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전 르네상스, 마지막 퍼즐은 ‘폐기물’이다: AI 전력 수요와 함께 커지는 기회·리스크의 장기 등식
이중석 칼럼니스트·데이터 분석가
요약: 전력대란의 유혹과 폐기물의 현실
미국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급증과 제조 리쇼어링의 결합으로 전력 수요가 급팽창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25년간 원전 전력 생산을 4배 확대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표명했고, 웨스팅하우스 모회사인 카메코(CCJ)와 브룩필드 애셋 매니지먼트가 참여하는 800억 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그램이 발표되는 등 산업계의 물적·재정적 동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내 가동 중인 94기 원자로가 여전히 전력의 약 20%를 공급하는 현실, 그리고 1967~1990년 사이 건설된 노후 설비의 교체·연장 수요를 감안하면 ‘원전 르네상스’라는 표현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이 호황의 뒤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라는 가장 오래된 숙제가 자리한다. 유카 마운틴 영구 처분장 중단 이후, 미국은 39개 주 79개 부지에 95,000미터톤 이상의 사용후핵연료를 사실상 ‘분산 임시 저장’하는 상태다. 1998년 이후 납세자 부담 손해배상금만 누계 111억 달러, 향후 총액이 445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은 정책 타이밍 지연의 비용을 수치로 환기한다. 이 칼럼은 AI 전력 수요의 폭증과 함께 재부상한 원전이 미국 주식·경제에 미칠 장기 함의를, ‘폐기물 해법’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축으로 분석한다.
1. 데이터로 본 ‘르네상스의 조건’
1) 정책·산업 동향
- 정책 가속: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25년간 원전 전력 생산 4배 확대를 행정명령으로 추진했다. 웨스팅하우스 관련 대형 계약(800억 달러)과 분할·상장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산업 전반의 동원이 빨라지는 양상이다.
- 설비 현황: 미국은 28개 주에서 운영 중인 94기 원자로로 전력의 약 20%를 생산한다. 다수는 1967~1990년 사이 준공된 노후 자산으로, 교체·연장과 안전투자 수요가 동반된다.
- 시장 프론티어: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차세대 고속로 도입 경쟁이 시작됐다. 누스케일, 홀텍, 카이로스, X-에너지(아마존 후원), 테라파워(빌 게이츠 참여) 등이 대표 주자다. 미국 내 상업 가동 실적은 아직 없지만, 와이오밍 케머러 프로젝트(테라파워)가 2030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한다.
2) 수요 급증의 실체: AI와 상시 전원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서버·냉각·네트워크 인프라에 막대한 선투자를 필요로 한다. 최근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자본지출 증가와 함께 ‘상시 전원’이 가능한 기저부하 전력의 중요성이 재부각되었다. 변동성 높은 재생에너지와 달리, 원전은 24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 시대의 전력보험에 가깝다. 메타는 일리노이 클린턴 원전과 20년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했고, 구글·넥스트에라는 아이오와 재가동 프로젝트, 마이크로소프트·컨스텔레이션은 스리마일섬 1호기 2028년 재시동 계획을 공개하는 등 빅테크의 전원 포트폴리오에서 원전의 비중이 가시화되는 중이다.
3) 자본비용과 밸류에이션
샌프란시스코 연은 메리 데일리 총재가 최근 ‘정책은 좋은 위치’라고 평가하며 물가와 성장 사이의 균형을 강조했다. 이는 장기 금리 경로가 급격히 상승하지 않는 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 특히 장주기·고정자산 중심인 원전 프로젝트의 자본비용이 관리 가능한 범주에 머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술주 조정 속에서도 방어적 현금흐름을 선호하는 자금의 재배치가 관측되는 가운데, 안정적 배당·규제 유틸리티와 장기 전력계약(PPA)을 보유한 발전 자산의 상대 매력은 커진다. 여기에 iShares Global Clean Energy ETF(ICLN) 등 클린에너지 묶음상품으로의 자금 유입과 장기 옵션 체인의 등장(2027년 6월물 신규 상장)은 친환경 전력테마의 구조적 투자수요가 견조함을 보여준다.
2. ‘마지막 퍼즐’ 방사성 폐기물: 정책 지연의 비용
1) 현황과 비용
- 분산 임시 저장: 미국은 사용후핵연료 95,000미터톤 이상을 39개 주 79개 부지에 보관한다. 미국원자력협회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누적 폐연료를 모으면 미식축구장 한 면을 약 12야드 깊이로 덮는 부피다.
- 납세자 부담: DOE의 법적 의무(연방 인수) 미이행 탓에 1998년 이후 손해배상 누계 111억 달러가 지급됐다. 향후 총액은 445억 달러까지 추정된다.
- 실패한 영구 처분: 1987년 국가 단일 처분장으로 지정된 네바다 유카 마운틴은 반세기 가까운 논쟁 끝에 2010년 중단됐다. 반면 핀란드 온칼로 처분장은 마무리 단계, 스웨덴도 시공 착수로 대조적이다.
2) 해법 포트폴리오: 심층처분·보어홀·재처리
핵폐기물의 영구 격리는 지하 심층 처분이 가장 실행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미국에서는 여기에 민간의 기술혁신이 결합하고 있다. 딥 아이솔레이션은 석유·가스 수평시추 기술을 접목한 딥 보어홀 처분을 제안한다. 지표에서 직경 18인치 수직 천공 후 수평 전환, 부식 저항 용기에 폐기물을 적층 격리하는 개념으로, 동일 부지 병행 처분을 통해 운송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이 회사는 ARPA-E 그랜트를 수주했으며, 텍사스주 캐머런 실물 규모 시연을 준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오클로는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고속로 연료화라는 양갈래 전략으로 투자자 관심을 모았다. 2024년 SPAC 합병 상장 이후 오크 리지에 16억8천만 달러의 연료 재처리 시설 건설 계획을 공표했고, TVA 부지의 사용후핵연료를 자사 원자로 연료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아이들호 폴스의 아우로라 고속로를 2027년 말~2028년 초 가동 목표로 제시했다. 다만 상업 가동 실적이 없고, NRC 최종 승인 대기, 매출 부재, 주가 급등에 따른 변동성 확대 등 초기 기업의 전형적 리스크가 병존한다.
3) 반론과 현실 점검
전 NRC 위원장 앨리슨 맥팔레인은 ‘폐기물은 해결 가능하나 재처리는 비용 과다·부수 폐기물 증가로 비효율적’이라고 평가한다. 딥 보어홀은 공학적 구현 가능성에 회의도 존재한다. 그는 아울러 원전이 간헐성이 없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유틸리티 규모 태양광·풍력·천연가스 대비 가장 비싼 전원에 속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시각은 장기 전원 믹스에서 원전의 역할이 ‘필수 대체재’가 아니라 ‘고비용 기저부하 옵션’으로 한정될 수 있음을 함축한다.
3. 국제 비교: 왜 미국만 더디고, 투자자에 무엇을 뜻하나
1) 북유럽의 진전, 미국의 교훈
핀란드 온칼로는 사회적 합의와 장기 거버넌스가 결합한 드문 성공사례다. 반면 유카 마운틴은 과학·정치·지역사회 갈등이 결박돼 좌초했다. 미국이 장기 원전 확대를 현실화하려면, 장기 저장·처리를 둘러싼 ‘제도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산 임시 저장과 손해배상금 지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원전의 상대가격을 계속 훼손해, 민간자본의 참여를 제약한다.
2) 빅테크의 선택과 규제 유틸리티의 재평가
AI 전력 수요가 빅테크의 계약(PPA)을 통해 장기 확정되면, 원전·수력 등 기저부하 자산은 현금흐름의 가시성을 확보한다. 이는 규제 유틸리티와 대형 발전사의 밸류에이션 재평가를 정당화한다. 반대로 폐기물 정책이 표류하면 지역 반발·규제 지연으로 신규 프로젝트의 착수·준공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아지며, 결국 비용상승이 PPA 가격에 전가된다. 빅테크의 ESG·정치 리스크 수용 한계도 존재한다. 즉, 폐기물 해법은 전력단가·기업 이미지·정책 협력의 교차지점이다.
4. 시나리오 분석: 2030년과 2035년의 전원 믹스
| 시나리오 | 정책 전개 | 전력 믹스 변화 | 자본시장 함의 |
|---|---|---|---|
| A. 가속 정상화 | 연방 의회가 중간 저장·심층처분 틀을 재정비. 보어홀 시연 성과 가시화, NRC 심사 효율화. | 원전 비중 점진 확대, AI-PPA 연계 기저부하 확보. 재생에너지와 보완적 역할. | 규제 유틸리티·발전 대형주 디스카운트 축소. SMR 유망주 변동성 축소. |
| B. 현상 유지 | 유카 교훈에도 전국적 합의 지연. 임시 저장·법적 배상 지속. |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 중심. 신규 건설은 지역별 편차 확대. | 현금흐름 우수 대형 유틸리티 선호 지속. 초기 기술주는 뉴스 모멘텀 장세. |
| C. 역행 | 안전 이슈·비용 초과로 여론 악화. 폐기물 대안 부진. | 재생에너지·가스 의존 심화, AI 전력비 상승 압력. | 원전·핵연료 체인 밸류에이션 디레이팅. 데이터센터 운영비 리스크 프리미엄 확대. |
5. 투자 프레임: 무엇을 묻고, 어디를 본다
1) 대형 자산: 규제 유틸리티와 장기 PPA
원전은 공사기간이 길고 초기 CAPEX가 크다. 따라서 장기 계약과 규제 프레임이 선명할수록 자본비용이 낮아진다. 재무 건전성과 현금흐름의 가시성이 높은 규제 유틸리티, 대형 발전사업자는 금리 둔화와 AI-PPA 램프업의 교차점에서 재평가 여지가 있다. 실제로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원전 연계 움직임은 점진 확산 가능성이 크다.
2) 기술 프런티어: SMR, 재처리, 보어홀
- SMR: 공장제 모듈, 시공기간 단축, 표준화로 CAPEX·리스크를 줄이는 컨셉이지만, 미국 상업 실적 부재다. 테라파워 프로젝트의 2030년 말 목표처럼, 타임라인 검증이 관건이다.
- 재처리: 오클로의 공격적 로드맵은 데이터 포인트로 유용하나, 규제·경제성·공공수용성의 3대 허들을 넘어야 한다. 주가 변동성은 초기기업 리스크의 함수다.
- 보어홀: 딥 아이솔레이션의 현장 병행 처분은 운송 리스크를 낮추는 아이디어다. 2027년 시연 결과가 밸류체인의 태도 변화를 좌우할 것이다.
3) 핵연료·장비 체인
광물·연료·설비 체인은 지정학·정책 변화에 민감하다. 최근 미국 핵심 광물·희토류 공급망 내재화 정책 수혜가 부각되며, CCJ를 비롯한 선도 기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다만 가격하한제 등 정책 안전판 존재 여부, 정부 지분·보증의 범위는 민간의 위험선호를 크게 바꾼다.
6. 리스크 매트릭스: 정책, 사회, 금융의 3중 경계
- 정책 리스크: 유카 마운틴 재현을 피하려면, 처분장 입지 선정 과정의 투명성·보상·감시를 제도화해야 한다. 셧다운으로 인한 항공·행정 혼란에서 보듯, 연방 거버넌스의 연속성 자체가 시스템 리스크가 된다.
- 사회적 수용성: NIMBY와 지역경제 유인 간 균형이 관건이다. 중간 저장·처분장 부지의 사회계약이 붕괴하면, 원전의 비용구조는 재차 악화한다.
- 금융 변수: 금리 정점 통과와 정책 신뢰 회복은 장기 인프라의 최우선 조건이다. 데일리 총재가 강조한 생산성 기대가 현실화하면, 장기금리의 구조적 하락을 통해 대규모 전원투자의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
7. 데이터 박스: 핵심 사실 정리
- 미국 가동 원전: 28개 주 94기, 전력의 약 20% 생산
- 사용후핵연료: 39개 주 79개 부지, 95,000미터톤 이상 분산 임시 저장
- 납세자 부담: 1998년 이후 손해배상 누계 111억 달러, 향후 총액 445억 달러 추정
- 정책 동향: 향후 25년 원전 전력 4배 확대 추진, 웨스팅하우스 관련 800억 달러 대형 계약
- 기술 프런티어: 딥 보어홀 처분(ARPA-E 지원, 2027년 시연 목표), 재처리·고속로(오클로, 아우로라 2027~2028 가동 목표)
- 빅테크 연계: 메타-클린턴 PPA, MS-스리마일섬 1호기 2028 재시동 계획, 구글-넥스트에라 아이오와 재가동 협력
8. 필자의 견해: ‘폐기물-가격-신뢰’ 삼각형을 먼저 세워라
전원 정책에서 속도와 신뢰는 교환관계가 아니다. 미국은 ‘폐기물-가격-신뢰’ 삼각형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설계를 서둘러야 한다. 첫째, 처분 로드맵의 상수화를 통해 임시 저장·손해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멈춰야 한다. 둘째, 가격은 총소유비용(TCO)으로 봐야 한다. AI 데이터센터의 단가 안정은 미국 디지털 경쟁력의 핵심이며, 원전이 이 목표에 기여하려면 폐기물 비용과 사회적 프리미엄까지 포함한 가격신호가 선명해야 한다. 셋째, 신뢰는 거버넌스의 연속성에서 나온다. 셧다운이 항공·복지·산업 전반에 촉발한 비용을 보라. 원전처럼 장주기 자산은 정책의 시간일관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출발선에서 좌초한다.
나는 중장기적으로 A 시나리오(가속 정상화)에 베팅하는 것이 미국 경제의 합리적 선택이라고 본다. 이유는 명료하다. AI와 리쇼어링은 거대한 구조적 추세이며, 상시 전원의 포트폴리오 분산 없이는 전기요금·신뢰성·탄소목표라는 3개의 제약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렵다. 다만, 그 경로는 ‘폐기물 해법의 제도화’에 달려 있다. 정치적 구호보다 신뢰계약의 인프라가 먼저다.
9. 실행 체크리스트: 정책결정자·기업·투자자
정책결정자
- 중간 저장-심층 처분 이중 트랙을 상수화하고, 부지 선정과 보상·감시체계를 법제화하라.
- NRC 심사 예측가능성을 높여, 안전·속도의 양립을 제도화하라.
- AI-PPA 표준계약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전력단가·공급안정·탄소목표의 삼자 균형을 유도하라.
기업
- 빅테크는 전원 포트폴리오에서 원전·재생·저장 조합을 최적화하고, 지역사회와의 상생 프로그램을 계약에 포함하라.
- SMR·재처리·보어홀 기업은 타임라인과 실증 데이터를 시장과 공유해 정보 비대칭을 줄여라.
- 규제 유틸리티는 장기 PPA 기반의 현금흐름 가시성을 투자자와 명확히 소통하라.
투자자
- 현금창출력과 규제 명확성이 높은 대형 유틸리티·발전사 중심의 코어 포지션을 설정하라.
- 기술 프런티어는 시연·승인 마일스톤과 규제 리스크를 기준으로 분산 접근하라.
- 핵심 광물·연료 체인은 가격하한제, 정부 지분·보증, 지정학 완충장치의 유무를 체크하라.
맺음말: 르네상스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법
AI는 전력이고, 전력은 산업의 토대다. 원전 르네상스는 그 토대를 상시 전원으로 보강하는 전략이지만, 폐기물이라는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지 않으면 그림은 언제든 흐트러진다. 미국은 유카 마운틴의 교훈을 반복할 시간이 없다. 처분·중간저장·보상·감시를 포괄하는 신뢰계약을 제도화하고, 장기 계약과 규제의 시간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빅테크의 PPA와 규제 유틸리티의 현금흐름은 안정적으로 결합하고, SMR·재처리·보어홀의 혁신은 재무현실과 만날 수 있다. 원전 르네상스의 성패는 기술이 아니라 신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이 AI 시대 미국 주식·경제의 장기 경쟁력을 좌우할 진짜 분기점이다.
주요 수치·사실은 2025년 11월 전후 공개된 산업·정책 보도와 기업 발표를 토대로 구성했으며, 본 칼럼은 정보 제공 목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