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바드 국가정보국장, CIA 잠복요원 실명 공개로 내부 갈등‧안보 우려 증폭

미국 정보당국의 정점에 위치한 두 수장, 툴시 가바드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DNI)존 뤽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 간의 갈등이 잠복요원 실명 공개 사태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25년 8월 30일, NBC뉴스 보도에 따르면 가바드 국장은 지난주 37명의 현직‧전직 정보요원에 대한 보안인가(Security Clearance) 박탈 사실을 공표하면서, 그 가운데 한 명이자 CIA의 잠복 신분(undercover) 요원의 실명까지 포함해 공개했다. 내부 관계자들은 “CIA 전체 조직이 충격에 빠졌다”고 전했다.

전·현직 복수의 정보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가바드 국장이 “정보의 정치화(politicization)‧무기화(weaponization)”를 단호히 근절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지만, CIA는 “사전 협의조차 없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뤽클리프 국장은 공식 논평에서 “미국민 안전 확보가 최우선”이라면서도, 동료 기관과의 조율 부재가 빚은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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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안인가’가 중요한가

보안인가는 국가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으로, 군‧정보‧방산 업계 경력과 직결되는 ‘생명줄’과 같다. 박탈 즉시 기밀 취급이 불가능해져 사실상 경력 단절로 이어진다. 게다가 잠복요원의 신원이 노출될 경우 본인 안전은 물론, 해외 공작망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실명 공개된 요원은 누구인가

NBC뉴스는 신변 보호를 이유로 이름을 익명 처리했으나, 해당 인물은 러시아‧유라시아 분석을 전담해온 10년 차 베테랑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알래스카 정상회담 준비를 담당했고, 곧 유럽 현장 임무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정상회담 직후, 보안인가가 박탈되면서 경력은 사실상 끝났다.

“정상회담 준비를 총괄한 뒤 돌연 해임 통보를 받았다. 이유도 모른다.” — 익명의 전 동료 증언

“심기 회복” 위해 단행된 조치라는 분석

두 명의 전직 고위 관리들은 “가바드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 회복을 위해 내부 숙청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각료회의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냈군, 툴시”라며 가바드를 추어올렸다.

과거에도 DNI와 CIA 사이 ‘텃밭 싸움’은 있었지만, 잠복요원 실명 공개 같은 사례는 이례적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도 데니스 블레어 DNI가 리언 파네타 국장과 불화 끝에 16개월 만에 사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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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NI vs CIA: 조율 부재 공방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DNI 산하 국가정보국(ODNI) 대변인 올리비아 콜먼은 “모든 기관과 협의했다”고 해명했으나, CIA 측은 “협의라 부를 만한 절차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ODNI는 명단에서 소속 기관을 가리지 않았으므로 잠복 신원 노출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 CIA 비서실장 래리 파이퍼는 “관련 기관과의 사전 확인 없이 실명과 보안인가를 동시에 박탈하는 것은 상식 밖”이라며 정보원 안전·동맹국 신뢰 훼손을 경고했다.

‘정치적 숙청’ 논란…맥카시즘 회귀?

가바드가 지목한 37명 중 상당수는 오바마·바이든 행정부 출신이나 2019년 트럼프 탄핵조사 지지를 표한 인물들이다. 국방·IT 기업 취업에 필수적인 보안인가를 잃으면 평생 커리어가 타격을 받는다. 국가안보 전문 변호사 마크 자이드는 이번 조치를 “맥카시 선풍을 연상케 하는 위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정보를 누출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한 자들을 걸러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야엘 아이젠스타트 전 CIA 요원 등 당사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한 숙청이 민주주의 규범을 훼손한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천재’의 해임

명단에는 국가안보국(NSA)빈 응우옌도 포함됐다. 그는 17세에 NSA에 스카우트되어 인공지능·사이버보안 분야 최고 전문가로 불린 인물이다. 전 동료들은 “미 정부가 스스로 인재를 잃었다”고 평했다.

정보기관 간 패권 다툼, 향후 전망

가바드 국장은 2020년 하원 정보위 공화당 보고서를 CIA 반대에도 전면 공개했으며, 대통령 일일 정보브리핑(PDB) 제작권을 CIA 라글리 본부에서 ODNI 맥린 사무실로 이전하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는 CIA의 전통적 영향력 축소를 의미해 향후 기관 간 주도권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다.

전문가 시각*: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충성 경쟁’이 국가안보의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우려한다. 특히 잠복요원 보호라는 레드라인이 침해되면 해외 협력국·정보원 네트워크가 크나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잠복요원(Undercover Officer): 신분을 숨기고 현장 정보를 수집·공작하는 요원으로, 신원 노출 시 생명·작전 모두 위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