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약·화학 대기업 바이엘(Bayer AG)이 미국 내 폴리염화비페닐(PCB)* 관련 소송에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며 투자자들의 기대를 자극했다. 19일 유럽 증시에서 바이엘 주가는 장 초반 한때 3% 넘게 급등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2025년 8월 1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워싱턴주 몬로 소재 스카이 밸리 교육센터(Sky Valley Education Center)에서 제기된 소송 가운데 200여 명의 원고를 포괄하는 ‘원칙적 합의(agreement in principle)’ 형태로 체결됐다. 이는 회사가 안고 있던 PCB 관련 법적 부담을 단계적으로 줄여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PCB란 무엇인가?
PCB는 1929년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절연유, 열전달제, 플라스틱 가소제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인공 화학물질이다. 안정성과 절연성이 뛰어나 산업계에서 애용됐으나, 체내 축적과 발암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1979년 미국 환경청(EPA) 등 주요 규제기관이 제조·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잔류성 유기 오염물질(POPs)로 분류된 후에도 토양·수계·실내 공기 등에 장기간 남아 건강·환경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합의 규모와 재무 영향
바이엘 측은 구체적인 합의금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증권사 제프리스(Jefferies)는 투자 노트에서 “이번 합의 및 향후 발생 가능한 추가 비용은 2025년 2분기 실적에 반영된 5억3,000만 유로(약 7,790억 원) 규모의 PCB 충당금 안에서 모두 충당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해당 충당금에는 이미 ▲버크(Burke) 사건 ▲관련 행정비용이 포함돼 있어, 추가 현금 유출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법적 리스크 완화 신호
제프리스는 “이번 합의는 장기간 발목을 잡아온 PCB 소송 리스크를 관리 가능한 범위로 축소하는 단계적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9건의 이전 불리한 평결—49명의 원고가 포함—은 여전히 항소 절차에 남아 있어 일정 수준의 불확실성은 지속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워싱턴주 대법원에서 계류 중인 ‘에릭슨(Erickson) 사건’의 결과도 향후 손실 인식 규모를 가를 주요 변수로 꼽았다.
“전반적으로 이번 합의는 바이엘이 PCB 관련 후속 손실 ‘팽창(swelling)’ 위험을 줄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조치” — 제프리스 보고서 중
연이은 악재 속 ‘작지만 의미 있는’ 반전
바이엘은 지난해부터 제초제 ‘라운드업(RoundUp)’ 발암 논란, 혈우병 치료제 임상 중단, 농업 부문 실적 부진 등으로 연타를 맞으며 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 가운데, 2025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제약 부문 매출 상향 조정과 함께 PCB 소송 충당금 계상 사실을 공개하며 ‘리스크 투명성’을 강화했다. 시장은 이를 법적·재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정리하려는 신호로 해석했고, 이번 합의 발표는 그러한 전략이 실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추가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전문가 진단과 향후 관전 포인트
① 이번 합의를 통해 바이엘은 단일 교육기관을 둘러싼 대규모 소송군을 정리함으로써 비슷한 유형의 계류 사건에서 ‘선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② 충당금 범위 내 해결이라는 점은 현금흐름 안정성에 긍정적이다.
③ 그럼에도 항소 중인 평결이 뒤집히지 않을 경우 손실이 확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워싱턴주 대법원의 판단은 업계 전반의 책임범위를 재정의할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④ 제프리스는 “PCB 소송 노출도가 장기간 주가 디스카운트 요인이었음을 고려하면, 점진적 해결이 이뤄질수록 밸류에이션 정상화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투자자에게 주는 시사점
국내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중요성이 급부상하면서, 해외 종목을 편입할 때 잠재적 환경 소송 리스크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이엘 사례는 장기간 방치된 환경 리스크가 얼마나 큰 재무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울러 사후 충당금 설정과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주가 변동성과 투자 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재확인됐다.
*주요 용어 해설
폴리염화비페닐(PCB) : 209가지 동족체(congener)로 이뤄진 합성 유기화합물. 인체에는 간·피부·면역·내분비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3년 PCB를 인간 발암물질(Group 1)로 재분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