타르에너지(QatarEnergy)의 합작인 골든패스(Golden Pass) 프로젝트도 예산을 초과하고 일정이 지연되는 중이다.
개발사들은 프로젝트의 경제성을 지키기 위해 액화 수수료 인상을 추진해 왔고, 지금까지는 대체로 수용되고 있다. 피어는 평균적으로 지난 2년 대비 약 15% 상승했다고 전했다. 벤처글로벌은 신규 계약에서 mmBtu당 2.30달러의 액화 수수료를 책정한다. 이는 칼카슈패스(Calcasieu Pass) 초기 계약 당시 mmBtu당 1.75달러에서 인상된 것이다(가격에 정통한 복수 소식통 인용).
치니어 에너지(미국 최대 LNG 생산사)는 mmBtu당 2.75달러 초과의 프리미엄을 부과하고 있다. 우드사이드는 10년 만기의 신규 계약을 mmBtu당 약 2.90달러 수준에서 제시 중이라고 피어는 덧붙였다. 참고로 2023년 시장 평균 수수료는 mmBtu당 2달러였다.
높아진 수수료에도 ‘계약 공백’은 제한적… 다만 개발 ‘윈도우’는 축소 가능성
라피단 에너지의 글로벌 가스 디렉터 알렉스 먼튼은 비용 상승과 글로벌 가격 하락 가능성을 감안할 때, 현 시점에서 미국 내 추가 LNG 프로젝트 개발 여지는 줄어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강세 국면은 언젠가 끝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ENI와 페트로나스(Petronas)를 비롯한 구매자들은 액화 수수료 상승과 스팟 가격 약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장기 계약을 적극 체결하고 있다. 일본의 대형 전력사 JERA는 호주 의존도를 낮추고, 데이터센터·AI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산 가스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토탈에너지의 푸야네는 거대 플레이어들이 수수료가 오르더라도 거래용 물량을 미리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이 커질수록 트레이딩과 차익거래(arbitrage) 기회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IEA는 시장이 다소 완화되더라도, 가격 민감도가 높은 동남아 국가들이 석탄에서 LNG로 전환할 기회를 넓혀 글로벌 LNG 수요를 견인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용어 풀이 및 맥락
mtpa는 ‘연간 백만 톤(million tonnes per annum)’ 단위를 의미한다. mmBtu는 ‘백만 BTU(British thermal unit)’로, 가스 거래의 열량 기준 가격 단위다. SPA(판매·구매계약)는 장기 물량·가격·인도조건을 명시하는 구속력 계약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핵심 근거가 된다. 액화 수수료는 토탈 비용 중 액화 설비 이용에 대한 ‘톨링’ 형태의 비용으로, 허브 가격(Henry Hub 등)과는 별개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FID는 사업 착수의 최종 의사결정으로, 장기 계약과 원가·금융 조건이 충족될 때 내려진다. 차익거래는 지역 간 가격 차를 활용한 트레이딩 전략이다.
기자 분석: 가격-수수료의 ‘이중 축’과 수요의 질적 변화
현재 미국 LNG의 수익성 방정식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첫째, 액화 수수료의 구조적 상향이다. 건설·조달·시공(EPC) 비용이 최대 20% 상승한 환경에서, 개발사들은 수수료를 약 15%가량 인상해 내부수익률(IRR)을 방어하고 있다. 이는 계약 기반 현금흐름을 강화해, 고금리 국면에서도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가능케 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수요의 질적 다변화다. 전통적 유틸리티 외에, 데이터센터와 AI로 대표되는 전력 수요의 구조 변화가 LNG의 ‘기저 수요’를 두텁게 한다. 아시아의 석탄 대체 흐름과 맞물리면, 공급과잉 사이클에서도 가격 하방 경직성이 일부 형성될 수 있다. 반면, 미국 내 가스 생산능력과 파이프라인 병목, 장비·노동의 공급망 제약은 증설 속도를 제한하며, 이는 과도한 가격 붕괴를 완충할 가능성이 있다.
요컨대, 단기적으로는 수수료 인상과 거래 전략이 프로젝트 경제성을 받치고, 중기적으로는 미국·카타르 신증설이 스팟 가격에 하방 압력을 줄 공산이 크다. 다만, 장기 계약의 확대와 포트폴리오 트레이딩은 사이클 변동성을 흡수하는 완충재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주요 전력·도시가스, 트레이딩 하우스, 국영 석유·가스기업은 가격 레벨보다 물량 확보에 우선순위를 두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