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발 ― 미 행정부가 기후 변화로 인한 금융리스크 관리 체계를 대폭 축소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열린 미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 공개회의에서, 위원회는 기후 리스크 관련 두 개 자문·실무위원회(Climate-Related Financial Risk Committee, Climate-Related Financial Risk Advisory Committee)의 설립 근거 조항을 만장일치 구두표결로 폐기했다.
2025년 9월 1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조치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Scott Bessent)이 이끄는 “기본으로 돌아가기(back to basics)” 규제 기조의 일환이다. 베센트 장관은 “은행과 대출기관의 자본 규제 부담을 완화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명확한 목표 아래, 기후 부문의 감독 기능을 사실상 접기로 했다. 이는 전임 재닛 옐런(Janet Yellen) 장관이 추진해 온 ‘기후 리스크의 제도권 편입’ 노선을 뒤집는 결정으로 평가된다.
■ 위원회 해산 배경과 절차
FSOC는 연방준비제도(Fed),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15개 금융 규제당국 수장을 망라한 최고위 금융 리스크 감독 기구다. 이날 회의에서 위원들은 반대·기권 없이 두 자문위원회 해산을 의결했으며, 그 즉시 시행된다고 명시했다. 베센트 장관은 “핵심적인 금융안정 과제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취지로, 기후 이슈를 보조적 사안으로 격하했다.
■ 전임 행정부의 ‘기후 금융’ 구상, 사실상 백지화
재닛 옐런 전 장관 재임 시절인 2021년 3월, FSOC는 기후 변화가 초래할 허리케인·산불·홍수 등 극단적 재난이 국가경제·자산가치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기후 관련 금융 리스크 위원회(CRFRC)와 ▲기후 관련 금융 리스크 자문위원회(CRFRAC)를 공식 출범시켰다. 두 기구는 은행·보험·모기지 시장의 기후 리스크 노출도 산정, 시나리오 스트레스 테스트 방법론 연구, 디스크로저(공시) 기준 마련 등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베센트 장관은 “경제 성장과 소비자 보호라는 본연의 책무에 집중해야 한다”며 기후 전담조직을 전면 해체했다. 그는 “과도한 규제는 자본활동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중소은행·지방 금융회사의 기후 공시 부담을 예로 들었다.
■ 공공이익 단체의 반발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 리스크로부터 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마저 무너뜨리고 있다.”Tracey Lewis, Public Citizen
시민단체 퍼블릭시티즌(Public Citizen)의 트레이시 루이스(Tracey Lewis) 정책고문은 “기후 재난이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 연구가 중단되면 주택담보대출, 보험시장, 금융규제 전반에서 시스템 안전성이 심각하게 후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비은행권 ‘시스템 중요성’ 재정의 추진
이날 FSOC 내부 프레젠테이션에 따르면, 위원회는 비은행 금융회사(예: 대형 자산운용사, 보험사)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으로 지정하는 기존 지침도 재검토할 계획이다. SIFI로 지정되면 자본·유동성·거버넌스 규제가 대폭 강화되므로, 규제 완화론자들은 이 기준 자체가 성장 저해 요인이라고 본다.
■ 용어·제도 해설
FSOC는 2010년 도드-프랭크(Dodd–Frank)법에 따라 설립된 기구다. 금융시장 전반의 ‘그림자 위험’을 포착해 시스템 리스크를 예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SIFI(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는 파산 시 전염효과가 커 ‘대마불사’(too big to fail) 우려가 있는 기관을 뜻한다.현재 미국 내 은행 8곳, 보험사 2곳이 SIFI로 분류
■ 시장·정책적 함의
1) ESG·기후 공시 의무 축소 : 은행·보험사가 시행해 온 내부 ‘탄소 스트레스 테스트’ 및 포트폴리오 공개 범위가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2) 자본 규제 완화 : 리스크 가중자산(RWA) 산정에서 기후 관련 프리미엄이 제외되면, 대출여력이 확대돼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3) 신재생에너지 투자 동력 약화 : 연방 차원의 정책 신호가 약화되면서 민간 투자자들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상승,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질 우려가 제기된다.
■ 기자 시각: ‘규제 피로감’ vs ‘체계적 리스크’
베센트 장관의 입장은 금융권 규제 피로감을 해소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기후 리스크는 ‘블랙스완’이 아닌 ‘그레이스완’이라는 지적도 동시에 제기된다. 이미 보험업계는 허리케인·산불 위험지역에서 신규 인수·갱신을 중단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으며, 이는 부동산 가치 하락→대출 자산 부실→지역은행 재무건전성 악화라는 전이경로를 통해 금융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 한국 금융당국 역시 2022년부터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범 도입했으나, 미국발 규제완화 흐름이 글로벌 공시 기준 마련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
※ 이 기사는 국제 금융 규제 환경 변화가 한국 투자·정책 환경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기 위해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