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 불확실성 여파로 국제유가 3% 가까이 급락

국제유가가 3% 안팎의 낙폭을 기록하며 단기 상승 흐름이 제동이 걸렸다. 9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1.93달러(-2.79%) 떨어진 67.25달러(가정)에서 마감됐고, 같은 달물 RBOB 가솔린도 갤런당 0.0553달러(-2.54%) 밀렸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국 경기 둔화 신호와 고율 관세 정책글로벌 원유 수요 전망을 훼손한다고 진단했다.

2025년 8월 1일, 바차트(Barchart)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전 세계 최저 10% 관세, 대미 흑자국에 대해 15% 이상’이라는 초강경 무역 정책을 발표한 직후, 원유·가솔린 선물 가격은 급락세를 탔다. 해당 관세는 8월 7일 0시부터 즉각 발효될 예정으로, 글로벌 교역 및 산업 생산의 위축 우려가 커졌다.

WTI 선물 가격 차트

고용·제조업 지표도 유가 하락을 가속했다. 미 노동부는 7월 비농업부문 고용이 7만3천 명 증가에 그쳤다고 밝혔는데, 이는 시장 예상치(10만4천 명)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6월 고용 증가는 기존 14만7천 명에서 대폭 하향된 1만4천 명으로 수정됐다. 같은 날 발표된 7월 ISM 제조업지수 역시 1포인트 하락한 48.0을 기록, 9개월 만의 최저치이자 경기 위축 구간으로 재진입했다.

“지표가 보여주는 둔화 흐름은 향후 산업용·운송용 에너지 수요 둔화로 직결될 수 있다”

는 시장 참가자들의 경계심이 이날 S&P500 지수를 2주 만의 저점으로 끌어내렸고, 위험자산 전반의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지정학적 공급 변수도 맞물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10일 이내 우크라이나 휴전을 타결하지 않으면 러시아산 에너지 수출에 대해 추가 제재를 단행하겠다고 경고했다. JP모건체이스는 “러시아 원유에 세 자릿수 관세가 실제 부과될 경우, OPEC 잔여 여유 생산 능력만으로는 공급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신규 제재안을 승인했다. 구체적으로는 △SWIFT 국제결제망에서 20개 추가 러시아 은행 퇴출, △제3국 정유시설에서 가공된 러시아산 석유 제품 제한, △러시아 로스네프트가 지분을 보유한 인도 정유사 블랙리스트 지정, △러시아 ‘그늘선단(Shadow Fleet)’ 소속 선박 105척 추가 제재 등이다. 이로써 제재 대상 선박은 400척을 넘어섰다.

RBOB 가솔린 선물 차트

OPEC+ 역시 변동성 요인이다. 블룸버그는 7월 10일 “OPEC+가 9월 54만8천 배럴 증산 이후 10월부터 증산 중단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고가 하루 100만 배럴씩 쌓이면서 2025년 4분기엔 수요 대비 1.5% 공급 과잉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OPEC+는 8월 1일부터 54만8천 배럴 추가 증산을 이미 결정했고, 9월에도 같은 규모를 이어간 뒤 일요일(보도 시점 기준)에 다시 회동해 추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일부 회원국은 ‘저유가 압박’이라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카자흐스탄·이라크 등 할당량 초과 생산국을 징계한다는 명목으로 단계적 증산을 예고했다. 이는 팬데믹 이후 2년간 시행된 대규모 감산을 2026년 9월까지 총 220만 배럴가량 복구하는 로드맵의 일환이다.

추가 공급 재개 변수도 존재한다. 이라크 정부는 2023년 3월부터 가동이 중단된 이라크-터키 송유관을 통해 쿠르드 자치정부가 일 23만 배럴을 다시 수출하도록 승인했다. 이라크는 OPEC 내 두 번째 생산국으로, 해당 물량이 실제로 시장에 풀릴 경우 가격 하방 압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저장 물량도 부담이다. 선박 위치 추적업체 보텍사(Vortexa)에 따르면 7일 이상 항행하지 않은 채 해상 저장돼 있는 원유가 7월 25일 주간 8,499만 배럴로 전주 대비 23% 급증했다.


미국 내 재고·생산 상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 주간 보고서(7월 25일 기준)에 따르면 △원유 재고는 계절 5년 평균 대비 5.6% 부족, △가솔린 재고는 0.7% 부족, △증류유 재고는 15.2% 부족으로 집계됐다. 주간 원유 생산은 1,331만4천 배럴로 전주 대비 0.3% 증가했지만, 2024년 12월 첫째 주 역대 최고치(1,363만1천 배럴)에는 미치지 못한다.

베이커휴스(Baker Hughes)는 8월 1일 기준 미국 내 가동 중인 원유 시추기가 410기(전주 대비 -5기)로 3년 9개월 만의 최저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2022년 12월 627기를 정점으로 2년 반 동안 가파르게 감소한 결과다.

전문가 해설: WTI·RBOB란?
WTI(West Texas Intermediate)는 미국 텍사스 서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경질·저유황 원유로,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대표적인 원유 선물 기준물이다. 반면 RBOB(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 가솔린은 환경 규제를 만족시키기 위해 산소 첨가제를 배합하기 전 단계의 가솔린 기초유로, 미국 동부·중부 주의 도매가격 지표로 활용된다. 두 상품 모두 글로벌 에너지·상품 시장에서 리스크 관리가격 발견 기능을 수행한다.

기자 관전평: 현재 원유 시장은 수요 둔화(매크로)와 공급 확대(미시) 요인이 동시에 작용해 연말까지 변동성 확대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 고용·제조업 지표가 추가로 악화될 경우 65달러선(WTI)의 지지력이 시험될 수 있다. 반대로 러시아·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단기간에 80달러 이상으로 반등할 여지도 있다. 투자자들은 재고 흐름·OPEC+ 회의·미국 경제지표를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하며 포지션 규모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