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아디다스에 ‘오악사카 슬립온’ 배상 요구…전통 디자인 도용 논란

멕시코 정부와 세계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Adidas)가 전통 디자인 도용을 둘러싸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멕시코·미국계 패션 디자이너 윌리 차바리아(Willy Chavarria)가 전통 가죽 샌들인 우아라체(huarache) 직조 무늬를 차용해 ‘오악사카 슬립온(Oaxaca Slip On)’이라는 신발을 출시하자, 멕시코 문화부와 오악사카 주정부는 “원주민 공동체에 정당한 보상과 공로가 돌아가지 않았다”며 즉각적인 시정을 촉구했다.

2025년 8월 8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차바리아의 신제품은 신발 밑창은 스니커즈, 갑피는 우아라체 전통 직조라는 독특한 형태로 제작됐으나, 생산지는 중국으로 확인됐다. 멕시코 당국은 “현지 장인에게 지불돼야 할 가치를 다국적 기업이 전유했다”며 법적 조치를 준비 중이다.

대기업은 자주 원주민 공동체의 제품·아이디어·디자인을 무단으로 가져간다.” – 클라우디아 쉰바움(Claudia Sheinbaum) 멕시코 대통령

쉰바움 대통령은 9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문화부·경제부·오악사카 주정부 연석회의를 통해 구체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리나 누녜스(Marina Núñez) 멕시코 문화부 차관도 “아디다스가 오악사카 주정부에 연락해 ‘피해 공동체에 대한 배상(restitution)’ 가능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나 구체적 금액, 로열티 배분 방식 등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우아라체 샌들이란 무엇인가?

우아라체(huarache)는 멕시코 전역, 특히 오악사카·할리스코·치아파스 등 남부 지역에서 수백 년간 제작돼 온 가죽 고리 직조 샌들이다. 원래 토착어 ‘쿠아차틀(cohuarache)’에서 유래했으며, 가죽 스트랩을 수작업으로 엮어 통기성과 내구성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현대 패션에서는 보헤미안·빈티지 아이콘으로 각광받아 글로벌 명품·스포츠 브랜드가 잇따라 변형 제품을 내놓고 있어, 지적재산권 분쟁이 빈번하다.

차바리아의 ‘문화적 아이덴티티’ 마케팅

윌리 차바리아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아일랜드계 어머니와 멕시코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디자이너다. 그는 라틴계 커뮤니티·이민자 문제·인권을 테마로 한 컬렉션을 선보여 미국 패션계에서 ‘사회참여형 디자이너’로 주목받아 왔다. 특히 엘살바도르 초대형 교도소 CECOT 수감자들의 삶을 조명한 룩북을 발표해 찬사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이번에도 그는

아디다스와 협업을 통해 내 문화적 뿌리를 기리는 작업

이라고 강조했으나, 멕시코 현지에서는 “존중 없이 이름만 차용한 전형적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라는 비판이 거세다.

멕시코 정부의 잇단 ‘전통 디자인 보호’ 행보

멕시코는 최근 수년간 글로벌 패션기업을 상대로 ‘전통 문양 상업화’ 분쟁에 적극 대응해 왔다. 2021년 스페인 인디텍스(Inditex) 산하 자라(ZARA)가 히달고주 텐앙고(tenango) 자수를 변형해 의류를 출시하자, 문화부가 공식 서한을 보내 시정·배상을 요구한 바 있다. 프랑스 명품 하우스 루이비통(Louis Vuitton) 역시 오악사카 전통 천연 염색 패턴을 쿠션에 사용했다가 협상을 거쳐 공동 컬래버·로열티 지급을 약속했다.

따라서 이번 아디다스-차바리아 사태는 멕시코 정부가 제시한 ‘전통 지식·문화유산 보호 지침’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문화부는 1) 디자인 사용 중단, 2) 로열티 또는 일시금 지급, 3) 공동 브랜드 설립 등을 옵션으로 제시했으며, 무역·지재권 전문가들은 “아디다스가 협상에 불응할 경우 WTO 분쟁 절차로까지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아디다스와 차바리아, 아직 공식 입장 없다

현재 아디다스 본사(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와 차바리아 측은 로이터·AFP·멕시코 현지 언론의 질의에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아디다스 북미 홍보팀은 “멕시코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열어 두고 있다”는 짤막한 문자 메시지만을 전달했다. 업계는 브랜드 이미지 훼손·소비자 불매 가능성을 우려해 협상 타결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산업적 파장

패션·스니커즈 업계 전문가들은 ‘전통 디자인 라이선싱’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될수록, 공정 무역·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가 브랜드 선택 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글로벌 컨설팅사 EY는 2024년 보고서에서 “문화적 전유 리스크 관리 실패 시 브랜드 가치가 평균 12% 하락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단순 스니커즈 분쟁을 넘어, 다국적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전략에도 긴급 경보를 울리고 있다.

또한 멕시코 정부는 ‘도메스틱 패션 생태계’ 보호를 위해 전통 공예·디자인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로열티 수입·장인 고용 창출 등 파급 효과가 크다”며, 아디다스 사례를 계기로 국제 기준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CECOT 교도소란?

윌리 차바리아가 과거 컬렉션 배경으로 삼았던 CECOT(Centro de Confinamiento del Terrorismo)엘살바도르 정부가 2023년 개소한 초대형 테러·갱 전용 구치소다. 4만 명 수용 규모, 고강도 격리·감시 시스템으로 ‘세계 최대 교도소’로도 불린다. 차바리아는 해당 시설의 수감자를 모델로 상징화해, “범죄와 인간성, 구원”이라는 메시지를 던졌으나 “피해자 트라우마를 상업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그는 사회적 메시지와 파격성을 결합한 창작방식으로 명성과 논란을 동시에 얻어 왔다.

※ 용어 설명 –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 다수·지배 문화가 소수·피지배 문화의 상징·전통·지식을 허가 없이 활용하거나 상업화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윤리적 논란과 함께 법적 분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 아디다스의 공식 사과 및 재설계 여부 ▲ 멕시코 정부가 요구하는 배상 규모 ▲ 오악사카 지역 장인과의 공동사업 모델 성사 여부다. 이번 사태는 글로벌 패션시장의 문화·윤리적 기준다국적 브랜드의 사회적 책임을 재정의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