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스위스)】 세계 최대 식음료 기업 네슬레(Nestlé S.A.)의 신임 최고경영자(CEO) 필립 나브라틸(Philipp Navratil)이 조직 전반에 “속도와 혁신”을 주문하며 첫 공식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글로벌 임직원 화상 행사 직후 작성한 소셜미디어 글에서 각자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기민한 의사결정으로 회사의 성장 동력을 끌어올리자고 강조했다.
2025년 9월 1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나브라틸 CEO는 링크드인(LinkedIn) 게시물을 통해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새로운 네슬레는 빠른 실행력(moving fast)과 신선한 아이디어에 대한 개방성(open to fresh ideas)을 무기로 삼아 맛있고 건강하며 합리적인 가격의 식품을 미래 세대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What can each of us do to make Nestlé better, smarter and faster?”라는 질문을 던지며 모든 임직원이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해석하면 ‘더 나은·더 스마트한·더 빠른 네슬레’를 만들기 위해 각자 어떤 행동을 취할지를 스스로 묻고 답하라는 주문이다.
나브라틸은 9월 1일 공식 취임했다. 전임 CEO 로랑 프레이스(Laurent Freixe)가 사내 미공개 오피스 로맨스 문제로 해임되면서 2선에서 갑작스럽게 승진한 인물이다. 그는 20년 넘게 네슬레에 몸담으며 초콜릿·커피·유아식 부문을 두루 거쳤고, ‘실적 지향형 리더’로 통한다.
2025년 목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나브라틸은 “이미 공개된 2025년 재무 및 지속가능성 목표를 흔들림 없이 달성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으나, 과거 네슬레는 영업이익률(Ebita) 17% 내외와 탄소 배출 저감, 포장재 순환경제 달성을 중기 과제로 설정해 왔다.
올해 7월 네슬레는 유기적 매출 성장률(환율 및 인수·매각 효과 제거 기준)을 상향 조정하며 2025년 영업이익률을 16% 이상으로 유지 또는 상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기적 성장은 기업의 실질 판매력과 가격 정책이 직접 반영되는 지표라는 점에서 전사 전략의 핵심 성과 척도로 사용된다.
네슬레는 ‘킷캣(KitKat)’ 초콜릿 바와 ‘네스카페(Nescafé)’ 인스턴트 커피를 비롯한 2,000여 개 이상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막강한 포트폴리오는 높은 고정비를 커버하면서도 규모의 경제, 원가 절감, 프리미엄 제품 확장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최근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소비자가 저가 브랜드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비용 통제와 혁신의 이중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다.
또 다른 경영 변동으로는 폴 불케(Paul Bulcke) 이사회 의장 교체가 있다. 회사에 46년간 몸담아 온 불케 의장은 얼마 전 “이달 말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네슬레는 차기 의장 선임 절차를 진행 중이나, 아직 구체적인 인사안은 공개되지 않았다. 의장과 CEO 동시 교체는 스위스 대기업 역사상 드문 사례로,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나브라틸 CEO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인클루시브(포용적) 혁신 문화는 속도와 유연성이 생명”이라며 “네슬레답게 행동하되, 과거의 성공 방식에만 얽매이지 말자”고 강조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메시지가 “네슬레판 애자일(agile) 선언”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복잡한 매트릭스 조직을 운영해 온 네슬레는 의사결정 단계를 줄이고, 현장 중심 혁신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지속해 왔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R&D 프로토타입 승인 절차를 8단계에서 4단계로 축소했고, 스타트업 파트너십 전용 투자펀드도 확대했다.
또한 SNS를 통한 직접적 소통 방식을 택한 점도 눈길을 끈다. 스위스 전통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사내 이메일이나 보도자료 대신 공개형 SNS에서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젊은 세대 직원과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낡은 관료주의와의 결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 시각: 필자 판단으로, 나브라틸이 강조한 ‘속도’는 단순한 신제품 출시 주기 단축을 넘어, 비용 구조와 공급망의 전반적 간소화를 포함한다. 16% 이상의 이익률을 유지하려면 가격 인상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신선한 아이디어’는 전통적 대량생산 모델에서 벗어나 맞춤형 영양, 친환경 패키징 같은 미래형 세그먼트로의 확장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스위스 기업 문화는 합의(consensus) 중심이라 의사결정이 느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CEO 교체와 의장 교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배경에는,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 ‘실속 있는 속도전’을 추진하려는 이사회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나브라틸의 ‘Better·Smarter·Faster’ 구호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① 공급망 탄력성 확보, ② 디지털 전환 가속, ③ 지속가능성 투자 확대라는 세 가지 과제 해결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형 소비재 기업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은 현 시점에서, 네슬레의 행보는 글로벌 식품 산업 전반의 ESG 잣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편 네슬레는 스위스 증시(SIX)와 미국 장외시장(ADR)에서 거래된다. 전일 종가는 108.50스위스프랑, 연초 대비 6% 상승했다※미공표 수치·참고용. 이번 경영진 교체 효과가 주가와 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10월 예정된 3분기 실적 발표에서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면, 네슬레는 급변하는 거시 환경 속에서 ▲조직 기민성 강화 ▲혁신 문화 내재화 ▲지배구조 개혁 등의 숙제를 안고 있다. 필립 나브라틸 CEO의 메시지는 이러한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상징적 신호탄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