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 스위스 식품 대기업 네슬레( Nestlé )가 폴 불케(Paul Bulcke) 회장의 조기 사임과 함께 인디텍스(Inditex) 전 최고경영자(CEO)인 파블로 이슬라(Pablo Isla)를 차기 회장으로 지명했다고 17일(현지시간) 밝혔다.
2025년 9월 1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인사 소식 이후 네슬레 주가는 취리히 증시 개장 전 거래(프리마켓)에서 약 1% 상승한 수준에서 출발할 것으로 시장은 내다보고 있다. 네슬레 주가는 지난 12개월 동안 18% 가까이 하락해 투자자 신뢰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네슬레는 킷캣(KitKat) 초콜릿 바와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 네스카페(Nescafé)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성장 정체와 부채 증가, 잇따른 경영진 교체로 유례없는 혼란을 겪어 왔다.
경영 불안 해소가 관건
공개 자료에 따르면, 불케 회장의 사임 결정은 불과 2주 전 로랑 프레이스(Laurent Freixe) CEO가 사적인 관계 문제로 전격 해임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필리프 나브라틸(Philipp Navratil) 신임 CEO, 그리고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이슬라가 세계 최대 포장 식품 기업의 경영 전반을 책임지게 됐다.
“네슬레는 다시 잔잔한 물살로 돌아가 옛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
스위스 금융사 뱅크 폰토벨(Bank Vontobel)의 장필리프 베르치(Jean-Philippe Bertschy) 애널리스트는 수년간 이어진 성장 부진, 리더십 혼선, 소통 약화, 지배구조 문제, 그리고 인사 난맥을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변화를 계기로 저성장 사업부 정리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수 있다”면서 “조직 전반에 대대적인 쇄신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인디텍스 출신 리더십의 의미
인디텍스는 스페인 패션 브랜드 자라(ZARA)를 보유한 글로벌 의류 유통 그룹이다. 이슬라는 CEO 재임 기간(2005~2022년) 동안 빠른 제품 회전율과 공급망 혁신으로 인디텍스를 세계 최대 패션 리테일러로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식품 업계 경험은 부족하지만, 공급망 최적화와 브랜드 포트폴리오 관리 역량이 네슬레의 저성장 난제를 해결할 카드로 주목받는다.
시장 전문가들은 ①전 세계 2,000개 이상의 브랜드를 거느린 네슬레의 복잡한 사업 구조, ②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마진 압박, ③건강·친환경 소비 트렌드 대응 등을 과제로 꼽는다. 인디텍스식 민첩한 의사결정과 데이터 기반 재고 관리 노하우가 이 과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실적 및 주가 흐름
네슬레는 2025년 상반기 매출 성장률 2.4%, 순이익 감소 5.1%를 기록했다. 이는 주요 경쟁사인 유니레버(Unilever)와 비교해 뒤처지는 성적이다. 불확실성 확대와 소비자 지출 둔화로 주가는 12개월 동안 18% 하락하며 스위스 대형주 가운데 부진한 종목으로 분류됐다.
한편, 네슬레는 2025년 상반기 기준 순부채 650억 스위스프랑(약 102조 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금리 상승기에 재무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새 경영진이 포트폴리오 매각·스핀오프 등으로 부채를 축소할지 여부에 기관투자가의 관심이 쏠린다.
투자자 관점에서 본 향후 시나리오
1) 단기적 반등 가능성
경영 불확실성 해소는 통상 주가에 긍정적이다. 개장 전 1% 상승은 제한적이지만, 강도 높은 구조조정·지배구조 개선 계획이 제시될 경우 기관 수급이 유입될 공산이 있다.
2) 중장기 구조적 과제
브랜드 포트폴리오 슬림화, 신흥시장 성장 모멘텀 재확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 대응 등이 남아 있다. 이슬라 회장 내정자는 스페인 Inditex 재임 시절에도 과감한 디지털 전환을 주도했으며, 이를 식품 부문에 접목할지 주목된다.
3) 위험 요인
패션 리테일과 식품 제조업은 원가 구조와 시장 역학이 상이하다. 이슬라가 식품 규제와 원자재 변동성이라는 새로운 리스크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지가 관건이다.
전문가 해설: ‘경영진 교체’와 ‘투자 심리’의 함수
기업 지배구조 전문 변호사 안드레아 슈미트(Andrea Schmidt)는 “네슬레 현 경영문화는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면서 “이슬라 내정자가 자라의 ‘현장 중심’ 의사결정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혁신 속도가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반면 일부 애널리스트는 “부채 축소와 사업 개편 방향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단기 반등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네슬레는 2025년 10월 예정된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중장기 전략을 발표할 예정이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인디텍스(Inditex) : 스페인 최대 의류 유통 그룹으로, 자라(ZARA), 베르슈카(Bershka) 등 8개 브랜드를 운영한다.
킷캣(KitKat) : 1935년 영국에서 출시된 웨이퍼 초콜릿 바로, 네슬레 대표 제품이다.
네스카페(Nescafé) : 1938년 출시된 세계 최초 상업용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
ESG :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하는 투자·경영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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