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번 주 ‘딜(Deal)의 기술’을 시험대에 올려놓을 중대 변곡점을 맞았다. 미국이 예고한 대규모 보복 관세 발효 시한이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오면서, 유럽연합(EU)이 백악관과 전격적으로 새로운 무역 합의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2025년 7월 28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당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위협했던 30% 관세를 15%로 절반 낮추는 대신, EU가 향후 6,000억 달러(약 780조 원)를 미국에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15% 관세는 매우 고무적이다. 이는 미국이 EU에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수준의 절반이며, 다른 주요 교역 파트너들도 조만간 유사한 형태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 바수 메논(OCBC 싱가포르 투자전략 총괄)
이번 조치로 의약·제약품과 자동차 등 지난해 EU의 대미 최대 수출 품목이 모두 15%의 균등 관세율을 적용받게 됐다. 항공기 및 부품은 ‘제로-포-제로(zero-for-zero)’ 원칙에 따라 관세를 전면 면제받지만, 미국은 철강·알루미늄에 대해선 50% 고율 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배경과 의미
미국은 지난 4월 2일 이른바 ‘해방의 날 관세(Liberation Day tariffs)’를 예고한 바 있다. 이는 ‘해방의 날’이라는 미국 내 기념일(6월 19일)과 연계해 대규모 보호무역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으로,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 막대한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돼 왔다.
그러나 이번 EU-미국 합의로 시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일단 피했다. 도미노 효과를 우려하던 주요국 정부들도 미국과 막판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중국 대표단은 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회동해 90일 추가 유예기간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대만·호주 등도 유사 구조의 협상을 타진하고 있다.
시장 반응
관세 전면전이 일단 미뤄지면서 투자 심리는 빠르게 호전됐다. 범유럽 주가지수 선물은 1% 상승했으며, 독일 DAX 지수 선물은 1% 올랐다. 영국 FTSE 100 선물도 0.5% 상승했다. 미국 S&P 500 지수는 0.4% 오른 채 6거래일 연속 상승과 사상 최고치 경신까지 노리고 있다.
업종별 수혜·피해
– 자동차·제약: 15%로 관세가 확정되면서 불확실성이 해소돼 주가 반등이 예상된다.
– 철강·알루미늄: 50% 고율 관세 유지로 수출 부담이 지속될 전망이다.
– 항공·우주: 완전 면세 혜택으로 장기적 성장 전망이 더욱 밝아졌다.
전문가 시각
필자는 이번 합의가 ‘투자 유치 ↔ 관세 경감’이라는 미국식 협상 방식의 ‘새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본다. 일방적 양보를 얻어낸 듯 보이지만, EU는 미국 내 고정 투자를 통해 달러 수익을 직접 창출하는 동시에 공급망 다변화라는 전략적 목적도 달성한다. 즉, 겉으로는 ‘불리한 딜’ 같으나 장기적·정치적 가치는 상당하다.
기업·거시 일정
28일에는 세계 2위 맥주회사 하이네켄(Heineken)의 실적 발표가 예정돼 있다. 원자재 비용과 관세 부담이 얼마나 반영됐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또 영국 7월 CBI 소매유통지수와 프랑스 단기국채(3·7·9·12개월) 입찰 결과가 공개될 예정이다. Wise,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 등도 실적을 발표한다.
알아두면 좋은 개념
CBI 소매유통지수(CBI Distributive Trades Survey)는 영국 산업연맹이 소매·도매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로, 소비자 신뢰·소매 매출 흐름을 조기 진단하는 지표다. 이를 통해 영국 내수 경기의 선행 신호를 파악할 수 있다.
전망과 과제
무역 전선이 완화되면서 글로벌 주식·채권 시장은 ‘리스크 온’ 모드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철강·알루미늄 등 일부 품목에 대한 선별적 보호주의가 지속되고, 미·중 협상 결과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재차 확대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투자자들은 국가별·업종별로 관세 민감도를 재점검하고, 리쇼어링(Reshoring)·니어쇼어링(Nearshoring) 관련 테마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