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알파벳)과 에픽게임즈 간의 반독점 분쟁에서 구글이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미국 제9연방순회항소법원은 만장일치 판결로 구글의 항소를 기각하고, 구글 플레이스토어(Play)에 대한 대대적 개편을 명령한 1심 결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2025년 7월 3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항소부(마거릿 맥키언 판사ㆍ다니엘 포레스트 판사ㆍ가브리엘 산체스 판사)는 “에픽게임즈의 소송 기록은 구글이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취한 반경쟁적 행위를 입증하는 증거로 가득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서 지난해 12월 배심원단이 구글의 독점 행위를 인정한 뒤, 제임스 도나토 판사가 지난 10월 내린 시정명령(injunction)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다. 해당 명령은 ▲사용자가 구글 플레이 내부에서 경쟁 앱스토어를 직접 내려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구글 플레이의 전체 앱 카탈로그를 경쟁사에도 개방하며 ▲결제 시스템 선택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독점(antitrust)’이란 무엇인가?
반독점법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이나 담합 등 경쟁 제한 행위를 규제해 소비자 이익과 혁신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 연방 법률 체계다. ‘셔먼법’ ‘클레이턴법’ 등이 대표적이며, 위반 시 기업 분할·과징금·행정명령 등 강력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구글은 항소 과정에서 “플레이스토어는 애플의 앱스토어와 경쟁하고 있으며, 1심 재판부가 이 사실을 배심원단에 설명할 기회를 봉쇄했다”는 절차적 하자를 주장했다. 또한 ‘금전적 손해배상’이 아닌 ‘행태 시정’을 구하는 사건은 배심 재판이 아닌 판사 단독 심리 대상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항소부는 “1심 법원이 광범위한 절차를 거쳐 충분한 심리를 진행했다”고 일축했다.
“이번 판결은 사용자 안전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선택권을 제한하며,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혁신을 저해할 것이다.” — 리앤 멀홀랜드(구글 규제담당 부사장)
구글 측은 즉각 성명을 내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을 지키기 위해 추가적인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항소부 결정은 전원합의체(En Banc) 재심 청구나 미국 연방대법원 상고가 가능하지만, 절차가 장기화될수록 구글의 사업 불확실성은 커질 전망이다.
반면 에픽게임즈 CEO 팀 스위니는 X(옛 트위터)를 통해 “이번 평결 덕분에 에픽게임즈 스토어 for 안드로이드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입점할 것”이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번 소송은 2020년 8월, 노스캐롤라이나주 캐리(Cary)에 본사를 둔 에픽게임즈가 “구글이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앱 유통ㆍ결제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며 제기한 것으로 시작됐다. 2023년 12월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구글의 시장지배적 남용을 인정했고, 이는 빅테크 반독점 규제 강화 흐름에 불을 붙였다.
동시에 구글은 검색·디지털 광고 분야에서도 미 법무부(DoJ)와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추가 소송을 받고 있어, ‘사면초가’ 국면에 놓였다.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에픽 편에 서서 ‘앱 생태계 개방’을 공개 지지하는 등, 빅테크 간 진영 구도가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안드로이드가 전 세계 모바일 OS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만큼, 이번 판결이 글로벌 앱 시장 규제 모델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EU 디지털시장법(DMA)이 2024년 3월부터 시행되면서 ‘사전 설치 앱 제거’와 ‘타사 결제 허용’이 의무화된 점도 구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향후 절차로는 1) 구글이 2주 내 En Banc 재심을 신청하거나 2) 90일 이내 연방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 사건 수용률이 약 1%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에픽게임즈는 2020년 동일 사안으로 애플도 제소해 부분 승소했으나, 애플이 “개발자 외부결제 유도 금지” 명령을 위반했다는 항소심 판결이 지난 1월 확정되며 양사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빅테크 기업의 ‘통행세’ 논란, 즉 앱 배포·결제 대가로 부과되는 30% 수수료 구조에 구조적 변화를 예고한다. 개발자와 이용자에게는 플랫폼 선택권 확대, 수수료 인하, 서비스 다양화라는 이점이 예상되지만, 보안·품질관리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소프트웨어 유통시장을 ‘단순 상품 판매’가 아닌 ‘서비스 플랫폼’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규제 강화 기조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 국회 입법동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제9연방순회항소법원의 이번 판단은 플레이스토어 구조 조정의 강제력을 한층 높였고, 구글로서는 글로벌 사업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분수령을 맞았다는 평가다. 에픽게임즈는 자사 스토어 확장 발판을 마련하며 ‘플랫폼 개방’ 전선을 확장했으나, 소비자 보호·보안 문제를 둘러싼 새로운 규제 논쟁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