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발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네덜란드 반도체업체 넥스페리아(Nexperia)의 중국 내 생산시설이 곧 선적(Shipment)을 재개한다고 발표할 계획이다. 이 같은 결정은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직면해 온 심각한 칩 부족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중대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2025년 10월 3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넥스페리아는 네덜란드 본사에서 생산된 대량의 반도체를 중국 공장에서 패키징한 뒤 글로벌 유통사에 공급해 왔다. 1 전체 생산량의 약 70%가 중국에서 패키징되며, 그중 상당 부분이 자동차·소비자 전자 제품용 칩으로 쓰인다.
분쟁의 발단은 지난 9월 30일 네덜란드 정부가 중국 Wingtech Technology로부터 넥스페리아 지분을 강제 관리하면서 비롯됐다. 당시 네덜란드 당국은 “Wingtech이 자사의 선진 패키징 기술을 부당 취득할 우려가 있다”며 중국 국적 CEO를 해임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중국 상무부가 10월 4일부로 넥스페리아의 대중국 수출을 전면 차단했다.
“네덜란드 정부의 조치는 미국 측 압력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내려진 것”이라는 법원 제출 서류가 공개됐다. 이는 Wingtech이 미국 수출제한 리스트(Restricted-Export List)에 올랐기 때문으로, 네덜란드 정부는 ‘지배구조 취약성’을 공식 사유로 들었다.
로이터가 확보한 10월 31일 자 고객 서한에 따르면, 넥스페리아는 중국 조립 공장으로의 웨이퍼 공급을 일시 중단했으며, 이는 이미 불안정한 자동차용 칩 공급망을 더욱 압박할 위험이 있었다. 실제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신차 생산 계획을 수시로 조정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비상경보’…Stellantis·닛산까지 예의주시
글로벌 자동차 연합체 스텔란티스(Stellantis)는 10월 30일 “사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워룸(war room)을 가동했다”고 밝혔다. 이 그룹은 지프(Jeep)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피아트(Fiat) 브랜드 등을 거느리고 있으며, 부품 단가 및 납기 지연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본 완성차 업체 닛산자동차(Nissan)도 “11월 첫 주까지는 칩 재고가 충분하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생산 라인 중단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패키징’과 ‘수출제한 리스트’란 무엇인가?
패키징(packaging)은 웨이퍼(반도체 원판)에 회로 선을 연결하고 보호 소재로 밀봉해 최종 칩 형태로 완성하는 공정을 말한다. 설계·웨이퍼 제작보다 인력 비용 비중이 커 중국, 말레이시아 등 저비용 국가에 주로 위치한다. 수출제한 리스트는 미국 상무부가 국가안보·정책 목적상 통제 대상 기업을 지정해 핵심 기술 이전을 제한하는 제도다.
시장·정책적 함의
전문가들은 백악관의 선적 재개 승인을 통해 단기적으로 자동차·가전 업계의 생산 차질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중국-네덜란드-미국 간 기술·안보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가속화하면서, 향후 유럽 기업에 대한 지분 규제나 기술 이전 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미국 정부가 같은 날 공개할 대중(對中) 무역정책 팩트시트에 ‘공급망 안정세 확보’가 주요 목표로 명시될 경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은 어느 정도 속도 조절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패키징 같은 ‘뒤단 공정(back-end process)’이 지정학적 갈등의 인질이 된 사례”라며 “장기적으로는 동남아·동유럽 등 제3 지역에 생산 거점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자 시각·전망
이번 건은 단순히 한 기업의 패키징 라인 재개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와 산업 정책이 교차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국가별 ‘첨단기술 보호주의’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공산이 크며, 기업들은 정책 리스크 관리를 전사적 차원에서 구축해야 한다. 실제로 넥스페리아 사례는 공급망 이중화와 합작·투자 구조 개선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결국, 이번 선적 재개 조치가 글로벌 칩 부족 사태를 일시적으로 완화하겠지만, 향후 미중·EU 간 기술 패권 경쟁이 ‘디지털 냉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동차·전자·통신 업계 모두 지정학 리스크를 상시 관리할 수 있는 다층적 공급망 전략이 요구된다.
※ 로이터 원문 기사: David Shepardson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