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상소중재기구가 중국 법원의 ‘반소금지명령(anti-suit injunction)’ 관행이 특허권자의 해외 권리 행사를 막고 있다며 무역관련 지식재산권협정(TRIPS)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2025년 7월 2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중재 결정은 초심 패널이 지난 4월 내린 결정의 일부를 뒤집는 동시에, 중국에 90일 이내 시정 조치를 이행하라고 권고했다.
초심 패널은 유럽연합(EU)이 2022년 제기한 ‘3G·4G·5G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tandard Essential Patent) 라이선스 분쟁’에서 중국이 WTO 규범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투명성 의무 일부 불이행을 지적한 바 있다. EU는 이에 불복해 다자간 상소중재제도(MPAA※)를 통해 재심을 요청했다.
※ MPAA는 미국이 2019년부터 WTO 상소기구 판사 임명을 지속적으로 보이콧하면서 사실상 기능이 정지되자, EU·호주·캐나다 등 26개 회원국이 임시로 도입한 대체 절차다.
이번에 쟁점이 된 반소금지명령은 외국 법원에 제소한 특허권자에게 중국 내 소송을 취하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명령해, 사실상 해외 소송 제기를 봉쇄하는 조치다. 중재기구는 “중국 법원의 이러한 명령은 특허권자가 자국 밖에서 권리를 행사할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판단 결과: 유지 4건·변경 3건
중재인단은 초심 패널 결론 가운데 4개 쟁점은 그대로 유지했으나, 3개 핵심 사안에서는 반대로 판정했다. 특히 특허권 존중 의무 및 사법적 절차 남용 금지와 관련한 항목에서 중국 정부·사법부가 TRIPS 제28조를 위반했다고 재판정했다.
TRIPS란 무엇인가?
TRIPS(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는 1995년 WTO 출범과 함께 발효된 국제 지재권 최상위 규범으로, 특허·상표·저작권 등 전 영역을 포괄한다. 회원국은 국내법과 사법제도를 TRIPS에 부합하도록 유지·개정할 의무가 있다.
전문가 시각
본 기자는 이번 결정이 글로벌 ICT 특허전쟁의 향배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본다. EU 기업들은 중국 내 소송 리스크를 줄이고, 독일·네덜란드 등 자국 법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특허 침해 소송을 추진할 동력을 얻게 된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해외 소송 방어전략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또한 중국-EU 무역관계 전반에도 미묘한 파장이 예상된다. 최근 태양광·전기차 덤핑 조사로 양측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번 판정은 EU가 법제도·표준화 영역에서 ‘규범 외교’를 강화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향후 전망
중재기구는 90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한을 설정했다. 중국이 국내 사법부 지침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EU는 상응조치(보복관세·무역 제재 등)를 WTO에 요청할 재량을 얻게 된다. 그러나 양측 모두 ‘디지털 전환 시대 핵심 공급망’을 교차 의존하고 있어, 극단적 충돌로 비화할지는 미지수다.
“이번 판정은 세계 특허 거버넌스 체계의 균형점을 재조정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국제통상전문가들의 시각도 제기된다.
배경: 상소기구 공백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2019년부터 WTO 상소기구 판사 임명을 거부했다. 그 결과 WTO는 사실상 최종 판정 기능이 마비됐다. MPAA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임시 방편’이지만, 회원국 참여가 제한적이어서 판정 구속력은 상대적으로 낮다.
시장 영향
통신장비·스마트폰 기업 주가가 단기 변동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특허 로열티 수익이 큰 유럽 칩·네트워크 장비기업에는 호재, 중국 제조사에는 비용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용어 해설: Anti-Suit Injunction
‘반소금지명령’은 법원이 일정 분쟁 당사자에게 다른 관할권에서 동일 사건 관련 소송 제기를 금지하거나 기존 소송을 철회하도록 명령하는 제도다. 위반 시 벌금·제재가 뒤따른다. 중국 법원은 2020년부터 통신표준특허 분쟁에서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해 왔다.
결론
중국이 90일 이내 적절한 조치를 취할지, EU·중국 간 교역 관계에 어떤 파급효과가 나타날지가 글로벌 무역·기술 시장의 주요 변수로 부상했다. WTO 상소기구 복원 역시 시급한 과제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