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국부펀드(자산 2조1천억 달러 규모)가 2004년 도입된 윤리 가이드라인 이후 20여 년간 금지해온 주요 방산기업 투자를 2027년부터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럽 방위 관련 가변적 발언으로 촉발된 안보 환경 변화가 자리한다.
2025년 11월 13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시행될 경우 핵무기 부품을 제조한다는 이유로 현재 투자 제외 명단에 올라 있는 14개 글로벌 방산기업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진다. 이들 기업의 합산 시가총액은 약 1조 달러로 추산되며, 해당 종목군 편입은 세계 최대 규모인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포트폴리오 지형을 의미 있게 바꿀 수 있다.
노르웨이 의회는 11월 4일 국부펀드의 윤리 가이드라인 재검토에 찬성했다. 노르웨이 재무부는 위원회를 구성해 검토를 시작했으며, 2026년 10월 권고안을 제출하고, 2027년 6월 의회 표결을 거친다는 일정이 제시됐다. 이는 사실상 2027년부터의 정책 전환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는 14개 방산기업은 로키드마틴(Lockheed Martin), 보잉(Boeing), 에어버스(Airbus), BAE 시스템즈(BAE Systems), 사프란(Safran), 탈레스(Thales), BWX 테크놀로지스(BWX Technologies), 노스타롭 그런먼(Northrop Grumman), 플루어(Fluor),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Huntington Ingalls Industries), 제이컵스 솔루션즈(Jacobs Solutions), L3해리스 테크놀로지스(L3Harris Technologies), L&T 등이다. 이들은 핵무기 관련 부품을 포함한 방산 품목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투자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과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에서 기피되던 방산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용성이 확대되고 있다. 유럽 각국은 국방비 증액에 나섰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의 동맹국 부담 증대 요구가 이어지면서 방산업에 대한 시각이 변화했다. 새로운 안보 환경은 방산주를 수익 잠재력이 높은 투자처로 재평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크누트 셰르(노르웨이 국부펀드 초대 최고경영자, 1998~2007 재임)는 로이터에 ‘자유는 ESG보다 중요하다’며 ‘유럽은 러시아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 왜 우리가 무기 산업에 투자하지 못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 정부가 투자 배제한 바로 그 기업들로부터 실제 무기와 장비를 구매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국부펀드의 ‘유행 선도’ 효과도 주목된다. 2016년 이 펀드는 석탄 매출 비중 30% 이상 기업을 배제하는 기준을 도입하며 글로벌 ESG 투자 흐름에 큰 영향을 준 바 있다. 이번에도 가이드라인 변경 시 다른 기관투자가가 동조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정부와 의회의 인식 변화도 뚜렷하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재무장관(전 NATO 사무총장)은 10월 24일 의회에서 ‘한편으로 우리는 그러한 방산기업에 대금으로 거액을 지불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허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기업에서 더 적은 금액의 투자수익을 받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재무부는 위원회 검토 권한을 부여하면서 ‘딜레마’를 명확히 했다. 노르웨이는 로키드마틴의 전투기와 BAE 시스템즈의 호위함을 구매하지만, 20년 전 합의에 따라 국부펀드는 이들 기업에 투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재무부는 위임장에서 ‘그 이후 두 회사의 무기 생산 관여 수준과 안보 정책 환경 모두 변했다’며, ‘핵무기는 NATO의 억지 전략의 근간이며, 노르웨이는 그 일부’라고 적시했다. 소수 여당인 노동당 정부는 규정 변경을 지지할 충분한 세력의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제2당인 진보당의 한스 안드레아스 리미 원내대표는 로이터에 ‘우리는 핵무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나, 그것은 NATO 전략의 일부이고 우리는 NATO 회원국이다. 투자하지 못해야 할 논리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제3당인 보수당도 긍정적이다. 신임 당수 이네 에릭선 쇠레이데는 올해 초부터 관련 변경을 제안해 왔다. 한편 엘렌 레이탄 재무차관은 위원회 권고 이전에 정부가 입장을 정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위임장에서 밝힌 범위를 넘어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견도 존재한다.
사회좌파당 대표 키르스티 베르그스퇴는 10월 23일 의회에서 ‘우리는 자주, 노르웨이가 거래하는 기업에 투자할 수 없다는 것이 역설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정말 그런가. 우리나라가 필요한 장비를 구매하는 것과, 예컨대 핵무기에 투자하는 것 사이에 정말로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윤리적 이유에 따른 ‘투자 회수’(디베스트먼트) 중단 기류도 감지된다. 인구 560만의 NATO 회원국 노르웨이는 EU 비회원이며 북극권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다. 윤리 배제 권고를 담당하는 윤리위원회 전 위원장 올라 메스타드는 ‘사건 전개를 반영하도록 윤리 가이드라인을 손볼 수 있어야 한다’며, ‘전쟁 전기(프리워) 혹은 전간기적 상황에 들어섰다고 보고 무기 배제 기준을 다르게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분석가들은 윤리적 투자를 이유로 국제 기업에 투자 회수 결정을 내릴 때 외교·정치적 역풍이 과거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의회는 최근 이 같은 디베스트먼트를 일시 중단했다.
셰르는 ‘정치화된 시장의 새 질서 속에서 우리는 희석, 자본 통제 도입, 자산 몰수, 금융 거래의 무기화 등으로 인해 수익 회수가 수십 년 지연될 위험을 더 예민하게 인식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100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펀드 자산의 52.4%, 액수로는 약 1조 달러가 미국의 주식·채권·부동산에 투자돼 있다. 9월 미국 국무부는 이스라엘 당국의 가자지구 및 서안지구 내 제품 사용을 이유로 한 캐터필러 투자 회수 결정과 관련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핵심 용어 설명
• ESG: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기업의 비재무적 책임을 반영해 투자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무기, 특히 핵무기 관련 산업은 ESG 배제 대상에 포함돼 왔다.
•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 국가가 축적한 재원을 바탕으로 장기 수익과 재정 안정성을 추구하는 투자 기구다. 노르웨이의 경우 석유·가스 수익을 재원으로 하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디베스트먼트(Divestment): 환경·윤리·인권 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기업의 주식을 매도해 투자관계를 끊는 행위다. 반대로 투자 재개는 윤리 기준의 해석 또는 정책 변화와 맞물려 이뤄진다.
분석: 안보 현실주의와 윤리 투자 사이의 균형
이번 노르웨이의 검토는 안보 현실주의가 윤리 투자 원칙을 압도하는 세계적 추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NATO의 억지 전략에서 핵 억지력은 구조적 위치를 차지하며, 러시아의 침공 이후 유럽 국가들의 방위 태세 강화는 비가역적 흐름에 가깝다. 이러한 여건에서 방산주에 대한 정책적 ‘예외’를 인정하려는 시도는 투자자 입장에서 위험-수익(Risk-Return) 프로파일을 재규정하게 만든다.
정책이 실제로 2027년에 변경될 경우, 1조 달러 규모의 방산주 유니버스가 국부펀드의 투자 레이더에 들어오게 된다. 이는 유동성·거버넌스·공시 수준이 높은 대형 방산주에 추가적인 수요 압력을 제공할 수 있으며, 다른 ESG 성향 기관투자가에게도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분야’라는 예외 논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WSMD) 관련 투자가 초래할 평판 리스크는 여전히 상존한다.
정치·지정학적 리스크의 금융화 역시 중요한 변수다. 셰르가 지적했듯, 자본 통제와 몰수, 금융 거래의 무기화는 장기 투자자에게 비대칭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윤리 기준을 근거로 한 투자 회수 결정이 단지 ‘가치 지향’의 문제를 넘어, 국가 간 갈등의 직접적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노르웨이의 새 기준은 ‘안보 예외’를 명시하면서도, 절차적 투명성과 사후 점검 장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선택은 방산주를 둘러싼 국제 규범의 경계를 재설정할 수 있다. 투자 개방이 확정되기까지는 위원회 권고(2026년 10월)와 의회 표결(2027년 6월) 등 시간이 남아 있지만, 정책 논리(국가 안보·동맹 의무)와 투자 논리(수익·분산효과)가 수렴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는 양상이다. 반대 측의 핵무기 윤리성 문제 제기는 계속될 것이며, 최종 설계안이 핵무기 직접 생산과 보조 부품·이중용도 기술 간 경계를 어떻게 그리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