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임 정부 관세 정책의 중대한 법적 제동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기간 말미에 단행했던 전 세계적 관세 부과 조치 대부분이 미국 연방 항소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았다. 이번 판결은 행정부가 국제통상 정책을 추진할 때 적용할 수 있는 국가비상사태 권한의 범위를 한층 명확히 제한한다는 점에서 미국 의회·행정부·기업·국제사회 모두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8월 2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United States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은 이날 3인 합의체 판결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비상경제권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IEEPA) 상의 권한을 과도하게 확대 해석해 글로벌 관세를 부과했다”고 지적하며, 1심인 국제무역법원(Court of International Trade·CIT)의 결정을 그대로 인용했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법적 절차가 아직 완전히 종료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당장 관세 징수를 중단하거나 이미 부과된 관세를 환급하라는 명령까지는 내리지 않았다. 그 결과, 해당 관세들은 향후 추가 소송·상고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존속한다.
판결의 핵심 쟁점 — ‘초과 권한(ultra vires)’
이번 소송의 원고는 오리건·뉴욕·캘리포니아 등 미국 내 12개 민주당 주정부와 파이프·자전거 부품·낚시 장비 등을 수입하는 중소기업들로 구성된 연합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 시행한 ‘글로벌 관세 패키지’가 IEEPA의 적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IEEPA는 ‘특정한 국가 안보 또는 대외 위협’을 전제로 한 임시 대책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근거로 거의 모든 국가에서 들여오는 각종 소비재·중간재에 일률적인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미국 헌법이 요구하는 권력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했다.” — 원고 측 소장 가운데
1심 재판부는 2025년 5월 △헌법상 상·하원 고유의 관세 부과 권한 침해 △IEEPA의 ‘국가 비상사태’ 요건 불충족 △행정절차법(APA) 위반 등을 이유로 원고 승소를 선고하며 “대통령령은 울트라 비레스(ultra vires), 즉 법적 권한을 넘어선 조치”라고 판시했다.
적용·비적용 대상 조치 구분
이번 판결은 시장에 즉각적인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었으나, 법원이 꼭짓점만 잘라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판결은 다음과 같이 구획을 나눴다.
- 유효성 유지 — 2018~2019년에 순차적으로 시행된 섹션 232 철강·알루미늄·자동차 관세, 섹션 301 대중(對中) 보복 관세
- 위법 판결 — 2024년 하반기 이후 IEEPA를 근거로 발동된 대다수 소비재·원자재 품목 추가 관세
이 같은 차별적 판시가 나온 이유는, 섹션 232는 무역확장법에, 섹션 301은 무역법에 근거해 별도 절차를 거친 조치이기 때문이다. 반면, 문제의 IEEPA 관세는 ‘국가 비상사태’ 선포라는 대통령 고유 권한을 전제로 하는 만큼, 사전·사후 의회 통제가 그만큼 미흡했다.
주요 용어 해설
IEEPA(국제비상경제권법) — 1977년 제정. 미국 대통령이 국제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자산 동결·금융 거래 제한·수출입 규제 등을 일시적으로 명령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다만 ‘특정하고 실재하는 위협’이 존재해야 하며, 조치 이유와 범위는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섹션 232 — 1962년 무역확장법 조항. 미국 상무부가 “해당 품목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정할 경우 대통령이 관세 인상 또는 수입량 제한을 지시할 수 있다.
섹션 301 — 1974년 무역법 조항.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조사·확인하면 대통령이 관세·비관세 장벽 등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Ultra vires — 라틴어로 ‘권한 밖’을 의미한다. 행정기관이 법률상의 위임 범위를 넘어선 행동을 했을 때 주로 쓰이는 법적 용어다.
법적·정치적 향방
미 법무부는 즉각 “신속 상고” 입장을 밝혔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역시 대법원(US Supreme Court)에 긴급 심리를 요청할 방침을 확인했다. 만일 대법원이 사건을 접수해 상고 대기명령(certiorari)을 허가할 경우, 최종 결론은 2026년 상반기 이후에야 나올 수 있다.
동시에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이 국가 비상 시 글로벌 공급망을 즉각 통제하지 못한다면 안보 리스크가 급증한다”며, 역소급 적용이 가능한 보충 입법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민주당 주도 하원은 “관세는 명백한 의회의 조세·통상권”이라며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입법 공방 또한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업계 파장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수입업체는 이미 납부한 관세를 환급받을 가능성이 열리고, 소비자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관세가 철폐되면 국내 생산업체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특히 자전거·낚시용품·파이프·철물 등 생활·레저·건축 자재 부문은 트럼프 관세로 평균 15~25% 가격이 상승했던 만큼, 환급 여부가 수익성은 물론 재고 조정·유통 계약에도 직결된다는 관측이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아직 ‘관세 유지·철폐 양쪽 시나리오’를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있으며, “대법원 판결까지 최소 6~12개월 소요된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관세 관련 변동성 프리미엄이 여전히 시장가격에 내재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 시각*
*다음 내용은 기자의 경제·통상 전문 분석이다.
첫째, 행정부 무역권한 축소·의회의 견제 강화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정부 역시 반도체·배터리 지원책 등에서 ‘안보’ 명분을 자주 동원해 왔는데, 이번 판결은 그 프레임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
둘째, 2026년 대선 주자 간 통상 공약의 차별화가 뚜렷해질 전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을 노릴 경우 ‘전면적 10% 관세’ 같은 초강경 안을 재차 제시할 확률이 크지만, 대법원까지 제약을 가하는 선례가 확립되면 실효성 논란이 커질 것이다.
셋째,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반환점을 돌 가능성이 있다. 중국·멕시코·베트남 등 신흥 제조국은 미국의 관세 방패막이를 피해 상대국 간 FTA를 확대하고 있으며, 관세 철폐 시 ‘역(逆)리쇼어링’ 흐름이 감지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은 ‘경제 안보’와 ‘법적 절차’의 균형을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지정학 리스크가 고조되는 시대일수록, 행정부 독주보다는 의회·사법부·민간이 복합적으로 견제하고 참여하는 체계가 장기적 불확실성을 낮출 것이라는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