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에서 난디타 보스·맥스 A. 체르니 기자가 전한 바에 따르면, 미국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이 CHIPS 법(정식 명칭 CHIPS and Science Act)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들의 지분을 정부가 직접 취득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2025년 8월 1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러트닉 장관은 이미 현금 보조금과 맞바꾸는 형태로 인텔에 대한 10% 지분 투자를 추진 중이며, 이를 마이크론(NASDAQ: MU), 타이완반도체제조(TSMC), 삼성전자(KS: 005930) 등 다른 주요 수혜 기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총 527억 달러(약 70조 원)에 달하는 CHIPS 법 자금의 대부분이 아직 집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러한 논의에 탄력을 주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인텔의 운영 방식을 세세히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미 정부가 민간 반도체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이전에도 미국 정부는 경기 침체·금융 위기 상황에서 기업 지분을 매입해 신뢰를 구축한 사례가 있으나, 이번처럼 산업정책 차원에서 대규모 첨단 제조업체에 사전 투자하는 방식은 사실상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이는 이전에 시도된 적 없는 창의적 접근”이라고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리빗은 19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현재 CHIPS 법 최대 수혜 기업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이다. 삼성전자는 논평을 거부했고, 마이크론·TSMC·백악관 역시 질의에 즉답하지 않았다. 두 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도 협의에 참여하고 있으나, 주도권은 러트닉 상무장관이 쥐고 있다고 전해졌다.
주요 수치 및 기업별 지원 규모
상무부는 지난해 말 삼성전자에 47억 5,000만 달러, 마이크론에 62억 달러, TSMC에 66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확정했다. 러트닉 장관은 올해 6월, 바이든 행정부 시절 약속된 일부 지원을 ‘과도하게 관대했다’며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마이크론이 미국 내 공장 투자액을 확대하겠다고 제안했다”고 언급했다.
‘골든 셰어’란 무엇인가?
골든 셰어(golden share)는 특정 기업의 경영 의사 결정—시설 이전·폐쇄, 고용 감축, 투자 지연—을 정부가 거부할 수 있는 특수 주식을 의미한다.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닛폰 스틸의 US 스틸 인수를 승인하며 받았던 조건도 이 골든 셰어였다. 이러한 선례가 이번 CHIPS 법 지원 기업 지분 확보 전략에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장·안보적 함의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직접 반도체 공급망의 ‘지분 참여자’로 나서면, 전략산업 통제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다만 정부 간섭이 과도해질 경우 기업의 의사 결정이 느려지고, 민간 자본 유치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책 효과가 실현되더라도 실질적인 기술 개발과 시설 완공에는 수년이 걸리므로, 시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리스크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한편, 글로벌 파운드리 지형을 주도하는 TSMC와 삼성전자가 미국 내 생산시설 확충에 나서면, 반도체 설계(팹리스)·제조(파운드리)·메모리 전 분야에서 미국 내 공급망이 더욱 견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만 해협 및 한반도 지정학 위험에 대한 헤지 전략이자,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의 핵심 축으로서 의미가 크다.
종합하면, 러트닉 장관의 지분 투자 구상이 실현될 경우, 정부-기업 간 새로운 파트너십 모델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단순 보조금·세제혜택에 머물렀던 첨단산업 지원책이 ‘지분 참여’ 형태로 진화한다면, 향후 배터리·AI·첨단 소재 등 다른 전략 산업으로 정책 수단이 확장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