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Burberry)가 영국 헤리티지 패션이라는 뿌리를 재조명하며 미국 소비자를 다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함에 따라, 오랜 부진 탈출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2025년 7월 18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버버리는 2025 회계연도 1분기(4월 1일~6월 28일) 실적을 발표하며 미주 지역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런던시간 오전 11시 26분(미국 동부시간 오전 6시 26분) 기준 버버리 주가는 8.13% 급등했다. 이는 4분기 연속 하락세를 보였던 주가 흐름을 단숨에 반전시킨 수치다. 미주 지역은 버버리 전체 매출의 19%를 차지하며, 전 분기 −4%, 2025 회계연도 전체 −9%라는 부진한 흐름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였다.
조슈아 숄만(Joshua Schulman) 최고경영자(CEO)는 “엘리트 소비층부터 유동 인구가 많은 쇼핑몰 방문객까지 미국 시장에는 다양한 럭셔리 소비자가 존재한다”며, “그 폭넓은 고객층 덕분에 성장 동력이 살아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숄만 CEO는 또 “보편적 매력을 지닌 럭셔리 브랜드라는 포지셔닝 전략이 다른 지역에서도 서서히 효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룹 전체 기준 6월 분기 매출은 4억3,300만 파운드(약 5억8,2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에 머물렀다. 이는 자체 컨센서스가 예상한 −3%보다 양호한 결과다.
지역별로는 유럽·중동·인도·아프리카(EMEIA) 매출이 1% 늘었고, 중화권은 −5%, 아시아·태평양은 −4% 감소했다. 회사 측은 “아시아·태평양 부진은 일본 관광 둔화가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역이 전 분기 대비 뚜렷한 개선 흐름을 보였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숄만 CEO는 미디어 콜에서 “글로벌 현지 고객 수요가 전반적으로 견조하며, 모든 지역에서 순차적인 개선을 확인했다
”고 말했다.
명품 업계가 직면한 관세 리스크
이번 실적은 미국 정부의 대중(對中) 관세 확대 가능성, 달러 강세, 중국 경기 둔화 등 여러 거시적 역풍(headwinds) 속에서 나온 결과다. 이른바 ‘럭셔리 겨울’로 불리는 시장 환경 속에서 버버리의 선방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케이트 페리(Kate Ferry)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관세가 단기적 역풍이 될 수는 있지만, 지난 1년간 공급망을 재편하며 가격 탄력성(price elasticity)을 세밀히 분석해 ‘외과적(surgical)’ 가격 조정을 실시했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구조조정 및 비용 절감 계획
버버리는 5월 발표한 1,700명 감원을 포함한 구조조정을 통해 2026 회계연도 말까지 연간 8,000만 파운드 규모의 비용 절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이는 생산 효율성 제고와 브랜드 리포지셔닝에 투입될 자원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올해 7월은 숄만 CEO 취임 1주년이 되는 시점이다. 그는 이전 직장인 마이클 코어스에서의 경험을 살려 지난해 11월 “긴급한 코스 코렉션(course correction)이 필요하다”며 대대적인 브랜드 리프레시를 예고한 바 있다.
UBS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결과는 브랜드 모멘텀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고, 번스타인(Bernstein)의 루카 솔카(Luca Solca) 애널리스트는 CNBC ‘Squawk Box Europe’에서 “영국다움(Britishness), 상징적 체크 패턴, 현실적 가격 책정을 강조한 신(新)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다”며 “겨울 시즌 제품이 본격적으로 매장에 깔리는 하반기에는 추가적인 긍정적 소식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기적(organic) 성장률이 아직 음(陰)이지만 개선세가 뚜렷하다. 이는 새로운 마케팅 비전이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루카 솔카, 번스타인
알아두면 좋은 용어
• 헤리티지 패션(heritage fashion)은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적 디자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제품에 녹여내는 전략을 뜻한다.
• 가격 탄력성(price elasticity)은 가격 변동이 수요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화한 지표다. 값이 높을수록 가격 인상이 매출 감소로 직결되므로 정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 쇼핑몰(high-traffic mall) 소비자는 명품 매장이 입점한 대형 복합쇼핑몰을 방문하는 고객층을 가리킨다.
시장 전망 및 기자 분석
버버리는 ‘영국다움’을 강조한 디자인, 합리적 가격 재조정, 효율적 공급망 재편이라는 세 축 전략으로 실적 회복 신호를 띄웠다. 그러나 미·중 무역 긴장이 명품 소비 심리를 다시 위축시킬 가능성, 일본 관광객 회복 지연 등은 여전히 불확실성 요인이다. 향후 하반기 겨울 컬렉션이 신전략을 얼마나 완벽히 구현할지가 주가 방향성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미 내 ‘엔트리 럭셔리(Entry-Luxury)’ 가격대 확장은 브랜드 충성도 제고와 신규 고객 유입의 분기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