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미 재무부 장관 스콧 베슨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대규모 관세의 합법성이 미 연방대법원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동시에 최종 판결이 불리할 경우를 대비한 ‘플랜 B’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2025년 9월 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베슨트 장관은 솔리시터 제너럴(정부측 상고 담당)의 상고 준비를 위해 직접 법률 의견서를 작성 중이다. 해당 문서에는 수십 년간 누적된 무역 불균형의 시급성과 치명적 마약 펜타닐 유입 차단의 필요성이 강조될 예정이다.
앞서 8월 29일 연방순회항소법원(워싱턴 D.C. 소재)은 11명 중 7명의 다수 의견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다수 관세를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행정부에 상고 기회를 주기 위해 10월 14일까지 관세를 유지하도록 허용했다.
관세 분쟁의 핵심 쟁점
문제가 된 관세는 크게 두 갈래다. 첫째, 2025년 4월 ‘상호주의 관세’라는 명분으로 대부분 교역 상대국에 부과된 폭넓은 관세다. 둘째, 2월에 중국·캐나다·멕시코에서 들어오는 펜타닐 성분 차단을 목표로 도입된 별도의 관세다. 이번 판결은 이 두 세트에 초점을 맞췄으며, 철강·알루미늄 등에 적용된 다른 법적 근거의 관세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IEEPA는 ‘이례적·중대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을 명시한다”고 베슨트는 강조했다. 그는 “대법원이 이를 지켜줄 것이며, 혹여 아닐 경우에도 다른 수단이 있다”고 말했다.
플랜 B: 스무트-호얼리법 338조
베슨트 장관이 언급한 예비 카드 중 하나는 1930년 스무트-호얼리 관세법 338조다. 이 조항은 외국이 미국 상공업에 차별을 가할 경우, 최대 50%의 추가 관세를 최대 5개월간 부과하도록 허용한다.1
IEEPA란?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은 국가비상사태 선포 시 대통령에게 경제 제재·관세·자산 동결 등 광범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9·11 테러, 이란 제재 등 역사적으로 여러 행정부가 활용해 왔으나, 광범위한 관세에 사용된 것은 이례적이다.
‘펜타닐’이 부른 비상사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매년 약 7만 명이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사망한다고 집계한다. 베슨트는 “이것이 국가 비상사태가 아니면 무엇이냐”며 IEEPA 사용의 정당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무역적자의 ‘임계점’이 임박했다”고 경고하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주택시장 과열을 조기 진화했더라면 위기를 피했을 것”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들며, 선제적 관세 조치가 경제 파국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정치적 파장
일각에선 관세 정책이 러시아·중국·인도 등 ‘비(非)서방’ 국가의 공조를 부추긴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베슨트는 20개국 정상이 참석한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 대해 “연례행사에 불과한 퍼포먼스”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그는 “인도와 중국이 러시아 전쟁 기계에 연료를 공급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미국과 동맹이 결국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이는 인도에 대해 25% 추가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유럽에 설득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중국에 대한 동일한 압박 가능성은 “논의하지 않는다”며 즉답을 피했다.
시장·법조계 관전 포인트
현재 관세는 10월 14일까지 유지된다. 대법원이 9명의 대법관 중 과반 찬성으로 관세를 확정하거나 무효화할 수 있으며, 결정은 글로벌 공급망·주요 지수·원자재 가격에 큰 파급을 줄 전망이다.
필자의 분석으로는, IEEPA의 모호한 ‘비상사태’ 정의를 고려할 때 관세의 전면 무효화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다만 대법원이 행정부 재량 범위를 일부 축소하거나, 조항별로 차등 판단할 여지도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관세 리스크 관리 전략을 조정하고, 투자자들은 4분기 실적 가이던스에 통상·제조 원가 변수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한편, 법조계에선 ‘행정입법 체계 내 견제와 균형’이 핵심 논점으로 부상했다. IEEPA·338조 등 의회가 위임한 포괄적 권한을 행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활용할 수 있을지, 이번 판결이 주요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1 스무트-호얼리 관세법(1930)은 세계 대공황 시기 미국 내 산업 보호를 위해 도입됐다가, 보호무역주의 심화로 세계무역 위축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