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풍 속 신발·의류 업계 ‘빅딜’ 러시…사상 최대 210억 달러 M&A 성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무역전쟁이 미국 신발·의류 업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관세 부담을 상쇄하거나 향후 3년 반의 정치·규제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은 합병·인수(M&A) 또는 비상장 전환이라는 ‘생존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2025년 9월 1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 의류·신발 부문에서 발표된 M&A 규모는 약 210억 달러(한화 약 28조 원)로, 1970년대 이후 집계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세운 종전 최고치 161억 달러를 단숨에 넘어선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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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케쳐스(Skechers USA)는 5월 초 94억 2,000만 달러에 달하는 비상장 전환(Leveraged Buyout)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회사가 연간 실적 가이던스를 철회한 직후 나왔다. 스케쳐스는 75개 신발 기업과 함께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관세는 업계에 존립 위협(existential threat)“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대표적 사례는 풋라커(Foot Locker)다. 풋라커는 5월 총 24억 달러 규모로 딕스 스포팅 굿즈(Dick’s Sporting Goods)에 매각됐다. 두 회사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관세 우려를 전달한 바 있으며, 이번 거래는 “리버레이션 데이(Liberation Day)”라 명명된 4월 2일 관세 발표가 신속한 의사결정에 불을 붙인 것으로 증권신고서(SEC)가 밝히고 있다.

“관세가 난무하는 환경에서 규모의 경제는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협력사와의 가격·공급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카르멘 몰리노스(Carmen Molinos), 모건스탠리 글로벌 소비재·리테일 투자은행 부문 공동대표

모건스탠리는 8월 캐나다 의류업체 길단 액티브웨어(Gildan Activewear)22억 달러 규모 헤인즈브랜드(Hanesbrands) 인수 자문을 맡았다. 두 회사는 아시아보다 중남미·카리브해 생산 비중이 높고, 미국산 면화를 주로 사용하는 덕분에 관세 충격을 상대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길단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글렌 차맨디(Glenn Chamandy)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기회를 적극 활용할 최적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J.P.모건 역시 굵직한 거래를 다수 주선했다. 올해만 해도 3G캐피털의 스케쳐스 비상장화, 브랜드 매니지먼트사 어센틱 브랜드 그룹(Authentic Brands Group)14억 달러 규모 게스(Guess) 인수를 조력했다. 어센틱은 이어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로부터 도커스(Dockers)를, 블루스타 얼라이언스(Bluestar Alliance)는 VF코퍼레이션(VF Corp.)으로부터 디키즈(Dickies)를 각각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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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매니지먼트 기업1은 브랜드 지적재산권(IP)을 매입한 뒤, 제조·디자인·판매 역량을 가진 운영 파트너에 라이선스를 주어 수익을 창출한다. 솔로몬 파트너스의 소비재·리테일 부문 책임자 데이비드 쉬프만(David Shiffman)은 “이들 기업은 중견 브랜드부터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형 브랜드까지, 최근 가장 활발한 ‘사냥꾼’”이라고 말했다.

비상장 전환은 관세와 비용 증가로 실적 변동성이 커진 기업에 매력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공시의무에서 벗어나 장기 전략을 모색하기 쉽다는 이유다. 풋라커는 올해 1분기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 압박 속에, 이사회가 5월 10일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기로 결의했고, 단 나흘 만에 매각 계약서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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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들은 “연말까지 더 많은 ‘빅딜’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베인캐피털(Bain Capital)은 현재 캐나다구스(Canada Goose) 지분 매각을 타진 중이며, 랜즈엔드(Lands’ End)도 복수의 브랜드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은 상태다.

용어 풀이
1 ‘브랜드 매니지먼트(Brand Management) 회사’는 제조설비를 직접 보유하지 않고, 라이선스 전략을 통해 브랜드 가치 극대화·로열티 수익 확보에 초점을 맞춘 사업 모델이다. 따라서 경기 변동이나 관세 충격에 비교적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전문가 시각
이번 M&A 러시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첫째, 미국 내 소비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관세 리스크’가 매각가 협상에서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둘째, 생산기지를 멕시코·중남미로 이전하는 ‘니어쇼어링’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셋째, 브랜드 가치·IP 중심의 무형자산 투자가 실물 설비투자보다 안전자산으로 부상하면서, 브랜드 매니지먼트사의 몸값이 높아지는 추세다.

결국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자본시장에선 ‘규모 확대·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이 계속해서 주류를 이룰 전망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공급망 구조, 생산지 지리적 분산, 원자재 국적 등을 세밀히 따져 기업 가치를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