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그래파이트 광산업체 시라 리소시스(Syrah Resources)가 전기차(EV) 선두업체 테슬라(Tesla)와 체결한 핵심 배터리 급양(供給) 계약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시정 기한을 2025년 11월 15일로 연장하기로 합의했다고 17일(현지시간) 밝혔다.
2025년 9월 1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테슬라는 7월 시라 측에 ‘계약 불이행’ 통보서를 발송했다. 시라가 미국 루이지애나주 비달리아(Vidalia) 공장에서 생산한 활물음극재(active anode material) 샘플이 테슬라의 품질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이 디폴트 해소 기한은 2024년 9월 16일이었으나, 이번 합의로 2025년 11월 15일까지 약 14개월 추가 유예가 확보됐다.
시라는 공식 성명에서 “우리는 오프테이크(장기 매입) 계약상 디폴트 의사에 동의하지 않지만, 분쟁 해결을 위해 테슬라와 공동으로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시라와 테슬라가 2021년 체결한 계약은 연간 8,000톤 규모의 음극재를 4년간 공급하는 내용으로, 시라가 미국 내 최초의 비(非)중국계 대규모 그래파이트 공급자로 도약하는 핵심 발판이다. 비달리아 공장은 광산(모잠비크 발라마)부터 음극재 가공·제조까지 수직 통합 체계를 갖춘 세계 유일의 대규모 그래파이트 음극재 생산기지로 평가받는다.
― 그래파이트·활물음극재란?
리튬이온배터리의 음극(마이너스 전극)을 구성하는 핵심 소재가 그래파이트(graphite)다. ‘활물음극재(active anode material)’는 그래파이트를 특수 코팅·열처리해 배터리 충방전 효율을 극대화한 고부가가치 소재로, 완성품 품질에 따라 전기차 주행거리와 수명에 직결된다.
현재 글로벌 음극재 시장은 중국 기업이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미국·유럽이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시라의 비달리아 프로젝트가 테슬라뿐 아니라 미 정부의 전략적 지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라는 앞서 미 에너지부(DOE)로부터 2억1,900만 달러(약 2,900억 원)의 대출 보증을 확보했다.
이번 시한 연장은 시라에 ‘호흡기’를 제공했지만, 프로젝트 리스크는 여전히 크다. 테슬라는 2026년 2월 9일까지 비달리아 음극재가 최종 품질 인증(Final Qualification)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즉, 시라는 약 1년 5개월 안에 양산 품질을 입증해야 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리튬·니켈·코발트와 달리, 그래파이트는 정밀 가공기술 확보가 난도(難度)를 좌우한다”며 “중국 업체들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노하우에 맞먹는 품질을 단기간에 달성하기 쉽지 않다”고 진단한다.
― 미국·중국 간 ‘배터리 광물 패권’ 시나리오
미국은 지난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해 2027년부터 중국산 핵심 광물·부품 장착 EV에 대해 세액공제를 제한한다. graphite는 ‘포함’ 광물에 지정돼 있어, 테슬라가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만 보조금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다. 시라는 이 틈새를 노려 미국 시장에서 유일한 대량 공급처가 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30년 글로벌 음극재 수요는 2023년 대비 4배 이상 늘어나 500만 톤을 웃돌 전망이다. 같은 기간 중국 외 지역 공급 비중은 30% 미만에 머물 것으로 추정돼, 비(非)중국권 음극재 공급 확대는 테슬라·GM·포드 등 북미 완성차 업계의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시라 주가는 테슬라의 디폴트 통보 직후 큰 폭 하락했으나, 이번 연장 소식으로 호주 증시에서 일시적인 상승을 나타냈다. 다만 투자은행들은 “품질 인증 지연이 반복될 경우, 자금 소모 확대와 추가 증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테슬라는 이번 사안에 대해 별도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으며, 계약 조건 이행 모니터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전망 및 과제
① 시라는 2025년 하반기까지 연산 1만1,250톤 규모의 1단계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2단계 증설로 5만~6만톤 체제로 확대할 계획이다.
② 에너지부 대출과 주 정부 인센티브가 물량 확보·테슬라 검수 비용을 충당할 ‘실탄’이 될 수 있지만, 달러 고금리 부담과 운영비 증가가 변수다.
③ 2026년 2월 테슬라 최종 인증 시한 전까지 ‘샘플→파일럿→양산’의 3단계 테스트를 모두 통과해야 하며, 한 차례라도 불합격 시 전체 일정이 재조정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합의는 시라가 미국 배터리 공급망 키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할 ‘마지막 기회’를 확보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기술·재무·정치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테슬라와의 파트너십 유지 여부는 향후 12~18개월간의 시험대 위에 올랐다.
* 디폴트(cure default): 계약 위반 사항을 정해진 기한 내에 시정하지 못할 경우 계약이 해지되거나 손해배상 의무가 발생하는 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