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중퇴·틸 장학생에서 억만장자로… 피그마 CEO 딜런 필드의 여정

대학 중퇴자에서 실리콘밸리 신흥 억만장자로 떠오른 33세 딜런 필드(Dylan Field)가 이번 주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통해 또 하나의 전설을 썼다.

2025년 8월 3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웹 기반 디자인 플랫폼 피그마(Figma)의 화려한 첫 거래일 직후 주가가 세 배 이상 급등하며 fully diluted 기준 시가총액 7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에 따라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필드는 약 66억 달러(약 8조9,000억 원)의 지분 가치를 손에 넣었다.

필드는 하버드대 중퇴 후 페이스북을 창업해 억만장자가 된 마크 저커버그와 비견되지만, 두 사람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이름은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이다. 저커버그가 2004년 처음 받은 외부 투자금이 틸의 수표였던 것처럼, 필드는 2012년 ‘젊은 혁신가에게 교실 밖 도전을 지원한다’는 목적의 틸 펠로십 2기(총 20명)에 선발돼 10만 달러를 수령했다.


1. 겸손을 무기로 한 ‘안티 스티브 잡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방명록에 서명 중인 딜런 필드

필드와 함께 틸 펠로십 출신 창업자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조슈아 브라우더(Joshua Browder) DoNotPay CEO는 “딜런은 내가 만난 가장 겸손한 억만장자”라고 평했다. 1517 펀드 공동창업자 마이크 깁슨은 그를

“하드 차징형 ‘스티브 잡스’와 정반대의 리더십을 지닌 인물”

이라고 묘사했다.

필드는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브라운대학교에서 2년 반을 보낸 뒤 펠로십에 지원했다. 그는 지원서에서 “SAT 점수는 잠재력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라고 적고, 논쟁적 견해를 요구하는 문항에 “초콜릿은 혐오스럽다”는 답을 써 넣어 주목을 받았다.


2. 피그마의 탄생과 성장

브라운대를 떠나며 인터뷰하는 필드

펠로십 자금 10만 달러를 절반씩 나눠 가진 필드와 ‘컴퓨터 예수’라 불리던 공동 창업자 에번 월리스(Evan Wallace)는 실리콘밸리 팔로알토 원룸에서 출발했다. 초기 목표였던 드론 소프트웨어 대신, 웹 브라우저용 3D 그래픽 기술 WebGL을 활용해 실시간 공동 디자인 툴을 만들기로 방향을 틀었다.

2013년부터 인덱스벤처스, 그레이록 파트너스 등으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지만 초기 프로토타입은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필드는 지나친 ‘마이크로매니지먼트’로 내부 불만에 직면했고, 투자자 존 릴리(전 Mozilla CEO)·대니 리머가 직접 조언에 나서자 그는 리더십을 대폭 수정했다.

2016년 9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 에디터를 공개하며 동시 편집 기능을 탑재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마이크로소프트 내부 확산이 기폭제가 되었지만, 당시 무료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우려한 MS측 경영진이 “회사가 사라질까 걱정된다”고 경고하자 2017년 첫 유료 요금제가 도입됐다.


3. 코로나19와 궤적을 바꾼 협업 수요

2020년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원격 근무 체제로 전환되자, 피그마의 클라우드 협업 기능은 ‘필수 툴’로 급부상했다. 필드는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 팀이 몰입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돕겠다”는 목표로 디지털 화이트보드 FigJam을 출시해 제품 다각화에 성공했다.

피그마 상장 첫날 주가 급등


4. 어도비 20억 달러 인수 무산

2022년 9월 어도비(Adobe)가 200억 달러 규모 인수 계획을 발표했으나, 영국 경쟁·시장청(CMA)이 “경쟁 제한 우려”를 제기하면서 2023년 12월 거래가 전격 철회됐다. 어도비는 10억 달러의 위약금을 지급했고, 필드는 “좌절스럽고 슬프다”는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일부 업계 인사들은 “독립 유지가 오히려 호재”라는 평가를 내놨다.

브레이크업 이후 피그마의 순달러유지율(Net Dollar Retention)은 2023년 1분기 159%에서 4분기 122%로 하락했다가, 2025년 1분기 132%로 반등했다. 필드는 임직원 사기를 높이기 위해 재상장 전 보상 구조를 재설계하고, 자발적 퇴사자에게 3개월 급여를 제공했으며 실제 퇴사율은 5% 미만에 그쳤다.


5. AI 시대의 새 승부수 — Figma Make

2025년 5월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사용자 컨퍼런스 Config 2025에서 필드는 대형 언어 모델 Claude 3.7 Sonnet을 탑재한 Figma Make를 소개했다. 이는 프롬프트(명령어)만으로 디자인을 코드화해 프로토타입을 완성하는 기능이다.

현장 데모 중 일부 오류가 발생했지만, 초기 사용자들은 “출발이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고, 분석기관 가트너브렌트 스튜어트 애널리스트는 “디자인 부문에서 피그마가 ‘압도적 1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AI 특화 경쟁 제품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6. 용어·개념 해설

SAT — 미국 대학입시에 활용되는 표준화 시험. 필드는 성적을 제출하지 않았고, 시험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WebGL — 웹 브라우저에서 3D 그래픽스를 구현하는 기술. 피그마 초기 데모(물 위의 공 움직임)에 활용됐다.

Fully Diluted 시가총액 — 기존 주식뿐 아니라 스톡옵션·워런트 등 잠재적 주식을 모두 반영한 총 가치.

Net Dollar Retention — 기존 고객군에서 발생한 매출 증감률을 나타내는 SaaS 업계 핵심 지표.


7. 전문가 시각 및 전망

전문가들은 피그마가 ‘협업 디자인’이라는 틈새시장 첫 주자에서 이제는 AI 기반 개발·프로덕트 라이프사이클 전반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 중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프롬프트 기반 코드 생성 부문에서 Vercel v0, Miro Uizard 등 신흥 경쟁자가 빠르게 추격하고 있어, 필드가 제2의 ‘킬러 기능’을 얼마나 빨리 상용화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현재 주가 급등은 유동성 회복과 3년간 부진했던 IPO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한 ‘순간적 스냅백’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필드 역시 “주가는 한순간의 지표일 뿐”이라며 과열 논리를 경계했다.

결론적으로, 틸 펠로의 지원으로 대학을 떠난 한 청년이 겸손과 실행력으로 10여 년 만에 글로벌 협업 생태계를 재편했다는 점에서, 딜런 필드의 서사는 실리콘밸리 혁신 스토리의 최신 판본으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