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원, 베네수엘라 PDVSA 2020년 채권 유효 판결…시트고 경매 절차 속도

미국 연방법원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가 2020년에 발행한 담보부 채권의 유효성을 다시 한 번 인정함에 따라, 미국 내 최대 자산인 시트고 페트롤리엄(Citgo Petroleum)의 향방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 캐서린 폴크 파일라(Katherine Polk Failla) 판사는 ‘PDVSA 2020 채권’이 베네수엘라 법률에 따라 적법하게 발행됐다고 판시했다. 이 채권은 시트고 지주사 지분(50.1%)에 근질권을 설정해 놓은 점이 특징이다.

PDVSA는 2019년 해당 채권을 디폴트(채무불이행) 처리하면서, 휴스턴에 본사를 둔 시트고가 압류될 위험에 놓였다. 이번 판결은 디폴트 이후 채권자·피압류 기업·미국 정부 간 얽히고설킨 법적 분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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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고는 미국 내 7위 규모의 정유사로, 총 3개의 정유시설(루이지애나·일리노이·텍사스)을 통해 하루 80만 배럴가량을 처리한다. PDVSA가 100% 출자한 해외 자회사이지만, 2019년 1월 미 재무부의 대(對)베네수엘라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사실상 베네수엘라 반(反)정부 임시정부 측 관리·감독 하에 놓였다.

PDVSA(베네수엘라 석유공사)란? 국영 석유·가스 개발·수출을 총괄하는 에너지 공기업으로, 베네수엘라 재정 수입의 90% 이상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유가 하락과 내부 부패, 국제 제재가 겹치면서 부채 규모가 급증했고, 2017년부터 줄줄이 채무를 불이행했다.

이번 뉴욕 판결과 동시에 델라웨어 지방법원의 리어나드 스타크(Leonard Stark) 판사는 시트고 모회사 PDV Holding Inc.의 주식을 매각하기 위한 경매 절차를 마무리 짓기 위해 최종 심리를 진행했다. 스타크 판사는 파일라 판결의 영향을 검토하기 위해 잠시 휴정을 선언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 심리를 재개했다.

“오늘 판결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유감스러운 결과다. 우리는 즉각 항소할 것이며, 항소 근거도 충분하다.” — 호라시오 메디나(Horacio Medina) / 시트고 감독이사회 의장

델라웨어 법원 경매에는 15개 기업·채권자 그룹이 참여해 시트고 지분을 노리고 있다. 주요 후보로는 캐나다 광산업체 골드 리저브(Gold Reserve)의 자회사와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Investment Management)의 계열사 앰버 에너지(Amber Energy)가 거론된다. 앰버 측은 총 21억 달러에 달하는 채권자 합의안을 제시, 유력 인수후보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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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 판사는 심리 재개 후 골드 리저브 측이 제기한 ‘앰버 입찰 무효’ 요청을 기각했다. 동시에 경매 관리인 로버트 핀커스(Robert Pincus)가 체결했던 골드 리저브와의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지하고 앰버와 새 계약을 체결하라고 지시했다. 골드 리저브는 곧 서면 판결문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앰버 측은 언론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이번 델라웨어 경매 절차는 지난해 10월 이후 3차례의 입찰 라운드를 거쳤지만, PDVSA 2020 채권에 대한 법적 지위가 불투명해 매각가 산정 자체가 꼬였다. 파일라 판결로 채권 유효성이 확정된 만큼, 입찰가 조정·종료 시점이 조만간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제중재(Arbitration)란? 외국 정부가 투자자 자산을 국유화하거나 계약을 위반했을 때,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절차다. 베네수엘라는 2000년대 들어 국유화 정책을 추진하며 다수의 다국적 기업을 몰수했고, 그 결과 150건 이상의 중재 패소·배상 명령을 받았다.

채권자와 피압류 기업들은 미국 뉴욕·델라웨어·워싱턴D.C. 등 각지 법원에서 베네수엘라 해외 자산을 노려왔다. 시트고는 ‘최후의 현금창구’로 불리며, 실제 영업현금흐름(EBITDA)이 2023년 36억 달러에 달한다. 한편 베네수엘라 야권은 자산 보호를 명분으로 ‘임시정부 보유 자산 신탁’을 설립했으나, 이번 판결로 방패가 약화될 전망이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파일라 판결이 시트고 경매 지연 사유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며 “연내 매각 완료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중립적 분석을 내놨다. 다만 베네수엘라 정부(니콜라스 마두로 행정부)는 미국 자산 압류가 불법이라며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혀, 외교·법적 공방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용어 풀이 및 배경]

1 PDVSA 2020 채권: 2020년 만기, 금리 8.5%의 달러 표시 담보부 채권으로, 시트고 지주지분 50.1%를 근질권으로 제공.
2 근질권(pledge): 채권자가 채권 담보로 제공받은 자산을 점유한 뒤, 채무자가 변제하지 않을 경우 이를 처분할 수 있는 권리.
3 델라웨어 Chancery 법원: 미국 기업 분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으로, 신속·전문적 판결로 유명.

베네수엘라 국채와 PDVSA 채권은 2017년 이후 일제히 디폴트 상태다. 국제 신용평가사 S&P는 2019년 1월 PDVSA 신용등급을 ‘D(채무불이행)’로 강등했으며, 미국 투자자는 오브리지게이션 오브 세컨더리 마켓(secondary market)에서 평균 15~20센트 수준으로 거래해 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베네수엘라 채무 재조정 전체 로드맵에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한다. 미국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이상, PDVSA가 직접 시트고 인수를 되찾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과적으로 채권자·투자펀드 간 ‘경매 수익 분배’ 협상이 향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본 기사는 원문 로이터 기사 ‘Judge declares Venezuelan bonds valid, creditors press for Citgo auction resolution’를 번역·정리한 것이다. 모든 수치는 로이터가 인용한 법원 문서 및 관계자 발언을 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