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대만 반도체 제조)가 잠재적 영업비밀 유출 정황을 적발하고, 관련 임직원에 대한 징계와 동시에 법적 절차에 돌입했다.
해당 조치는 회사 내부 모니터링 시스템이 탐지한 “비인가 활동”이 단초가 됐다. TSMC는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보낸 이메일 성명을 통해 “당사의 포괄적·고도화된 모니터링 체계가 문제를 조기에 식별해 즉각적인 내부 조사와 엄정한 조치를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2025년 8월 5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이미 사법당국에 사건을 이첩했으며, 현재 사법 검토(judicial review) 단계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추가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번 사안은 Nikkei Asia가 보도한 바와 같이 퇴직자를 포함한 복수의 전·현직 직원이 2나노미터(nm) 공정 기술 등 핵심 기밀 정보를 불법적으로 취득하려 한 의혹과 연관돼 있다. 특히 2나노미터 공정은 TSMC가 2025~2026년 양산을 목표로 연구·개발(R&D)을 집중하고 있는 차세대 초미세 공정으로, 글로벌 반도체 경쟁 구도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나노미터(nm)’는 반도체 회로 선폭(線幅)의 길이를 의미하며, 수치가 작을수록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동일 면적에 집적할 수 있다. 2nm 공정은 현재 상용화된 3nm보다 한 단계 진보한 기술로, AI 가속기·고성능 컴퓨팅(HPC)·모바일 칩셋 등에서 전력 효율과 연산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예상된다.
TSMC 성명 중 발췌
“우리는 기밀정보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으며, 어떠한 위반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번 조치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
전문가 시각·의의
① 영업비밀 및 기술보호 측면: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TSMC의 첨단 공정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 평가받는다. 회사가 이번 사건을 조기 인지하고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은, 기술 경쟁력 유출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시장 지위 약화·수익성 하락·국가 안보 리스크 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계산으로 해석된다.
② 기업 거버넌스 측면: 임직원의 윤리적 리스크 관리는 점점 중요해지는 주주가치 제고의 핵심 요소다. 만약 이번 사건이 전·현직 직원 커넥션을 통한 조직적 시도로 드러날 경우,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의 재점검과 사내 정보접근 권한 관리 강화 필요성이 부각될 전망이다.
③ 시장 영향 측면: 아직 구체적 피해 규모나 외부 유출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2nm 로드맵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경쟁사인 삼성전자·인텔 파운드리·대만 UMC 등이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TSMC가 조기 대응에 나섰고 2nm 연구 환경을 완전 폐쇄형 클린룸으로 운용해온 만큼, 실제 생산 단계 차질로 연결될 확률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배경: AI 반도체 초격차 유지 전쟁
TSMC는 엔비디아·AMD·애플·퀄컴 등 주요 팹리스(fabless) 업체의 고성능 칩을 위탁생산(파운드리)하며, 글로벌 AI 붐의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특히 엔비디아가 차세대 GPU에 2nm 이하 공정을 채택할 경우, TSMC는 막대한 수주 물량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2nm 관련 영업비밀은 직원 1인의 메모 유출만으로도 수조 원 규모의 R&D 선행투자와 양산 수율 확보 전략이 경쟁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및 국가 차원에서 깊은 우려의 대상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
첫째, 대만 사법당국의 수사 결과가 언제, 어떤 형태로 공개될지다.
둘째, 회사 차원의 추가 인사 조치나 내부 규정 개정이 뒤따를 가능성이다.
셋째, 글로벌 고객사(파브리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또한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TSMC가 아직은 사건의 범위와 구체적 세부사항을 함구하고 있지만, 2nm 로드맵 차질 여부는 중장기 주가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내부통제 강화·보안 인력 증원·사이버 보안 솔루션 업그레이드 등이 단기 처방으로 검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사법 검토(judicial review)’는 사건을 정식 재판으로 넘기기에 앞서 검찰 또는 법원이 진행하는 예비 심사 절차로, 사실관계·법리 검토를 토대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다.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글로벌 트렌드
미국, 한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산업기술보호법·경제안보법과 같은 별도 법령을 제정해 핵심기술 유출 시 최대 징역형·거액의 민사배상을 부과하고 있다. TSMC 사건이 향후 국제 공조 수사나,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의 공동 보안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이어질지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당분간 TSMC는 “조사 중”이라는 공식 입장을 유지할 전망이다. 그러나 파운드리 시장의 초격차 전략을 사수하기 위한 내부 혁신과, 외부 이해관계자(고객·투자자·규제기관)를 향한 신뢰 회복 프로그램이 병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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