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런던] 다국적 담배기업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ritish American Tobacco, BAT)가 미국 내 불법·무허가 일회용 전자담배 판매에 맞서 수년간 법정 소송과 로비를 벌여 왔으나, 이제는 직접 시장에 뛰어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2025년 8월 2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BAT의 미국 자회사 레이놀즈 아메리칸(Reynolds American)은 신규 일회용 전자담배 ‘뷰즈 원(Vuse One)’을 테네시·플로리다·조지아 3개 주에서 시험 판매할 계획이다. 이는 무허가 경쟁사들의 공세로 줄어든 판매량을 만회하려는 첫 시도다.
BAT 대변인 루이스 핀투(Luis Pinto)는 로이터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규제되지 않은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회사 실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이어 “FDA(미 식품의약국) 승인을 신청한 상태이며, 9월 말 또는 10월 초부터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FDA는 모든 신규 담배·니코틴 제품이 시판 전에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FDA 관계자는 로이터에 “1)승인 없이 판매되는 모든 담배 제품은 불법 유통”이라며, 신청서가 접수됐다는 사실만으로 ‘법적 안전지대’가 마련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BAT 측은 “우리는 불법 시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정식 검사·실사를 거친 제품을 합법적 유통망을 통해 판매할 것”이라며, “경쟁사가 아니면 합류하라”는 식의 전략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 ‘합성 니코틴’과 FDA 규제, 무엇이 다른가
이번 제품의 핵심은 ‘합성 니코틴(synthetic nicotine)’이다. 이는 담배 잎이 아닌 실험실에서 화학적으로 합성한 니코틴으로, 전통적 담배 유래 니코틴과 화학식은 같지만 생산 과정이 다르다. 2022년 7월부터 합성 니코틴 제품 역시 FDA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다수 중소업체가 규정을 무시해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
시장조사업체와 BAT에 따르면, 2024년 미국 일회용 전자담배 시장 규모는 60억 파운드(약 80억 달러)로 전체 전자담배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대부분이 중국산이나 무허가 제품이어서 높은 니코틴 함량과 ‘레인보우 버블검’ ‘쿠키버터’ 등 청소년을 겨냥한 과일·디저트 향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BAT·알트리아(Altria) 등 대형 담배사는 “우리가 규제 준수로 발이 묶인 사이, 불법 제품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불만을 수차례 제기해 왔다.
● 대형 담배사들의 ‘전략적 유턴’
레이놀즈는 2023년 FDA에 무허가 합성 니코틴 제품에 대한 단속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FDA가 신청서를 접수한 제품은 단속 유예(discretion)를 적용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해석해, 이번 시험 판매를 결정했다.
BAT의 주력 브랜드 Vuse 전자담배 판매량은 2022년 이후 3,300만 개(약 10%) 감소했다. 경쟁사 알트리아는 2028년 성장 목표를 수정하면서 “소규모 업체의 불법 제품 판매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알트리아 역시 과거 합성 니코틴 제품은 불법이라고 주장했으나, 2024년 4월 윌리엄 기포드(William Gifford) CEO가 “모든 기회를 검토 중”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투자사 아벡스 인베스트먼츠(Abax Investments) 공동설립자 앤서니 세지윅(Anthony Sedgwick)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무허가 수입품 단속을 강화하면 BAT 전략이 매출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 공중 보건 단체의 반발
브라이언 킹(Brian King) 전 FDA 담배제품센터장(현 Campaign for Tobacco-Free Kids 부대표)은 “승인 없는 제품을 시장에 쏟아내는 행위는 공중 보건에 심각한 위험”이라며, BAT의 전략이 명백히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American Vapor Manufacturers 대변인 짐 매카시(Jim McCarthy)는 “BAT가 경쟁사 단속을 요구해 놓고 자신들은 ‘뷰즈 원’을 출시하는 것은 ‘놀랄 만큼 대담한 행보’”라고 꼬집었다.
● 기자의 시각: 규제와 시장 논리의 갈림길
본 기자는 BAT와 알트리아의 ‘합류 결정’이 결과적으로 FDA의 규제 신뢰성을 시험대에 올려놓을 것으로 전망한다. 대형사가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가격·품질·마케팅 준수 등 일정 수준의 표준화가 이뤄질 수 있으나, 합성 니코틴 제품의 청소년 유입을 억제하려면 거버넌스와 집행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또한, BAT의 시장 재진입은 단기적으로 회사 매출 방어에 긍정적 요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담배 대신 전자담배’라는 전환 전략이 건강·환경·세수 구조 전반에 어떤 파급을 미칠지 면밀한 관찰이 요구된다.
이번 사례는 규제 공백이 산업 구조와 소비자 안전 모두에 얼마나 빠르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산업·시민사회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넘어 협력하지 않는다면, 불법·무허가 제품의 음성화와 청소년 니코틴 중독 위험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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