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정부가 세계적인 스포츠 의류 기업 아디다스에 전통 신발 디자인 ‘우아라체(huarache)’의 무단 활용 의혹과 관련해 공식적인 배상 방안을 요구하고 나섰다.
2025년 8월 1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 문화부는 미국계 멕시코인 디자이너 윌리 차바리아(Willy Chavarria)가 아디다스와 협업해 출시한 ‘Oaxaca Slip On’ 스니커즈가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주(Oaxaca) 원주민 공동체의 전통 샌들을 모티프로 삼았으나, 정작 해당 공동체에는 어떠한 경제적·문화적 보상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논란의 핵심은 스니커즈 위에 얹힌 가죽 끈 매듭 방식이 오악사카 장인들이 수세기 동안 이어온 우아라체 특유의 수(手)직조 기법을 모방했다는 점이다.
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은 같은 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대기업들은 종종 원주민 공동체가 지켜 온 제품·아이디어·디자인을 가져가 상업화한다」며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법적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우아라체(huarache)란?
우아라체는 멕시코 중·남부 지역에서 기원한 전통 가죽 샌들로,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기 이전부터 사용돼 왔다. 가죽 끈을 격자무늬로 촘촘히 엮어 발등을 덮는 방식이 특징이며, 통기성과 내구성이 뛰어나 농업·일상·의례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디자인을 맡은 차바리아는 그간 미국 패션 업계에서 라틴계 정체성을 적극 조명해 큰 주목을 받아 왔다. 그는 엘살바도르 CECOT 초대형 교도소에 수감된 갱단원의 모습을 컬렉션에 반영하는 등 ‘사회적 논평’을 접목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협업에서 그는 스니커즈 밑창과 우아라체 상부를 결합해 현대적 감각을 강조했다고 설명했지만, 제조국은 중국으로 판명됐다.
마리나 누녜스 멕시코 문화부 차관은 기자단에 「아디다스가 오악사카 주 정부에 먼저 연락해 ‘도용된 공동체’에 대한 보상·재투자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확인했다. 다만 구체적 금액·협력 방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멕시코 정부가 글로벌 패션 하우스를 상대로 전통 지식(Traditional Knowledge) 보호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3년 사이 멕시코는 스페인계 인디텍스(자라), 프랑스의 루이 비통, 미국의 캐롤라이나 헤레라 등을 상대로 유사한 문제를 제기해 왔다. 해당 기업들은 대부분 ‘존중 부족’ 논란 이후 디자인 철회나 공동 프로젝트, 장인 직접 고용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차바리아의 사과문 및 반응
차바리아는 8월 10일(현지시간) SNS와 보도자료를 통해 「제품 개발 과정에서 오악사카 공동체와 직접적이고 의미 있는 파트너십을 형성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는 본래 의도가 ‘오악사카의 강렬한 문화·예술적 정신을 기리는 것’이었다며, 향후 지역 장인과 협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지 문화 단체들은
「제품이 이미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 이후의 사과는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며 불만을 표출했다. 한 오악사카 장인은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주민의 전통은 브랜드 홍보 수단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디다스 본사는 이번 사안에 대한 로이터 통신의 논평 요청에 아직 답변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조속한 합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시장·법률적 시사점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들은 이번 사례가 단순 디자인 도용 논란을 넘어, 무형문화유산(IP) 보호를 둘러싼 국제 분쟁의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멕시코는 2020년 전통문화표현(TCE) 보호법을 개정해 원주민 공동체를 권리자로 명확히 규정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전통 디자인을 사용하려면 사전 동의(Free, Prior and Informed Consent)와 이익 공유(Benefit Sharing)를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시장 측면에서도 파급력은 작지 않다. 글로벌 스니커즈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860억 달러Statista로 추산되며, 문화적 스토리텔링은 제품 차별화 요소로 각광받아 왔다.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문화 표절’ 논란이 반복될 경우, 브랜드 가치 훼손과 법적 비용 증가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패션 컨설턴트들은 아디다스가 과거 ‘Yeezy’ 계약 종료 이후 새 컬래버레이션 파이프라인을 다각화하고 있다며, 해당 전략이 문화적 민감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역풍(Backlash)’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 의견
이 기사와 관련해 필자가 취재한 복수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내다봤다.
첫째, 멕시코 정부는 표면적인 금전 배상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협업 모델을 반드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글로벌 브랜드들이 향후 지속가능경영보고서(ESG Report)에서 ‘무형문화유산 존중’ 항목을 별도로 명시할 필요성이 커질 것이다. 셋째, 소비자 또한 문화적 윤리 소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어, 이번 사건은 향후 패션·소비재 업계 전반에 경고음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결국 아디다스가 어떠한 방식으로 문제를 수습하느냐에 따라, 브랜드 신뢰도와 시장 점유율이 요동칠 수 있다는 점을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