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레인 맥스웰·美 부장관 9시간 비밀 면담…‘엡스타인 수사’ 투명성 논란 가열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의 핵심 공범으로 2021년 유죄 판결을 받은 길레인 맥스웰이 미국 법무부 토드 블랜치 부장관과 이틀간 총 9시간에 걸쳐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으나, 면담 내용과 향후 절차에 대해 어떠한 공식 설명도 발표되지 않았다.

2025년 7월 26일, NBC뉴스 보도에 따르면 블랜치 부장관은 워싱턴 D.C. 법무부 청사에서 25~26일(현지시간) 양일간 면담을 직접 주도했다. 법무부 서열 2위가 피고인을 단독으로 조사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수사팀 검사들이 배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법무부 관계자는 “부장관이 직접 나서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비밀 유지가 일반적이더라도, 통상은 담당 검사가 질문에 참여해 증언을 검증·기록한다는 점에서 이번 절차는 이례적이란 평가다.

피해자 측 변호인단도 불투명성에 우려를 표했다. 엡스타인·맥스웰 피해자 약 20명을 대리하는 변호사 잭 스카롤라는 면담 참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피해자 권리가 또다시 배제됐다”고 비판했다.

블랜치 부장관의 전례 없는 직접 면담을 두고, 뉴욕 연방검찰 출신 베릿 버거 변호사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행보일 수 있다”며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조사를 다 했다’는 명분 쌓기 가능성을 제기했다.

2005년 뉴욕 월스트리트 행사에 참석한 엡스타인과 맥스웰
2000년 마러라고 클럽에서 포착된 트럼프·엡스타인·맥스웰

정치적 파장도 확산 중이다. NBC뉴스 법률 분석가이자 전 맨해튼 지검 차장 검사인 캐서린 크리스천은 이번 면담이 엡스타인 관련 의혹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0년대 초 마러라고 클럽 등에서 엡스타인과 사교 활동을 한 사실이 알려져 있다.

미 법무부·FBI는 7월 6일 “10만 쪽에 달하는 엡스타인 자료를 전수 검토했으나 추가 기소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고, FBI 캐시 퍼텔 국장과 댄 본지노 부국장은 이러한 결과를 지지하며 추가 문서 공개를 거부했다. 음모론 확산에도 불구하고 수사 자료가 봉인되자,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투명성 결여를 비판하고 있다.

무엇을 물었나? 맥스웰 측 변호인 데이비드 오스카 마커스는 플로리다의 유명 형사 변호사로, 블랜치 부장관과 친분이 있다. 그는 면담 뒤 “블랜치 부장관이 100여 명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맥스웰은 모든 질문에 거침없이 답했다”고 전했다. 특정 인물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마커스 변호사: ‘그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안을 물었다. 맥스웰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고위 행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맥스웰은 진술 대가로 제한적 면책권(limited immunity)을 부여받았다. 이는 피고인이 진실을 말할 경우 진술이 불리하게 사용되지 않는 대신, 허위 진술이 확인되면 면책이 무효화되는 조건부 보호 장치다.

용어 해설: ‘제한적 면책권’은 피의자나 피고인이 검찰 조사에 협조할 때 부여되는 제도다. 진실한 진술로 수사에 도움이 되면 기소 유예 또는 형 감경 사유가 되지만, 거짓일 경우 기존 형량에 더해 위증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맥스웰은 이미 징역 20년을 선고받아 연방 교도소에 복역 중이며, 재판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따라서 면책권이 형 감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면 가능성도 거론된다. 25일 백악관 기자단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과 어울린 인사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래리 서머스 전 하버드 총장을 지목하며 “나는 엡스타인과 살지도 않았다”고 거리를 뒀다. 맥스웰 사면·감형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생각해 본 적 없다”면서도 “대통령 권한이니 가능하다”고 답했다.

뉴욕 남부지검 전직 검사 미미 로카는 이달 초 엡스타인·맥스웰 수사를 담당했던 모린 코미 검사(전 FBI국장 제임스 코미의 딸)가 해임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사건 통제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주장했다. 로카 전 검사는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법무부 수장이, 사건을 가장 잘 아는 검사 없이 피고인 말을 검증할 방법 없이 듣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기자 해설: 법무부 고위층이 직접 면담에 나선 배경에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첫째, 엡스타인 수사 종결 발표 이후 거센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퍼포먼스’ 성격이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 측근이던 블랜치 부장관이 2024년 트럼프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던 전력 때문에,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방어적 수사’ 가능성이다. 어느 쪽이든 투명성 확보가 관건이며, 피해자 참여 배제가 계속된다면 후폭풍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 사진은 2005년 뉴욕 월스트리트 콘서트 시리즈 행사(위)와 2000년 플로리다 마러라고 클럽 파티(아래)에서 촬영된 것으로,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