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네덜란드·스웨덴, EU 공동차입 재추진에 일제히 반대…“팬데믹 당시 한 번이면 충분”

더반(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계기 회담에서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서유럽 3개국이 유럽연합(EU) 공동차입을 다시 도입하자는 제안에 대해 단호히 반대 입장을 밝혔다. 덴마크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사실상 반대 진영에 힘을 보탰다.

2025년 7월 1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독일의 라르스 클링바일 재무장관, 네덜란드의 엘코 헤이넨 재무장관, 스웨덴의 엘리사베트 스반테손 재무장관은 남아공 더반에서 기자들과 만나 “EU 차원의 추가 공동 차입은 지금 시점에서 불필요하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앞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7월 17일 2028~2034년 중장기 예산안으로 약 2조 유로(약 3,100조 원) 규모의 초대형 EU 예산을 제안하면서, 재원 마련 방안 가운데 하나로 공동채권(joint borrowing)을 거론했다. 공동채권은 회원국이 연대보증을 서는 형태이기 때문에 차입 금리가 낮아지고 조달 절차가 간소화되는 장점이 있지만, 재정 건전성이 우수한 국가상대적으로 재정이 취약한 남유럽 국가의 채무를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항상 논란이 돼 왔다.


각국 장관 발언 요약

2조 유로 규모 예산안은 ‘도착 즉시 사망(dead on arrival)’한 안건이다.” — 엘코 헤이넨 네덜란드 재무장관

헤이넨 장관은 “네덜란드는 공동차입에 과거에도 반대했고 앞으로도 같은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당시 설정된 ‘넥스트 제너레이션 EU(Next Generation EU)’ 8,000억 유로 규모 공동차입이 “단 한 번의 예외적 조치였으며 결코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스반테손 장관도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조치였을 뿐”이라며 “좌우 모든 스웨덴 의회 정당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점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덴마크의 스테파니 로세 경제부 장관은 “공동차입이 만병통치약처럼 포장되곤 하지만, 결국 그 빚은 언젠가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라르스 클링바일 재무장관은 “팬데믹 때는 분명 비상사태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블록의 재정 문제를 푸는 데 공동 부채가 옳은 해법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배경 및 용어 해설

공동차입(joint borrowing)은 EU가 ‘연합’ 명의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회원국이 연대해 상환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미국의 연방국채처럼 단일 자본시장을 만들어 조달 금리를 낮추고 투자 매력을 높인다. 반면, 재정준칙을 지키지 않은 국가의 위험이 모든 회원국에 전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 우려가 크다.

2020년 7월 EU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회원국을 지원하기 위해 넥스트 제너레이션 EU(NGEU)라는 8,000억 유로짜리 거대 경기부양책을 마련했다. 당시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EU 공동채권이 발행됐으며, 이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재정 긴축을 중시하는 북유럽 국가는 “일회성 조치”라고 선을 그어 왔다.

이번 EC의 2조 유로 예산안에는 디지털 전환, 친환경 투자, 국방력 강화 등 EU가 직면한 지정학·기후·경제 3중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막대한 재정 지출이 담겼다. 하지만 회원국 만장일치가 필요한 예산 및 차입 결정 과정에서 독·네·스웨덴·덴마크의 집단적인 ‘레드 라인’이 확인됨으로써, 향후 협상이 난항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향후 전망

EU 집행위원회는 내년 초까지 예산안 확정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기존 긴축 재정파(파인애플 네이션스)지출 확대를 원하는 남유럽 국가 간 균열이 재가시화되면서 유럽 재정 거버넌스 개편 논의가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유로본드 도입 논의부터 새로운 적자·부채 한도 설정까지,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할 좌장 역할이 요구된다.

특히 2026년 이후 만기가 몰리는 NGEU 채권의 상환 재원으로 플라스틱 포장세·탄소국경조정세 등 EU 차원의 ‘새로운 own resources(독자 재원)’ 도입이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이는 회원국 간 분담 방식을 바꿀 수 있어, 향후 재정통합의 중대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환율 ($1 = 0.8589 eur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