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 최근 들어 미국 주요 상장사에서 최고경영자(CEO) 교체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사회와 주주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수익 부진이나 도덕적 일탈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 정착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5년 7월 2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비영리 경영 연구기관 The Conference Board와 데이터 분석 회사 ESGAUGE의 집계 결과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편입 기업 가운데 최소 41곳이 CEO를 교체했다. 이는 2024년 한 해 동안 기록된 49건에 불과 세 달 만에 육박하는 수치로, 2005년 이후 연환산 기준으로 가장 빠른 교체 속도다.
최근 사례로는 생활용품 대기업 프록터&갬블(P&G)이 29일(현지시간) 존 뮬러 CEO를 내년 샤일레시 제주리카르 부문 사장으로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뮬러는 2021년부터 CEO를 맡아왔으며, 내년부터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사회 의장(Executive Chairman)으로 자리를 옮긴다.
CEO 교체 러시, 왜 지금인가
지난 세 주 동안에도 타이레놀 제조사 켄뷰(Kenvue)와 의료용품 유통업체 헨리샤인(Henry Schein)이 각각 수장을 물러나게 했다. 로이터 통신이 인터뷰한 헤지펀드 매니저, 변호사, 은행가, 헤드헌터 등 12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사회 구조 변화, 이사회 다양성 확대, 주주 행동주의(Activist Investor) 강화를 핵심 배경으로 꼽았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이어진 무역전쟁은 CEO의 부담을 키웠다. 반면 기술 대형주의 독주로 주가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실적이 부진한 기업은 더욱 돋보이게 됐다. 이는 헤지펀드와 행동주의 투자자가 활개칠 수 있는 ‘완벽한 무대’를 제공했다.
“CEO 해임은 회사 전략이 실패했다는 국민투표가 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를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편안히 받아들이게 됐다.”
– 피터 다 실바 빈트, 컨설팅사 재스퍼스트리트 매니징 파트너
The Conference Board가 2023년 11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작년 S&P 500 내 CEO 교체 기업의 42%가 주주총수익률(TSR) 하위 25%에 머물렀다. 실적 부진이 해임의 직접적 방아쇠임을 보여준다.
Kenvue 사례로 본 행동주의 압박
켄뷰는 존슨앤드존슨(J&J)에서 분사한 지 2년 만에 주가가 16.5% 하락하자 이사회가 티보 몽공 CEO를 전격 교체했다. 동일 기간 S&P 500 지수는 41% 상승해 대조를 이뤘다. 해지펀드 스타보드밸류, 탐스캐피털, 서드포인트가 거세게 압박해 왔으며, 스타보드의 제프리 스미스 CEO는 3월 이사회 의석을 차지했다.
현재도 탐스캐피털과 서드포인트는 자산 매각 또는 전사(全社) 매각을 촉구 중이다. 복수의 소식통은 “새 CEO 부임 후 매각 절차가 가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켄뷰와 몽공 전 CEO는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다양성 강조된 이사회, ‘무관용’ 도덕 잣대
전문가들은 지난 10년간 추진된 이사회 구성 다변화가 또 다른 변수라고 지적한다. 새로운 이사들이 선임되며 의사결정 구조가 독립성을 확보했고, CEO에 대한 견제 강도가 높아졌다.
“새 이사회 멤버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객관적이다.”
– 제이슨 바움가튼, 스펜서 스튜어트 글로벌 CEO·이사회 프랙티스 대표
특히 #미투(MeToo) 운동 이후 윤리 기준이 강화되면서, 개인적 일탈이나 사생활 논란에 대한 인내심이 크게 줄었다. 크로거(Kroger)와 콜스(Kohl’s)의 CEO 두 명도 이 같은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장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달 초, 데이터 플랫폼 아스트로노머(Astronomer)의 앤디 바이런 CEO가 록밴드 콜드플레이 콘서트장에서 인사 담당 임원을 끌어안는 영상이 확산되자 즉각 사임했다.
주주 행동주의(Activist Investor)란?
주주 행동주의는 단순한 배당 요구를 넘어 사업 부문 매각·기업 분할·자사주 매입 확대·경영진 교체 등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전략 투자를 의미한다. 대개 헤지펀드가 주도하며, 이사회 진입(Proxy Fight)이나 공개서한 캠페인을 통해 압박한다. 미국 기업 지배구조에서 ‘최후의 해법’으로 여겨지지만,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영향력을 넓혀 왔다.
전문가 시각: CEO 자리, ‘최고 위험직’ 전락
기업 전략·거버넌스 전문가이자 본지 필자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첫째,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이사회는 ‘포트폴리오 조정’과 ‘책임 경영’을 더욱 강조할 것이다. 둘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트렌드 확산으로 CEO 개인의 윤리성이 투자 리스크 요인으로 직결된다. 셋째, 인공지능(AI)·친환경 전환 등 대규모 투자 의사결정이 늘어남에 따라 실책에 대한 낙오 비용이 커져 CEO 교체 주기는 더 짧아질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미국 경영계에서 CEO는 더 이상 ‘철옹성’이 아니다. 실적과 윤리, 이해관계자 요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층 가혹한 생존 게임이 전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