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작전 같았다”…美 이민 단속 후 귀국한 한국인 근로자들의 충격과 분노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들은 일주일간의 구금 생활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9월 4일 단행된 미국 국토안보부(DHS)의 대규모 이민 단속 이후 줄줄이 구금됐다가 13일 새벽 전세기편으로 귀국했다.

2025년 9월 12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단속은 미 국토안보부가 단일 사업장에 대해 실시한 사상 최대 규모(총 475명 구금)로 기록됐다. 특히 한국인만 300명 이상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단속 현장에 있던 한 엔지니어는 “10분도 안 돼 요원들이 공장 전역을 장악했다. 헬리콥터와 장갑차까지 등장해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민감성을 이유로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요원들이 비자 종류별로 노동자를 분리해 ESTA 무비자 프로그램 또는 B-1 비즈니스 비자 소지자를 현장에서 즉시 체포했다고 증언했다.

주목

“휴대전화가 바로 압수돼 가족에게 연락조차 못 했다.”

그는 구금 직후 가족들이 소식을 듣지 못해 공포에 떨었다고 덧붙였다.

ESTA(Electronic System for Travel Authorization)는 관광·회의 등 90일 이하 단기 방문객에게 허용되는 전자여행허가 제도다. B-1 비자는 미국 내 계약 협상이나 장비 점검과 같은 ‘업무상 방문’에 쓰이는 단기 체류 비자다. 두 비자 모두 현장 생산·노동 활동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는 점에서, 미국 당국은 이번에 체포된 이들이 허용 범위를 넘어선 ‘불법 취업’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미 이민세관집행국(ICE)은 “일부 근로자가 비자 범위를 초과한 활동에 종사하거나 체류 기간을 초과했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체류 자격 해석과 현장 조사 방식에 대해 미 당국과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연행·구금 과정을 전한 귀국자들의 증언은 열악한 구치소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이들이 수감됐던 조지아주 폴크스턴 구금센터의 물은 표백제 냄새가 났고, 식사는 “도시락용 통조림보다 못했다”는 것이다. 로이터가 ICE에 해당 의혹을 질의했지만, 당국은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주목

구금 기간 동안 외교 채널을 통해 석방 및 귀국 일정이 조율됐으나, 외교적 공방 탓에 출국이 지연돼 가족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황인송 씨는 구금된 동생을 마중 나온 자리에서 “일주일 내내 잠을 한숨도 제대로 못 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귀국자 장영선 씨(B-1 비자 소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에 남아 현지인 훈련을 도와달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봤다. 그러나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다시 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장영선의 동생 장영은 씨는 “동맹국 국민을 범죄자 취급한 장면이 분노를 일으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미국 노동시장 보호 정책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발생한 경고성 사건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한국 대기업이 미국 현지에서 인력을 투입할 때, 비자 요건노동법 준수 여부를 더욱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민·노동 전문 변호사인 김민재 미국변호사는 “최근 미국은 배터리·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서 외국인 숙련공 투입을 심사 강화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허가 범위를 넘는 행위를 ‘불법 취업’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향후 파장은 단순히 개별 근로자의 비자 문제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합작 공장이 위치한 조지아주는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제조업 투자를 적극 유치해 온 지역으로, 이번 사건이 현지 고용 창출 논쟁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국내 기업들은 대규모 해외 파견로컬 고용 확대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는 귀국자에 대한 심리 치료·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재발 방지를 위해 기업·노동자 대상 비자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공급망 구축이 가속화되는 만큼, 국제 인력 이동국가 간 규제가 충돌하는 사례가 더 자주 나타날 것”이라며 “기업과 정부 모두 사전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