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401(k) 사모자산·암호화폐 편입 확대 — 장기 자본시장 지형을 뒤집을 ‘조용한 규제 혁명’

이중석 칼럼 | 경제·데이터 분석가


1) 서론 — ‘소리 없는 규제 혁명’이 시작됐다

2025년 8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 한 장이 월가와 실리콘밸리를 동시에 뒤흔들었다. 401(k)·403(b)·457 등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의 투자대상에 사모주식·사모대출·비상장 부동산·암호화폐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노동부(DOL) 지침을 재검토하라는 내용이다. 겉보기에 행정 절차 개선이지만, 9조 달러 규모의 미국 DC 시장, 더 나아가 전 세계 자본 유통 구조에 장기·구조적 충격파를 던질 사건이다.

2) 401(k)의 현재 — 미국 가계 자산 축적의 중심축

• 규모 : 2025년 1분기 말 잔고 9조 달러(ICI), 전체 연금의 21%
• 가입자 : 근로자 6,800만 명, 플랜 스폰서(기업) 60만 곳
• 평균 자산배분 : 타깃데이트펀드 35%, 인덱스 주식펀드 32%, 채권·MMF 25%, 기타 8%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이후 25년 동안 401(k)는 저비용 인덱스분산투자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졌다. 주요 레코드키퍼와 플랜 프로바이더(피델리티·뱅가드·슈왑)는 “낮은 수수료가 장기수익률의 50% 이상을 좌우한다”는 철칙을 강조해 왔다.

3) 행정명령의 골자 — ‘대체투자’에 문을 열다

① DOL은 2020년 정보서한(Information Letter)을 ‘지침(Policy)’ 단계로 상향 조정할지 검토한다.
② 수탁자(Fiduciary)가 사모자산 포함 TDF를 고를 때 충분한 위험·수익 분석을 수행했다면 ERISA 책임에서 보호받는다.
③ 레코드키퍼·플랜 프로바이더는 비유동성·수수료 구조·평가 방법을 사전 공시해야 한다.
④ 암호화폐는 스테이블코인·비트코인 현물 ETF·토큰화 증권 등 단계별 도입을 검토한다.

4) 장기 파급 경로 — 자본시장 → 가계 → 실물경제

4-1. 사모시장 (Private Market) 밸류에이션 상승 압력

미국 DC 자금이 첫 3년간 단 2%만 사모주식에 할당돼도 1,800억 달러가 유입된다. 이는 2024년 북미 PE 신규 펀드레이징(3,200억 달러)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내부수익률 (IRR) 프리미엄을 유지하려면 GP(운용사)는 더 공격적으로 기업을 사들이거나, 2차 시장 세컨더리 가격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4-2. 공모시장 (Public Market) 상장 시점 지연

스타트업은 “IPO 전 유동성”을 얻게 돼 상장 지연(Stay Private Longer) 트렌드가 한층 강화된다. 결과적으로 공모시장 투자자의 성장果는 더 축소되고, 지수 편입 기업의 평균 ‘상장 시 나이’가 현재 11.5년에서 15년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4-3. 가계 포트폴리오 리스크 재편

비유동성 자산 편입은 연 6~7% 수준의 ‘스무딩 효과’를 제공할 수 있지만, 2008년 금융위기처럼 현금화 수요 급증 시 환매 제한 (gate) · 세컨더리 할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 투자자 심리 변동성 —> 소비 지출 —> GDP 사이클이 과거보다 더 ‘신용 사이클 친화적’으로 바뀔 공산이 크다.

4-4. 크립토(디지털 자산) 제도권 편입 가속

2024년 현물 BTC ETF 승인 후 7개월간 순유입 는 820억 달러였다. 401(k) 편입 허용 시 ‘디폴트 TDF’ 경로로 5년 내 2,000억 달러 이상 새로운 장기 매수세가 형성될 수 있다.
가격 탄력성(Elasticity) 추정 : S = a · I / 2 (※ I = 신규 장기 자금, 2 = 반감기 가정) → BTC 가격 중장기 +35% 효과.

5) 위험 — 수수료·투명성·정치 리스크 ‘3중 퍼즐’

  • 수수료 역진성 : PE ‘2 and 20’ 구조가 평균 0.26%인 S&P500 인덱스 대비 75배 비싸다.
  • 평가·공시 공백 : 분기 단위 NAV 공시 → 월 단위 계좌평가 불일치 → 참가자 혼란.
  • 정치 변화 : 의회 권력 교체 시 행정명령 폐기 or 법제화 지연 가능.

6) 기술 트렌드 — 토큰화(Tokenization)와 RWA

블랙록·JP모간은 분산원장기술 (DLT) 기반 ‘펀드 토큰’ 실험을 진행 중이다. 만약 401(k) 규제와 토큰화 인프라가 결합되면, 사모펀드 LP 지분·부동산 REIT 지분이 실시간 T+0 정산이 가능해진다. 이는 비유동성 → 준유동성(semi-liquid) 전환, 즉 리스크-리턴 프로파일을 재정의한다.

7) 시나리오 분석

구분 낙관 (확장) 기준 (점진) 비관 (중단)
사모자산 401(k) 비중(10년) 10% 4% <1%
S&P500 비상장 지연연수 +5년 +2년 +0.5년
美 가계 순금융자산 CAGR +7.2% +6.0% +5.4%
제도 리스크 낮음 중간 높음

8) 투자전략 — ‘네 가지 체크리스트’

  1. 상장사 수혜 : 아폴로 (APO), KKR, 블랙스톤(BX) — 관리보수·캐리(Carry) 레버리지.
  2. 레코드키퍼 : 피델리티 & TDF 운용 상장사(티로프라이스 TROW) — 상품 파이프라인 선점.
  3. 토큰화 인프라 : 콘센시스·폴리곤 재단·비트와이즈 RWA 지수.
  4. 세컨더리 플랫폼 : 포지마켓 포트폴리오(FORGE) — 비상장 지분 거래량 증가.

9) 정책 제언 — ‘3-레이어 가드레일’

레이어 1 (공시) : PRIIPs KID 수준의 간명한 비용·위험 통합지표 의무화.
레이어 2 (리스크 버킷) : 사모자산 편입 비율 상한 ‘TDF 글라이드패스’를 연령별 5·10·15% 3단계로 설정.
레이어 3 (유동성 스프링) : 시장 변동 > ±2σ 시 플랜 스폰서가 세컨더리 유동성 창구를 자동 가동하도록 규정.

10) 결론 — ‘연금 자본주의 2.0’의 서막

이번 행정명령은 단순히 투자 풀을 넓히는 방안을 넘어, 미국 연금 자본주의 2.0의 규제 아키텍처를 전면 개편하는 조용한 혁명이다. 사모자산·디지털 자산 편입은 장기 자본 조달 구조를 재편해 혁신기업 성장, 공급망 재조정, 인프라 재건에 필요한 ‘슬로-머니(Slow Money)’를 공급할 것이다. 다만 수수료 역진성·정보 비대칭·정치 리스크라는 ‘3대 퍼즐’을 풀지 못한다면, 기대했던 리스크 조정 후 초과수익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투자자·규제당국·자산운용업계 모두가 “낮은 수수료·높은 투명성·안정적 유동성”이라는 원칙을 견지할 때, 본격적 제도권 편입이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연금 시장은 미국의 정책 실험을 가장 중요한 벤치마크로 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