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 미 이민 단속 여파로 LG에너지솔루션 美 공장 추가 인력 철수

LG에너지솔루션(LG Energy Solution·LGES)의 미국 공장 여러 곳에서 일하던 한국 국적 기술자‧엔지니어들이 비자 문제를 이유로 잇달아 귀국하고 있다. 이는 지난주 미 국토안보부(DHS)가 조지아주 현지에서 실시한 대규모 이민 단속 이후 불거진 여파로, LGES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 로드맵에 적잖은 차질을 예고한다.

2025년 9월 1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LGES는 자체 직원뿐 아니라 하도급 협력사 인력에게도 “즉시 귀국하거나 현지 숙소에 머무를 것”을 지시했다. 회사는 동시에 “현지인력 고용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 마련”을 협력사에 요구하며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LGES는 미국에서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만 총 7곳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5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LGES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단행된 미 국토안보부의 불법고용 단속은 475명(한국인 300여 명 포함)을 한꺼번에 연행한, DHS 역사상 최대 규모 단속였다. 단속 대상 대다수는 설비 설치·시운전을 위해 파견된 한국 기술 인력이었는데, 이들은 ESTA(전자여행허가제)나 B-1(단기출장) 비자를 보유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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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A‧B-1 비자란?
ESTA는 관광‧회의‧단기 출장 등 제한적 상용 목적으로만 90일 이하 체류를 허용하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이다. 반면 B-1 비자는 180일 이내 단기 업무를 허용하지만 ‘현장 노동’은 명확히 금지돼 있다. 따라서 대형 설비 설치나 장기 기술 지원 업무는 반드시 H-1B(전문직)나 L-1(주재원) 같은 취업 비자를 받아야 한다.

로이터가 익명의 소식통 두 명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테네시주 스프링힐에 위치한 GM-LG 합작사 ‘얼티엄셀즈(Ultium Cells)’ 배터리 공장에서도 “대부분 또는 거의 전원”에 해당하는 한국 기술진이 최근 며칠 사이 순차적으로 귀국했거나 귀국 일정을 잡았다. 한 관계자는 “ESTA로 입국한 직원들은 이번 주 말까지 모두 빠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LGES 대변인은 “미국 출장 중인 임직원에게 귀국 혹은 자택 대기가 안내됐다”고 확인했지만, 협력사 직원 규모나 프로젝트 일정 지연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절했다. 제너럴모터스(GM) 대변인 역시 “운영 주체는 얼티엄셀즈”라며 논평을 미뤘고, 얼티엄셀즈는

“우리는 미 이민·고용법을 철저히 준수하며, 협력업체에도 같은 요건을 적용한다. 공장 가동은 정상”

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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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터리 3사—LGES, 삼성SDI, SK온—는 바이든 행정부 아래서 발표한 수백억 달러 규모 북미 투자를 실행 중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이후 강화된 이민 규제로 전문인력 단기 비자 발급이 지연되면서, 실무 현장에선 그간 ‘회색지대 해석’에 의존해왔다. 이번 대규모 단속은 바로 그 틈새를 정면으로 겨냥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당장 설비 셋업·정밀 튜닝 단계에 투입돼야 할 한국 장비업체 엔지니어의 공백이 길어질 경우, 미국 내 배터리 증설 일정이 수개월 이상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테네시·오하이오·미시간 등지에 건설 중인 ‘얼티엄셀즈’ 2·3·4공장, 애리조나 삼성SDI 공장, 조지아 SK온 공장 등도 예외가 아니다.

한편, 전기차(EV) 시장의 수요 둔화도 또 다른 변수다.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7,500달러 규모 연방 EV 세액공제가 이달 말로 일몰될 예정이어서,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감산과 투자 축소를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투자→공급 증가→수요 위축’의 삼중고가 한국 배터리 3사의 북미 전략을 압박한다.

전문가 진단
한양대학교 국제산업연구원 김도현 교수는 “이번 사태는 단순히 비자 행정 절차가 아니라, 공급망 리쇼어링을 가속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읽힌다”며 “한국 기업들은 현지화 인력 풀을 키우고, 협력사 계약 구조를 전면 재검토해야 상시적 규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노동·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향후 DHS가 불시 점검 빈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며, I-9 고용 자격 심사 및 H-1B·L-1 비자쿼터 선확보, NAFTA계열 TN 활용 등 복합 전략을 조속히 구현할 것을 권고한다.


향후 전망
① LGES가 제시한 현지 인력 대체·교육 로드맵이 예정대로 작동할지
② 현대차·GM 등 완성차사와의 합작 일정이 얼마나 지연될지
③ 미·한 간 무역협상에서 3500억 달러(약 460조 원) 규모 한국 투자 패키지가 어떤 수정·보완을 거칠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 장벽보다 인력·규제 장벽이 더 크다. 전기차 전환 속도의 가늠자는 배터리 셀보다 ‘사람’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 그리고 GM은 모두 “현재까지 대규모 일정 변경 계획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현지 공정 전문가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K-배터리’의 북미 전초기지는 예상보다 더 긴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