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발 ― 일본 정부가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슨트(Scott Bessent)의 이례적이고 노골적인 발언에 즉각 대응하며, 일본은행(BOJ)에 대한 외부 압력설을 일축했다. 베슨트 장관은 BOJ가 “정책 대응에서 뒤처져 있다(behind the curve)”고 지적하며 물가 상승에 맞춰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 시장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2025년 8월 17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발언은 일본 금융·외환시장에서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재부각시키며 국채 금리와 엔화 가치를 동반 상승시켰다.
베슨트 발언과 예상 밖으로 견조했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지표가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은 향후 몇 달 안에 BOJ가 움직일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베팅했다. 실제로 16일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벤치마크)는 장중 연 1.565%까지 올라 2주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엔/달러 환율도 강세로 돌아섰다.
“미국이 BOJ 정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신호다.” ― 사이토 유지(SBI FX 트레이드 수석 자문역)
사이토 자문역은 “베슨트 발언과 GDP 발표가 겹치면서 BOJ가 코너에 몰렸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베슨트 장관의 직설적 경고
베슨트 장관은 14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일본은 3년 이상 핵심 물가상승률이 2% 목표를 상회하는 상황”이라며, “BOJ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일본에 ‘인플레이션 문제(inflation problem)’가 있으며, BOJ가 물가 리스크 대응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7월 소비자물가(CPI) 기준 근원지수는 전년 대비 2%대를 넘긴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식료품·원자재 가격 상승이 주된 배경이며, 일부 BOJ 정책위원들은 “2차 파급효과(second-round effects)”까지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차 파급효과란 임금·서비스 가격이 1차 물가 상승을 따라가며 추가 상승 압력을 형성하는 현상이다.
日 정부의 진화 ― “압박 아니다”
경제재생상을 겸하는 아카자와 료세이 장관은 17일 기자회견에서 “베슨트 장관은 BOJ에 금리를 올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언급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일 통상 교섭에서 통화정책은 BOJ의 전권 사항”이라며 외압 논란을 일축했다.
같은 날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은 관련 질문에 답변을 자제했다. 그러나 시장은 워싱턴발 압박이 실질적으로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흑자 축소 노림수?
전 BOJ 정책위원 기우치 다카히데(野村종합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약달러·강엔을 통해 대규모 미국 무역적자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BOJ가 금리 인상을 미루면 외교적 마찰이 커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워싱턴은 6월 의회 제출 환율보고서에서 “엔화 약세 정상화(normalization)를 위해 BOJ가 통화 긴축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베슨트 장관 또한 도쿄와의 환율 협상을 총괄하며 줄곧 같은 입장을 시사해왔다.
시장 반응: 금리·환율·스와프
10년물 JGB 금리는 1bp 상승해 1.56%에 마감했다.
스왑시장에서 10월까지 금리 인상 확률은 43%, 연말까지는 66%(오카산증권 추산)로 올라섰다. 시장은 9월 회의, 10월 분기 전망 보고서 발표, 연말까지 이어질 캘린더 이벤트를 주목하고 있다.
경제 지표 측면에서도 호재가 나왔다.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예상을 웃돌아 엔화 강세 기대를 뒤받침했다. 성장 전망이 탄탄해질 경우 BOJ의 완화 지속 근거가 약화될 수 있다.
“베슨트 발언과 GDP 서프라이즈가 동시에 터지면서 BOJ가 더 이상 지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널리 퍼졌다.” ― 시장 관계자
BOJ의 다음 행보
BOJ는 9월 통화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 결정과 함께 수익률곡선제어(YCC) 운영 여부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10월에는 분기별 경제·물가 전망도 수정한다. 로이터 7월 설문에서는 경제학자 과반이 “연내 한 차례 추가 인상”을 예상했다.
용어·배경 설명
- JGB(Japanese Government Bond):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의미한다. 벤치마크로는 10년물이 가장 널리 거래된다.
- Second-round effects: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전이되고, 다시 서비스 가격을 끌어올려 장기 인플레이션을 고착화하는 2차 효과를 가리킨다.
- Behind the curve: 통화당국이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경제 상황보다 늦게 대응한다는 비판적 표현이다.
전망 및 시사점
전문가들은 미·일 통화·무역 협상, 인플레이션 경로, 엔화 흐름을 종합 고려할 때, BOJ가 9~12월 사이 소폭 금리를 올릴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다만 일본 내수 회복력, 임금·물가 선순환 여부, 글로벌 경기 둔화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의견도 많다.
결국 “BOJ의 자율성”과 “미국의 외교 경제 압력”이 교차하는 이번 사안은 앞으로도 엔화 변동성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