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상호 관세 부과를 90일간 추가로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이번 결정으로 협상 시간을 벌었지만, 산업 정책, 기술 통제, 무역수지 등 핵심 쟁점에서 견해차가 여전히 크다.
2025년 8월 12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양국은 전날 밤 고율 관세가 재발효되기 직전 휴전에 합의하며 발효 시점을 11월 중순으로 늦췄다. 지난 7월 스톡홀름 실무 협상 직후 시장에서는 이미 “휴전 연장”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협상 난항을 반영하듯 발표 시점이 막판으로 밀렸다.
푸단대학교 미중관계연구소 우신보(吳心波) 소장은 “지속 가능한 합의를 이루려면 향후에도 치열한 ‘협상 게임’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이 ▲전면적 관세 철폐 ▲기술 수출 규제 완화 ▲중국 기업 제재 해제를 최우선 조건으로 삼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축소“를 최상위 목표로 제시해왔으며, 이는 중국의 미국산 제품·서비스 대규모 수입 확대 요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휴전 연장은 양국 정상이 만날 때까지 협상을 지속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 제프 문(Jeff Moon), 전 미 무역대표부 중국 담당 차관보
차기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준비
양국 관리들은 올해 말 베이징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추진 중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와 중국 외교부는 구체적 일정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제프 문 차관보는 “정상회담 전까지 추가 휴전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설령 최종 합의 문서가 서명되더라도 중국의 산업 과잉설비 문제 등 핵심 이슈가 빠질 공산이 크다”고 경고했다.
실제 중국 재정부는 24%의 상호 관세를 90일간 추가 유예하되, 기존 10% 기본 관세는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상무부도 불신 기업 명단과 수출통제 목록에 오른 업체들에 대한 제재를 동기간 동결한다고 명시했다.
연장 직전 한·달·전인 5월 양국은 이미 90일간의 1차 휴전에 합의해 145%에 달하던 징벌적 관세를 크게 낮춘 바 있다. 그러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중국산 대미 수출품 평균 관세율은 54.9%, 미국산 대중 수출품 평균 관세율은 32.6%로 여전히 높다.
핵심 쟁점 ① 무역수지·농산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종식하고 제조업을 미국으로 되가져오겠다“고 누차 공언해 왔다. 그는 11일 밤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중국이 미국산 대두(콩) 주문을 4배로 늘리길 기대한다“고 적시했다. 제프 문 차관보는 이를 가리켜 “농산물은 미국의 최우선 협상 카드“라고 설명했다.
2020년 체결된 1단계(Phase One) 합의에서 중국은 2017년 대비 2,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구매를 약속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이행률이 저조했다. 다만 최근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은 5월 36.2%, 6월 10.4%, 7월 18.4% 증가하며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핵심 쟁점 ② 제3국 경유(Transshipment) 관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제3국을 경유한 중국산 제품에도 40% 일괄 관세를 부과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경유 제품의 정의와 범위가 불명확해, 실제 집행 과정에서 중국의 수출 모멘텀을 크게 흔들 변수로 꼽힌다.
Transshipment란 물품이 원산지에서 직접 소비국으로 향하지 않고 중간국을 거쳐 운반되는 무역 방식이다. 국가별 원산지 판정 기준이 복잡해, 일괄 관세는 통관 지연과 기업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핵심 쟁점 ③ 반도체·AI 기술 통제
미국 정부는 최근 엔비디아(Nvidia)·AMD와 중국 판매 매출 일부 공유를 조건으로 AI 반도체 공급 허가를 부여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H20 칩은 기술적으로 뒤처지고 환경에도 해롭다“며 자국 기업에 사용 자제를 권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디아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중국은 첨단 칩 수출 규제 완화를 협상 의제로 올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 보도했다. 미 행정부 내 안보 강경파는 “미국 기술이 중국 AI·군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며 규제 유지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통제가 오히려 중국의 국산화 드라이브를 부추길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첨단 칩 판매 제한을 완화함으로써, 미국의 AI 경쟁 우위를 지켜주던 지렛대를 스스로 약화시켰다.” — 에스와르 프라사드(Eswar Prasad) 코넬대 교수·前 IMF 중국 담당국장
핵심 쟁점 ④ 희토류(Rare Earths) 공급망
중국은 희토류 채굴·정제 분야에서 절대적 우위를 갖고 있다. 이는 미국 하이테크 산업에 대한 전략적 레버리지로 작용한다. 폴 트리올로(Paul Triolo) DGA-앨브라이트스톤브리지그룹 파트너는 “중국이 희토류 카드를 활용해 AI 칩 수출 규제 완화 등 추가 양보를 끌어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은 6월 희토류 금속·자석 대미 수출금지 완화에 합의하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Wind Information에 따르면, 6월 중국의 글로벌 희토류 수출은 전월 대비 60% 급증한 7,742톤으로 2012년 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가 7월에는 5,994.3톤으로 감소했다. 같은 달 미국행 희토류 자석 수출은 전월 대비 7배 이상 늘어난 353톤에 달했다.
전문가 진단과 향후 전망
전문가들은 “정상회담 전까지 휴전 유지 → 부분적 관세 철폐 및 구매 약속 → 기술·보조금 이슈 미해결“의 3단계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본다. 산업 보조금·국가 주도형 과잉설비 문제를 건드리지 못할 경우, 표면적 합의와 달리 무역전쟁 장기화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다른 변수는 2026년 미국 중간선거와 중국의 국가 주석 3기 집권 도전으로, 양국 정치 일정이 협상 전략에 미묘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종합하면, 90일 휴전 연장은 충돌 완화라는 단기적 긍정 효과를 갖지만, ▲무역수지 ▲기술 주권 ▲산업 정책 ▲공급망 리스크라는 구조적 쟁점을 덮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안보 패권을 둘러싸고 장기적 경쟁을 이어갈 것이라는 거시적 흐름은 변함이 없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