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 한 줄의 관보(官報)가 던진 ‘대전환 신호’
2025년 9월 3일자 연방관보(Federal Register)는 단 세 문단으로 끝나는 고시문 하나를 게재했다. ‘Validated End User(VEU) 리스트에서 TSMC·SK하이닉스·삼성전자 등 7개 중국 현지 공장의 이름을 삭제한다’는 내용이다. 실무 문서 같지만,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에는 ‘10년짜리 지각변동’이 즉시 가격표로 매겨졌다.
1. VEU 제도는 무엇이었나?
- 도입 배경(2007) : 美 산업안보국(BIS)이 ‘안보에 위협이 없는 검증된 최종 사용자’에게만 신속·총량 허가를 부여
- 실제 혜택 : 中 생산라인 증설 시 장비 반입 승인 대기 30~60일 → 24시간 이내
- 파급 효과 : 2010년대 중국 반도체 투자 붐의 안전밸브 역할, 美 장비업체 매출의 최대 20% 보호막
이번 철회로 당장 2026년 1월 1일부터 모든 신규·교체 장비는 ‘건별 심사’ 루트를 밟아야 한다. BIS 내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4nm 이하 로직·128단 이상 3D NAND·18nm 이하 D램 장비는 사실상 허가 거절 90% 이상이다.
2. 중국 공장별 직격탄 규모
기업 | 중국 팹 | 주요 공정(2025) | 글로벌 매출 비중 | CapEx 계획(’25~’27) |
---|---|---|---|---|
TSMC | 난징 12인치 | 28/22nm→16nm | 3% | 45억 $ |
삼성전자 | 시안 V-NAND | 176단→236단 | 11% | 80억 $ |
SK하이닉스 | 우시 D램 | 1α/1β nm | 14% | 70억 $ |
※ 회사 IR·TrendForce 자료 종합
16nm 이하 업그레이드·236단 V-NAND·1β D램은 모두 美 ‘첨단공정(Advanced Node)’ 규제선 안쪽이다. 즉, 표↗ 속 투자 계획의 70~80%가 불투명해졌다는 뜻이다.
3. 공급망 재편 5단계 로드맵
① 2025~2026 : 대체 CapEx 급가속
- TSMC 애리조나 2공장·삼성 테일러·하이닉스 인디애나 패키징 → 총 720억 $ 신규 투자
- 장비 리드타임 18개월→28개월, 美 ASML·AMAT 수주잔고 사상 최대
② 2026~2028 : 중국內 ‘성(省) 단위’ 일괄 리베이트
- 산둥·장쑤·충칭, 국유 반도체 펀드 2기 조성(규모 5,000억 위안)
- 중국 장비업체 NAURA·AMEC 점유율 12%→23%
③ 2028~2030 : 전술적 오버캡팟(Over-Capacity) 단계
- 글로벌 D램 가동률 82%→68%, 가격 사이클 급격한 소용돌이
- EU Chips Act 자금 종료, 유럽 2차 구조조정
④ 2030~2032 : 기술 디커플링 심화
- 미국-동맹 : Gate-All-Around 2nm 상용화
- 중국 : N+2 EUV-less 3nm 독자 로드맵 본격화
⑤ 2032 이후 : ‘Dual Supply-Chain’ 고착
세계 스마트폰·서버·전장(電裝) 메이커는 갈라진 두 포트폴리오를 필수적으로 운용. 공급망 다변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규정 준수 이벤트’가 된다.
4. 거시경제·시장 변수
1) 美 IRA·CHIPS 보조금의 정치 사이클 위험
2026년 중간선거, 2028년 대선 구도에 따라 세액공제 환수·노동조합 규정 강화 리스크가 존재. 2010년 솔린드라 파산 당시 ‘Green-Backlash’가 반도체에서도 재연될 가능성.
2) 달러 강세 vs. 원·대만달러 환율
CapEx + 운전자본 부담으로 원·TWD 약세 시나리오 상시화 → 수입 장비·소재 비용 증가.
3) 미 국채 공급 부담 > 기술주 할인율
장기금리 5% 고착 가정 시, FCF(자유현금흐름) 할증 12~15%p 확대, EVA 스프레드 감소.
5. 승자와 패자 ― 4대 축 진단
축 | 대표 수혜 | 대표 피해 | 핵심 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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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 ASML·AMAT·LAM | SMEE·중소 NAURA 경쟁사 | 선진국 CapEx 대체수요 급증 |
메모리 | 미국 신규 패키징 팹 보유 기업 | 중국 내 단일라인 생산 기업 | VEU 철회로 고도화 차단 |
파운드리 | TSMC US/EU·Intel Foundry | SMIC·HuaHong | 공정 격차 3단계 확대 |
소재·부품 | 솔브레이·도쿄오카(TOK) | 中 CMP Slurry 스타트업 | EUV High-Purity 수요 집중 |
6. 투자 전략 ― 3가지 프레임워크
① CapEx-Backlog β(베타)
공시 → 장비주 주문 → 소재주 주문 → 후공정 패키징주 순으로 6~12개월 시차. 현재는 ‘장비 1단계 랠리’ 초입.
② Policy Shock Δ(델타)
미·중·EU 관보 모니터링 → 30일 이내 주가 변동폭 Δ > 15%면 역추세 스프레드 트레이딩.
③ Dual-Exposure Barbell
- 코어 : 동맹권 초격차 기업(ASML·TSMC·AMAT)
- 헤지 : 中 국산화 가속 밸류체인(현지 화학·실리콘품)
7. 中 반격 카드와 한계
• Longxin CPU·RISC-V 생태계 가속
미국 IP 라이선스 봉쇄에 대응, 오픈소스 ISA로 노선 전환. 그러나 소프트웨어·툴체인 미성숙.
• 낸드 ‘가격 덤핑’ 가능성
국가 보조금으로 원가 절하 → 글로벌 ASP 교란. 2019 패널 가격 전쟁과 유사 패턴 예상.
• 희토류·그래파이트 수출 제한
반도체 웨이퍼 연마재·배터리 음극재 병목 유발. 단, 대체 공급선(호주·캐나다) 확보 속도도 빨라져 ‘상호 상처’ 구도.
8. 결론 & 칼럼니스트 제언
VEU 특혜 철회는 단발 규제가 아니라 디커플링 ‘Pace Setter’다. 반도체는 인공지능·전기차·우주항공으로 이어지는 첨단 제조 체인 풀(Tag)의 출발점이다. 공급망 리스크를 정량화하면 ▲CapEx ROI 하락 ▲기술 노선 이원화 ▲가격 사이클 변동성 확대라는 3개의 장기 충격이 도출된다.
투자자·정책당국·기업 모두 ‘두 개의 병렬 생태계’를 전제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중국 생산 비중 몇 %’라는 단순 질문은 의미가 없다. 대신 매출-설비-연구개발-인력 이 4대 벡터를 어떻게 지리적으로 분산·이중화할 것인가가 생존 방정식이 된다.
나는 앞으로 5년간 ① EUV 노광장비 추가 증설 허가 스케줄, ② 미 IRA·CHIPS 세액공제 존속 여부, ③ 중국 국산 장비 Top 5 수율 곡선 을 ‘디커플링 지수’의 3대 변수로 추적할 것이다. 독자 또한 포트폴리오 건전성 점검 주기를 12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해, 정책·기술 핫라인의 급변 패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길 권한다.
— 이중석 / 경제칼럼니스트·데이터 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