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발(Reuters) —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미국의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경제가 예상보다 양호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인플레이션 위험이 “상당히 억제돼 있다”고 밝혔다.
2025년 9월 30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행사에서 “현재 정책금리 2% 수준은 향후 충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 준다”고 강조했다.
정책금리 동결과 물가 목표치
ECB는 2025년 6월 이후 금리를 2%로 동결해 왔다. 라가르드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 수준에 안정적으로 근접해 있어 당분간 추가 금리 조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금융시장 참가자들도 같은 판단을 내리고 있다. 라가르드는 “투자자들이 추가 금리 인하를 거의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실제로 ECB 내부에서도 “이르면 12월 회의에서나 정책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역 충격과 인플레이션 — “고전적 트레이드오프 부재”
“무역 충격이 새로운 인플레이션 압력을 유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라가르드 총재의 판단이다. 전통적으로는 무역 갈등이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
지만, 이번에는 그런 패턴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ECB 연구진은 미·중 무역 갈등과 유사한 규모의 충격을 가정해 더 큰 피해를 우려했으나, 실제 결과는 “상대적으로 온건(benign)”했다. 라가르드는 그 이유로 ① 공급망 교란 부재, ② EU 차원의 보복 관세 미실시, ③ 정부의 경기부양 지출 확대, ④ 예상과 달리 강세를 보인 유로화를 제시했다.
달러의 ‘안전자산’ 위상 흔들림
라가르드 총재는 특히 투자자들이 미국 달러화의 ‘안전자산(safe-haven)’ 지위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점을 주목했다.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던 바로 그 시점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달러가 앞으로도 최종적 피난처 역할을 할지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안전자산 통화란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질 때 자본이 몰리면서 가치가 상승하는 통화를 뜻한다. 전통적으로는 달러·엔·스위스프랑이 대표적이지만, 라가르드는 최근 유로화가 방어적 통화로서 일정 부분 기능했다는 점을 시사했다.
경기 하방 요인 완충: 국방 지출 확대
라가르드는 또한 유럽 각국 정부가 국방·안보 예산을 늘린 점을 ‘상대적으로 온건한 결과’의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2025~2027년 사이 정부투자가 성장률을 0.25%포인트 끌어올려 무역 충격의 약 3분의 1을 상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 내 안보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국방비 증가가 하나의 경기부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라가르드는 정책 판단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위험이 양방향으로 모두 억제돼 있다”며 과도한 낙관을 경계했다.
전문가 해설 — 라가르드 발언의 시사점
① 정책금리 2%의 의미 — 유로존 기준금리 2%는 글로벌 주요 통화권 대비 중립적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 수준은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 사이의 균형을 시도하는 ‘적정 금리 영역’으로 간주되며, 추가 충격 발생 시 인하 옵션을 남겨둔다.
② 무역 갈등의 비(非)인플레이션 효과 — 물가가 오르지 않은 가장 큰 배경으로, EU가 미국의 관세에 보복하지 않은 점과 공급망이 이미 다변화됐다는 구조적 요인이 지목된다.
③ 달러 신뢰도 재평가 — 달러화의 독점적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릴 경우, 유로화·위안화·금 등 대안 자산이 상대적 매력을 얻을 수 있다. 유로존 투자자에게는 외환 변동성 리스크를 줄이는 긍정적 요인이지만, 수출기업에는 불확실성을 높이는 변수다.
※ 이번 기사에서 다룬 안전자산(safe-haven) 이란? — 지정학적 위기·경기침체·금리 변동 등 거시 리스크가 고조될 때 자본이 몰려드는 자산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미국 달러화, 일본 엔화, 스위스프랑, 금 등이 있으며, 가격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특징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