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츠 정부의 구조개혁 지연, 독일 경제학자들 “심각한 우려”

[베를린] 독일 경제가 침체 장기화 우려를 겪는 가운데, 국내 경제학자 상당수가 프리드리히 메르츠 신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개혁 지연’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2025년 8월 13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독일 뮌헨 소재 경제연구소 이포(Ifo)가 170명의 대학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42%가 메르츠 정부의 첫 100일 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긍정 평가는 25%에 그쳤다.

이 설문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경기 부진, 고령화에 따른 연금 재정 악화, 그리고 인프라 노후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배경으로 실시됐다. 독일 국내총생산(GDP)은 이미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으며, 메르츠 정부는 향후 추가 연속 하강을 막는 것이 최대 과제로 꼽힌다.


연금개혁 지연이 ‘발목’

이포 연구원 니클라스 포트라프케는 “연금 제도 개혁은 시급하지만 현 정부의 조치는 완전히 잘못된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어머니 연금(Mütterrente)’ 확대에 대해, “출산·육아 경력을 연금 보험기여 기간으로 환산해 추가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이지만, 재정지출만 늘리고 생산성 향상에는 기여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어머니 연금 해설
어머니 연금은 1993년 이전에 출산한 자녀를 둔 부모에게 추가 연금 포인트를 부여하는 제도로, 주로 여성의 노후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고령화 속도와 재정 부담이 더해지면서 지속 가능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설문 참여자들은 법정 정년 및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추가로 상향하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독일은 2029년까지 정년을 67세로 단계적 인상 중이지만, 고령 인구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단기 부양책 ‘투자 부스터’에는 긍정적 시각

반면, 응답자들은 총 5,000억 유로 규모의 인프라 특별기금을 포함한 공공투자 확대를 가장 긍정적인 정책으로 꼽았다. 또한 기업 감가상각 한도를 완화해 설비투자를 독려하는 이른바 ‘투자 부스터’와 방위비 증액, 법인세 인하 계획도 단기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투자 부스터 해설
투자 부스터(Investitionsprämie)는 기업이 기계·설비·소프트웨어 등 생산성 향상 자산에 투자할 경우 더 빠른 감가상각을 허용해 조세 부담을 경감해 주는 제도다. 기업의 현금흐름 개선과 함께 혁신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핵심 목적이다.

실제로 응답자의 50%는 지금까지 발표된 정책이 단기적으로 경기 회복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으며, 12%만이 부정적 영향을 점쳤다.


중·장기 성장 전망은 ‘회의적’

그러나 중기 성장 전망으로 눈을 돌리면, ‘대체로 긍정적’ 의견은 34%에 그친 반면, ‘부정적’이거나 ‘매우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26%를 차지했다. 포트라프케 연구원은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마련하려면 시장 지향적 구조개혁이 필수적이지만, 현재로선 그러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디지털 규제 완화, 에너지 전환 비용 절감 등을 지목하며, 메르츠 정부가 연금 외에도 포괄적 구조개혁 패키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 시각: 정치 타협과 구조개혁의 딜레마

메르츠 총리는 기민/기사당(CDU/CSU)·자유민주당(FDP)·녹색당과의 연립 구성 과정에서 재정준칙을 고수하면서도 대규모 투자를 약속해야 하는 ‘재정 규율 vs 성장 촉진’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정치권 내부 조율이 길어지면서 정책 효과가 실물 경제로 확산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독일 싱크탱크 DIW의 한 연구위원은 “정부가 구조적 문제를 고치지 못하면 2026년 이후 잠재성장률은 0%대에 머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ECB)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금리 부담이 기업 투자 의욕을 꺾어 공공투자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향후 관전 포인트로는 2025년 가을로 예정된 연방 재정 재검토, 기업 세제 개편 법안 입법 과정, 그리고 유럽연합(EU) ‘신재정규범’(Stability and Growth Pact 개정안) 협상 결과가 꼽힌다. 각각의 결정이 연금 개혁과 공공투자 재원 조달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요컨대, 독일 경제학계는 메르츠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지출에는 박차를 가했지만, 연금·노동·규제 등 본질적 구조 개혁에는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 같은 ‘투자 드라이브와 구조개혁 공백’의 조합이 장기적으로 독일 경제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