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국가들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 즉각 보조를 맞추며 자국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이번 조치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등 6개국의 정책금리는 일제히 낮아졌다.
2025년 9월 1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연준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25bp(0.25%p) 인하했다. 이 같은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임명했던 연준 이사들의 다수가 찬성하면서 이뤄졌다.
걸프 산유국들은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자국 통화를 미국 달러에 페그(고정환율)하고 있어, 연준의 금리 방향을 통상적으로 그대로 따른다. 단, 쿠웨이트 디나르만 달러를 포함한 통화바스켓에 연동돼 있어 결정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각국 금리 인하 세부 내역
사우디아라비아 (중동 최대 경제 규모) : 레포(Repo) 4.75%·리버스레포 4.25%
UAE : 오버나이트 예치기준금리 4.15%
카타르 : 예치 4.35%·대출 4.85%·레포 4.60%
바레인 : 오버나이트 예치 4.75%
쿠웨이트 : 디스카운트 3.75%
오만 : 레포 4.75%
레포(Repo)·리버스레포(Reverse Repo)란?
레포는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단기 유동성을 공급할 때 적용하는 금리, 리버스레포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단기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금리를 뜻한다. 두 금리는 시중 자금조달 비용과 예금 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실물경제에도 파급된다.
금리 인하 배경과 기대 효과
걸프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률 덕분에 금리에 여유가 있었지만, 비(非)석유 부문 성장 촉진이라는 중장기 전략을 앞당기기 위해 차입 비용 인하가 필요했다. 부동산·관광·제조업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의 자금조달 환경 개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사쏘뱅크 중동·북아프리카 트레이딩 총괄 함자 드웨이크는 “연준의 인하 직후 나타나는 즉각적 효과는 공공·민간 부문의 차입 비용 감소“라며 “재정 여력과 투자 확대를 동시에 지원해 광범위한 경기부양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통상적으로 연준 완화는 달러 약세와 동반되는데, 이는 국제유가에 우호적일 수 있어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의 수출 증가를 도울 것”이라면서도 “다만 글로벌 수요 변화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지속되는 만큼, 원자재 시장 불확실성은 여전히 핵심 리스크”라고 강조했다.
경제 다각화(Diversification)와 금리
걸프 국가는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비전 2030’(사우디), ‘경제 다변화 전략’(UAE) 등 야심 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들 프로젝트는 수천억 달러 규모로, 낮은 금융비용이 투자 타당성을 높인다. 금리 0.25%p 인하는 표면상 미미해 보이지만, 대형 프로젝트 파이낸싱 총액에는 막대한 이자 절감 효과를 가져온다.
한편 로이터가 7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증산 계획과 다각화 정책을 감안할 때 걸프 대부분 국가의 2025년 경제성장률은 2024년보다 빨라질 전망이다. 이는 낮아진 금리와 결합해 성장 모멘텀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전망과 과제
금리가 인하됐음에도 불구하고 중동 금융권은 여전히 글로벌 금융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미국이 추가 인하를 단행할지, 혹은 물가 재상승으로 긴축으로 돌아설지에 따라 걸프 중앙은행들도 즉각적인 대응을 요구받을 것이다. 또한 실물경제로의 자금 전달 속도, 부채 확대에 따른 금융 안정성 유지가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높아진 유동성이 부동산 과열을 재연할 수 있는 만큼, 주택담보대출(LTV) 등 거시건전성 규제를 병행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특히 사우디 리야드, 두바이, 도하 등 주요 도시의 주택·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이미 팬데믹 이전 수준을 상회하고 있어 정책당국의 세밀한 관리가 요구된다.
기자 해설
이번 동시금리 인하는 달러 페그제를 고수하는 걸프 통화체계의 특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례다. 달러 중심 국제통화질서가 흔들릴 때마다 걸프 국가들은 ‘금리 주권’과 ‘환율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구조적 고민을 안게 된다.
그러나 국제 원유 수요 구조가 친환경 전환으로 빠르게 바뀌는 현 시점에서, 이들 국가가 금리 정책을 발 빠르게 조정하고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능력은 석유 이후 시대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