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경쟁 속 생존 전략 모색하는 한국 통상 수장 “공급망 안정·시장 다변화 절실”

경주로이터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협력 강화, 중국과의 공급망 안정, 신흥국과의 교역 다변화를 동시에 추진하며 미·중 경쟁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2025년 10월 2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복합 전략을 공개했다. 그는 “합의 시점보다는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상호 호혜적 합의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 본부장은 오는 30일 방한 예정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무역협정 개정이 타결될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서두르기보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테크·조선·원전 등 핵심 산업에서 협력을 심화해 실질적 이익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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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줄 타기’ 외교·통상의 최전선

올해 APEC 정상회의는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중국 정상을 동시에 초청해 개최하는 만큼, 한국의 ‘균형 외교’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무대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면서도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가 여전하다.

Korea is a much smaller economy, and its security heavily depends on the U.S.” — 바이주 천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USC 교수

천 교수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한국은 중국만큼의 협상력을 갖기 어렵다”며, 현실적으로 ‘주어진 범위 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미국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일부 한국 조선사를 제재했으며, 전략자원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해 서울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여 본부장은 “미·중 갈등이 고조되며 APEC 결과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라며 “다자간 협력의 시급성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 한국 수출, 기술·신시장으로 돌파구

한국 경제는 3분기 1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 수요가 견조했고, 미국발 자동차 관세 압박에도 불구하고 유럽·신흥시장 자동차 판매가 증가해 충격을 상쇄했다. 동남아시아 수출이 둔화된 미·중 수요를 보완한 점도 성장세를 지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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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본부장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와의 네트워크를 넓혀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이고 수출 기회를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사우스’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신흥·개도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급성장하는 인구·시장 잠재력으로 최근 국제경제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에서 말레이시아와 포괄적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했으며, 태국과도 협상에 착수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도 시작해 디지털 전환·공급망 복원력·기후변화 대응 분야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 전문가 해설: APEC·FTA 용어 이해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은 1989년 설립된 아시아·태평양 21개국의 경제협의체로, 무역·투자 자유화경제 기술협력을 목표로 한다. 정상들은 매년 한 차례 모여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며, 다자무역의 ‘시험장’ 역할을 해 왔다.

FTA(Free Trade Agreement)는 두 나라 이상이 관세·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거나 낮추는 협정으로, 기업에는 시장 접근성 확대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한국은 2000년대 초 칠레를 시작으로 60여 개국과 FTA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 전망과 과제

전문가들은 한국이 ‘경제 안보’ 프레임 속에서 미·중 간 공급망 교차점으로서의 위상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만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중국의 보복 가능성, 글로벌 경기 둔화 등 3중 변수가 동시에 작동해 불확실성이 크다.

여 본부장은 “디지털 무역 규범, 탄소국경조정제(CBAM) 등 새로운 통상 의제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며 “한국이 선제적으로 규범 제정에 참여해 룰 메이커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APEC 회의에서 한·미 무역협정 개정의 윤곽이 드러나고, 한국의 ‘균형 외교’가 얼마나 설득력을 얻느냐가 향후 한국 통상 전략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