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발 – 미국과 일본이 체결한 무역 합의가 일본은행(BOJ·Bank of Japan)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2025년 7월 2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행 내부 소식통 네 명은 “무역 관련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면서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다시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전했다.
다만 이들은 “미국이 부과한 관세가 실제 경제 지표에 어떤 충격을 미쳤는지 올가을까지 데이터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며 단기적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된 것은 아니라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무역 불확실성 완화… BOJ의 시각도 변화
세계 4위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은 부진한 소비, 생활비 상승, 제조업 둔화라는 삼중고에 시달려 왔다. 일본은행은 지난 5월, 대미 무역 협상 결과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이유로 경제 성장률 전망을 하향하고 금리 인상 사이클에 일시적 ‘멈춤’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주 발표된 미·일 무역 합의 덕분에 핵심 위험 요인 하나가 제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식통들은 “BOJ가 조만간 경제전망을 덜 비관적으로 수정하며 금리 인상 재개를 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BOJ의 우치다 신이치(Shinichi Uchida) 부총재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합의로 일본이 목표치인 2% 물가상승률을 안정적으로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통화정책은 상·하방 리스크 균형을 고려해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치다 부총재의 발언은 5월 고노(上田和夫) 총재가 “관세 충격 탓에 불확실성이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언급했던 것과 대비된다. 시장에서는 이를 정책 기조 전환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7월 말 통화정책 회의에서 달라진 뉘앙스 나올까
BOJ는 7월 30~31일 열리는 차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분기별 ‘경제·물가 전망 보고서’를 발표한다. 소식통들은 “미국 관세의 부정적 효과를 이전보다 완화해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동시에 올해 소비자물가(CPI) 상승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물가 리스크가 하방 쏠림”이라는 기존 문구를 수정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장 마감 후 JP모건 증권의 후지타 아야코(Ayako Fujita) 이코노미스트는 “무역 합의는 BOJ에 금리 인상 명분을 제공한다”며 “10월 회의에서 추가 인상을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시장 움직임: 단기 국채금리 4개월 만의 고점
은행권이 다음 주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크지만, 시장은 이미 ‘깜짝 인상’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25일 2년 만기 일본국채 수익률은 전 거래일 대비 4bp 오른 0.845%를 기록, 4개월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12년 만에 양적완화(QE) 체제에서 탈피해 올해 1월 단기정책금리를 0.5%로 올렸다. 그럼에도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가 여전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어, 보드 내 매파(금리 인상 선호) 인사들은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반면 신중론자들은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 가능성이 여전하다”며 조기 인상에 제동을 건다. 실제 1분기 GDP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미국이 중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과의 관세 협상을 끝내지 못한 만큼 수출 전망도 흐리다.
‘단칸’ 지표와 지역 연례회의가 분수령
BOJ는 10월 초 발표될 기업경기실사지수(통칭 단칸Tankan)와 지역총재 회의를 통해 기업 심리·설비투자 계획을 면밀히 점검한다. 여기서 관세 영향이 뚜렷해질 경우, 10월 29~30일 열리는 정책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상을 결정할지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전 BOJ 정책위원인 기우치 다카히데(Takahide Kiuchi)는 “무역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 관세는 일본 GDP 성장률을 연간 0.55%p 끌어내릴 것”이라고 추산했다. 또 다른 BOJ 소식통은 “소비가 정체되고 수출 환경이 어두운 상황에서 경기 기반이 탄탄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BNP파리바의 고노 류타로(Ryutaro Kono) 수석이코노미스트는 “BOJ가 또 한 번의 인상에 다가서고 있다는 신호를 조심스럽게 내비칠 것”이라며 “7월 31일 우에다 총재 기자회견이 최대 관전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용어 해설: BOJ, 단칸, 실질금리
• 일본은행(BOJ)은 한국의 한국은행에 해당하는 중앙은행으로, 통화정책·금융시장 안정·물가안정 목표(2% 물가상승률)를 담당한다.
• 단칸(Tankan)은 BOJ가 분기마다 실시하는 대규모 기업 경기 설문으로, 기업의 생산·고용·투자 계획을 포함한 종합 경기 신뢰도를 파악하는 대표 지표다.
•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인플레이션율을 차감한 값이다. 물가가 높아도 명목금리를 제때 올리지 못하면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져 통화정책의 긴축 효과가 희석된다.
이처럼 무역 합의가 조기 금리 인상 기대를 키우는 가운데, 관세 여파·소비 침체·기업 심리 등 복합 변수에 따라 BOJ의 움직임이 결정될 전망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7월 말 보고서와 우에다 총재의 메시지를 통해, 일본 통화정책의 다음 행보를 가늠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