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 프랑스 출신 플뢰르 아르벨과 크리스토프 카이루즈(모두 24세)는 최근 뉴욕 5번가에 위치한 루이비통( Louis Vuitton ) 플래그십 매장 앞에서 기린·타조 모양의 대형 모노그램 조형물에 끌려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두 사람은 “촌스럽다”고 느끼는 과도한 로고 디자인 때문에 결국 다른 매장에서 지갑을 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025년 9월 19일, 인베스팅닷컴이 로이터 통신 기사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Z세대(1998~2012년 출생)는 전 세계 럭셔리 시장의 새로운 전선으로 부상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 4%에 그쳤던 Z세대의 글로벌 럭셔리 소비 비중은 Boston Consulting Group 전망치 기준 2030년 25%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Z세대는 틱톡·인스타그램·샤오홍슈(小紅書) 등 글로벌 소셜미디어 환경 속에서 유행을 실시간으로 흡수하며, 중고 명품(리세일)과 빈티지 숍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믹스앤매치’ 소비 성향을 보인다. 이에 따라 기성 럭셔리 하우스들은 인플루언서 협업, 팝업스토어, 가방 참·키링 등 비교적 저렴한 ‘입문용 아이템’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더 저렴한 럭셔리, 코치·랄프 로런의 약진
테이프스트리( Tapestry )의 최고재무책임자 겸 최고운영책임자 스콧 로(Scott Roe)는 “상하이·로스앤젤레스·런던의 Z세대가 놀라울 정도로 닮아가고 있다
”며, 브랜드 충성도 자체는 전 세대와 유사하지만 선택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만큼 ‘목소리 점유율(share of voice)’이 승부를 가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코치와 랄프 로런처럼 ‘어포더블 럭셔리’로 분류되는 브랜드는 2024년 3월까지 12개월 매출이 각각 9.9%(약 56억 달러), 6.8% 증가했다. 테이프스트리는 팬데믹 이전 대비 마케팅 비중을 매출의 3% → 10%로 늘렸지만, Z세대 대상 지출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어포더블 럭셔리란, 하이엔드 하우스보다 가격 진입 장벽은 낮되 고급 소재·브랜드 헤리티지를 일정 부분 유지하는 제품군을 뜻한다. Z세대는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만큼 ‘첫 명품’으로 이 시장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뜨는 브랜드·지는 브랜드
경쟁 구도는 기존 전통 하우스 대 신생·소규모 레이블로 재편 중이다. 콜리나 스트라다( Collina Strada ), 더로우(The Row) 등은 Lyst Index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힐러리 테이머(Hillary Taymour)는 2020년부터 집중적인 디지털 광고를 집행해 젠지·밀레니얼 비중 58%라는 성과를 냈다며 “지속가능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밈(meme) 기반 미학과 다양성 캐스팅이 공동체 의식을 자극했다”고 밝혔다.
반면 구찌(Gucci)는 2분기 매출이 25% 급감했고, CEO 스테파노 칸티노가 취임 9개월 만인 9월 17일 해임됐다. Z세대 전문 리서치 회사 dcdx에 따르면 구찌는 지난 1년간 소셜미디어 언급량·상호작용이 최악의 하락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케어링(Kering) 주가는 43% 하락한 반면, 테이프스트리는 3배 이상 상승했다.
“전통 하우스들은 이제 명확한 승자와 패자로 갈리고 있다.” — 베인앤컴퍼니 수석 파트너 프레데리카 레바토
‘입문용 참’으로 톡톡히 재미 본 미우미우·로에베
케어링 산하 보테가 베네타, LVMH 계열 로에베(Loewe), 그리고 프라다 그룹의 미우미우(Miu Miu)는 여전히 Z세대 호감을 이어가고 있다. Lyst Index 최신 순위에서 미우미우가 1위, 로에베가 2위에 올랐고, 미우미우는 2025년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49% 증가했다.
미우미우의 가죽 가방 참은 240~1,250달러로, 단일 아이템만으로도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어 ‘소액 진입’을 원하는 Z세대에게 적합하다는 평가다. Achim Berg FashionSIGHTS 창립자는 “풀 룩을 갖추지 않아도 브랜드 메시지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이라고 분석했다.
지갑은 얇아도 안목은 높다: Z세대의 가치 기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2024년 8월 Z세대·밀레니얼(1978년 이후 출생)의 소비지출은 전년 동월 대비 0.5% 증가에 그쳤다. 반면 베이비붐 세대는 2.4% 늘었다. LA 거주 26세 켄달 스틸은 “명품 쇼핑 시 ‘10년 뒤에도 질리지 않을 것인가’를 따진다
”며 내구성·타임리스 디자인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결국 브랜드가 요구받는 가치는 친환경·다양성·진정성(authenticity)이다. 코치는 가죽 재활용 프로그램, 퍼스널라이제이션 서비스 등으로 해당 키워드를 구체화해 ‘쿨’한 이미지를 얹었다.
시장 판도 바꿀 중국 신예 브랜드의 부상
샤넬 CEO 리나 나이르는 9월 16일 뉴욕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중국 브랜드 우마왕(Uma Wang), 슈슈·통(Shushu/Tong)이 디지털 숙련도와 국가 정체성을 앞세워 아시아 Z세대의 지지를 얻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브랜드 장수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시대 적합성을 유지해야 대중의 기억 속에 머문다
”고 강조했다.
이 같은 흐름은 명품 DNA를 지키면서도 ‘동시대성’을 구현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는다는 방증이다. ‘교과서적 헤리티지’보다 ‘지금, 여기’가 중요한 시대다.
전문가 시각: 브랜드가 취해야 할 전략
필자의 판단으로는, Z세대를 겨냥한 럭셔리 전략은 ① 플랫폼 다각화(숏폼·라이브커머스), ② 제품 소형화·모듈화(참·스트랩·스티커), ③ 환경·사회적 책임(ESG)의 실체화라는 세 축으로 요약된다. 특히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밈 마케팅과 커뮤니티 빌딩은 ‘팔로워 ➝ 구매전환’으로 이어지는 핵심 동력이다.
장기적으로는 웹3(블록체인 기반 소유권 증명), 메타버스 패션에 대한 투자 여부가 브랜드 가치를 재구성할 가능성이 크다. Z세대는 디지털 자산에도 ‘명품 프리미엄’을 부여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매장 간판만으로 고객을 유치하는 시대는 끝났다. 스토리텔링·커뮤니티·윤리적 가치가 삼박자를 이루어야 ‘지갑보다 마음’을 먼저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