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 거점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영국계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미국의 엘라이 릴리(Eli Lilly)가 잇따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의약품에 대한 고율 관세를 검토 중인 가운데 ‘제조 리쇼어링(역외 생산기지 복귀)’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2025년 9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들어 12개 이상의 글로벌 제약사가 미국 투자를 선언했으며, 총 투자 규모가 3,500억 달러(약 469조 원)를 넘어섰다고 집계했다. 이는 2020년대 들어서만 누적된 금액으로, ‘관세 충격’을 선제적으로 완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WSJ는 “관세율이 최대 250%까지 단계적으로 인상될 수 있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며, 제약사들이 생산·공급망·연구개발(R&D)을 포함한 전방위 투자를 통해 비용 부담을 상쇄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고 전했다.
GSK, 5년간 300억 달러 투자 계획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GSK는 향후 5년간 미국에서 300억 달러(약 40조 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12억 달러는 필라델피아 교외에 신설될 공장 건설에 사용된다. 해당 공장은 호흡기 질환 및 항암 치료제를 전문 생산할 예정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이며 연구·임상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다. 현지 투자를 통해 환자 접근성을 높이고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 — GSK 대변인
Eli Lilly, 버지니아주에 50억 달러 공장 신축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소재 엘라이 릴리는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인근에 50억 달러(약 6조 7천억 원) 규모의 신규 생산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완공 시점에는 약 650명의 고급 인력을 신규 채용해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ies)·바이오콘주게이트(bioconjugates) 등 첨단 바이오의약품을 집중 생산할 계획이다.
단일클론항체는 특정 항원을 겨냥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맞춤형 단백질 치료제’이며, 바이오콘주게이트는 항체에 화학 약물을 결합해 약효를 극대화한 차세대 플랫폼 의약품이다. 두 기술 모두 차세대 항암·면역치료제 개발에서 핵심으로 꼽힌다.
트럼프發 고율 관세 추진 배경
미 행정부는 ‘무역확대법 232조’를 토대로 제약 부문에 대한 별도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8개월 내 최대 250% 관세”를 언급하며, 자국 내 일자리 창출과 공급망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업계는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해외 생산 의약품의 미국 판매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압박은 글로벌 제약사 전략에도 뚜렷한 변곡점을 가져왔다. 일부 기업은 해외 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하고, 미국 내 기술·인력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관세가 실제로 인상되면, 미국 내 생산 비중이 10년 안에 60%까지 높아질 가능성”을 전망했다.
전문가 분석 및 전망
헬스케어 컨설팅사 IQVIA는 이번 투자 러시를 ‘포스트 팬데믹 공급망 재편’과 연결 지었다. 2020년대 초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의약품 공급망이 교란되면서, 미국 정부는 핵심 의약품의 자국 생산을 장려하는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켜 왔다.
시장 전문가들은 “대규모 투자는 초기 고정비 상승을 유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관세·물류·환율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가 크다”고 평가한다. 또한 바이오·제약 분야 고급 일자리 창출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고율 관세가 실제로 시행될 경우 해외 의약품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보험료 부담, 환자 약가 상승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기에 유럽연합(EU)·아시아 국가들이 보복 관세로 대응할 경우, 글로벌 제약시장 전반의 가격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결론
미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관세 정책·공급망 재편·첨단 바이오 기술 투자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GSK와 엘라이 릴리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의 3,500억 달러 규모 투자는 이러한 트렌드를 상징하는 사례다. 앞으로 실제 관세 부과 여부, 투자 실행 속도,세제·규제 인센티브의 구체화가 기업 전략과 시장 지형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