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스 CEO “트럼프 관세에도 버틸 의약품 재고 충분”

취리히 발(發) 글로벌 제약기업 노바티스(Novartis)가 미국 내 관세 리스크에 대비해 대규모 의약품 재고를 확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스 나라심한(Vas Narasimhan) 최고경영자(CEO)는 스위스 일간지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eue Zuercher Zeitung)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신규 관세가 자사 제품에 적용되더라도 2026년 중반까지 공급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5년 9월 2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노바티스는 이미 미국 시장에 투입할 완제 의약품 뿐만 아니라 원료의약품(API)과 중간체까지 다층적 재고 체계를 구축해 놓았다. 회사는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의약품이 현행 39% 수입세 면제 대상에 속해 있으나, 워싱턴이 진행 중인 ‘섹션 232 조사(Section 232 Investigation)*’ 결과에 따라 최대 250%에 이르는 ‘징벌적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섹션 232 조사는 미국 무역 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국가안보 차원의 수입규제 수단이다. 철강·알루미늄에 적용된 사례가 유명하며, 특정 산업이 미국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판단되면 행정부가 대규모 관세 또는 수입쿼터를 부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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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의약품은 지난달 미국이 스위스산 품목에 일괄 적용한 39% 관세에서 예외 처리돼 있다. 그러나 업계는 섹션 232 조사 결과가 나오면 산업별 추가 관세가 확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는 미국 내 재고를 대폭 늘려 최소 2026년 중반까지 공급을 보장할 수 있다”라고 나라심한 CEO는 밝혔다.

EU와의 양자협정도 새 변수

미국은 지난 7월 유럽연합(EU)과 양자 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부 복제약을 제외한 의약품에 1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교차의존성을 감안하면 스위스산 의약품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바티스는 중장기적으로 미국 내 생산 비중을 확대해 ‘현지 생산·현지 소비’ 구조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미국에서만 230억 달러(약 30조 원) 규모의 중기 투자를 발표했다.

나라심한 CEO는 “핵심 의약품을 미국 시장 전용으로 현지에서 제조하는 데 3~4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2년 안에는 최종 충전·포장 공정을 미국 공장으로 이전해 관세 부담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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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나리오 대비”

CEO는 이어 “섹션 232 조사 결과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으나, 어떤 관세율이든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설비 확충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부가 이해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실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노바티스가 현재 확보한 재고와 공급계약, 그리고 미국 내 공정 전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최대 250% 관세가 갑작스럽게 발효되더라도 매출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시각

글로벌 공급망 전문가는 “생명공학·제약 산업은 원재료 수급부터 완제 생산까지 공정이 복잡해 단기간 관세 회피가 쉽지 않다”면서도 “노바티스처럼 재고 비축과 현지화 전략을 병행하면 관세 위험을 흡수할 ‘완충지대’가 생긴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통상 전문가는 “섹션 232 조사는 본래 국가안보 목적이지만, 사실상 협상 지렛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미 대선 국면에서 건강보험 비용 인하를 노리는 행정부가 제약사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노바티스는 미국 외에도 스위스, 슬로베니아, 싱가포르 등에서 글로벌 생산 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복수 지역 생산 체계를 더욱 분산시켜 지역별 정책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용어 풀이

• 재고(stockpile): 불확실성에 대비해 일정 기간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확보해 둔 물량.
• 충전·포장(fill & finish): 의약품 유효성분을 용기에 주입하고 라벨·패키징을 완료하는 최종 공정. 통상 전체 제조 기간의 20~30%를 차지한다.
• 관세율 250%: 수입가격의 2.5배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하는 ‘초고율 관세’로, 사실상 수입 차단 효과가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노바티스는 장기 재고, 현지화 투자, 공정 이동이라는 ‘3단 방어선’으로 무역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 회사가 제시한 시간표대로 미국 생산 전환이 완료되면, 향후 보호무역 조치가 확대돼도 직접적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