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발 메모리 반도체 이슈가 다시 한 번 글로벌 증시의 초점을 끌어당겼다. 워싱턴의 대(對)중국 수출 규제가 한층 강화되면서 국내 양대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2일 나란히 하락세를 보였다.
2025년 9월 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두 회사가 그동안 받아 왔던 대중(對中) 반도체 장비 공급 특별 허가를 전격 취소했다. 120일의 유예 기간 후에는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 내 생산시설로 반입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이번 조치로 SK하이닉스 주가는 5% 급락했고, 삼성전자 주가는 2.6% 하락했다. SK하이닉스는 전체 DRAM·NAND 생산량의 30%~40%를 중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DRAM 생산은 주로 국내에서 이뤄지지만,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NAND 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제조하고 있어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니다.
미국 규제의 핵심 배경
2022년 10월부터 시행된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는 인공지능(AI)·슈퍼컴퓨팅·군사용 고성능 칩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당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른바 ‘특별 예외 허가’(Temporary Authorisation)를 받아 중국 공장에 한해 미국 장비를 계속 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
“며 이번에 그 예외조차 철회했다.
메모리 업계에서 두 기업이 차지하는 시장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두 회사는 DRAM 시장점유율 약 70%, NAND 시장점유율 54%를 합쳐 보유하고 있다. DRAM은 데이터센터와 AI 서버의 주 메모리로 쓰이며, NAND는 스마트폰·SSD 같은 저장 장치에 필수다.
단기 영향과 장기 변수
NH투자증권 류영호 수석연구원은 “단기 파장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이미 차세대 생산라인 투자를 국내에 집중하고, 중국 공장은 현 상태를 유지해 왔다
“고 분석했다. 다만 류 연구원은 중국 의존도가 낮은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중장기적으로 시장점유율 확대라는 반사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는 “한국 및 미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사업 영향 최소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별도 논평을 내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장비 수급이 차질을 빚을 경우, 양사가 중국 로컬 장비 업체와의 협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2·3차 파급 효과
이번 규제 강화는 국내 패키징·조립 및 후공정 장비 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하나마이크론 주가는 2.2%, 한미반도체는 4.8% 각각 하락했다. 이들 업체 역시 중국 고객사 비중이 높은 만큼 장비·소재 공급망 차질 우려가 동시에 부각됐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반도체 수입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구상을 재차 언급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공장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일시적 면제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 해설: DRAM·NAND가 무엇인가
DRAM(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은 휘발성 메모리로,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진다. 대용량·고속 특성 때문에 AI·클라우드 서버의 운용에 필수다. NAND 플래시는 비휘발성 메모리로, 전원이 차단돼도 데이터가 유지돼 스마트폰 저장 공간이나 SSD에 사용된다. 따라서 양대 제품 모두 현대 IT 생태계의 핵심 기반이다.
제조 장비 측면에서, 미세 공정을 구현하려면 극자외선(EUV) 노광기, 화학기상증착(CVD) 장비 등 첨단 설비가 필수다. 미국과 네덜란드·일본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미국 수출 통제가 곧 ‘생명선’ 차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향후 관전 포인트
① 120일 유예 기간 동안 삼성·SK하이닉스가 얼마나 많은 장비를 선제적으로 반입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② 미 의회의 대중 전략이 지속될 경우, 한국 정부도 외교·통상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 ③ 중국 로컬 장비 업체의 기술 독립 가속 여부가 중장기 경쟁 구도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메모리 업계 관계자는 “
단기적으로는 생산 차질보다 심리적 충격이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지도가 재편될 수 있다
“고 내다봤다.
국내 투자자들은 이에 따라 국내 설비 투자 확대, 미국 내 파운드리·패키징 공장 건설 등 기업 전략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동시에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변동성이 커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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