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명품 산업이 2025년의 마지막 분기로 접어드는 현시점에서 중국·미국 수요 부진이라는 복합적인 역풍에 직면하며 반등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업계는 팬데믹 이후 가격 인상, 소비자 취향 변화, 지정학적 불확실성까지 겹친 탓에 2024년 한 해 동안 약 5,000만 명의 고객을 잃었다는 컨설팅사 베인의 분석치를 공유하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2025년 9월 14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3분기 실적 시즌을 앞둔 명품업계의 최대 변수는 중국 부동산 위기 장기화와 미국 관세 불안이다. 로이터·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지목해 온 두 시장의 소비 둔화는 이미 일부 럭셔리 하우스의 매출 성장률을 한 자릿수로 끌어내렸다.※
특히 9월에 열리는 뉴욕·런던·밀라노·파리 패션위크는 인플레이션으로 지갑을 닫은 고객층의 관심을 재점화할 ‘승부수’로 평가된다. 디올·샤넬·구찌 등 전통 명가들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 C-스위트최고경영진 재편을 단행하며 전위적 무드를 띤 컬렉션을 예고했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10% 성장세를 구가하던 명품 산업이 2024년 급락 이후 다시 반등하려면 파격적 창의성으로 소비자 스토리텔링을 회복해야 한다”는 RBC 캐피털 마켓 애널리스트의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RBC 캐피털 마켓은 최신 노트에서 “3분기에는 전년 대비 비교기 저하(베이스 효과) 덕분에 매출 모멘텀이 개선될 수 있으나, 4분기는 훨씬 까다로운 비교 구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애널리스트들은 명품주들이 한 달 사이 5% 상승하며 주가 재평가(리레이팅)를 경험했지만, 이 움직임이 업종 전반의 구조적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못박았다.
‘리레이팅’(re-rating)은 향후 실적 기대가 개선되면서 주가수익비율(PER) 같은 밸류에이션 지표가 재산정되는 현상을 뜻한다. 금융시장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덧붙이면, 이는 종목이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 대비 주가가 얼마나 비싼지를 재평가해 목표주가를 조정하는 과정을 말한다.
RBC는 방어적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에스티 로더(NYSE:EL), 에르메스 인터내셔널(EPA:HRMS), 페라리(BIT:RACE)를 ‘디펜시브(방어주)’로 분류했다. 또 LVMH(EPA:LVMH)와 아디다스(ETR:ADSGN)를 ‘퀄리티’로 지목하며 상대적 견고함을 거듭 강조했다. 반면 시계 전문업체 스와치 그룹(SIX:UHR)은 중국 판매 둔화를 이유로 ‘언더퍼폼(시장수익률 하회)’ 등급을 유지했다.
또 다른 위험 요인은 故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별세다. 세계적 ‘토탈 패션 하우스’로 꼽히던 아르마니 그룹은 창업자의 유산과 급변하는 경영 환경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시장 일각에서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Z세대·알파세대와 소통할 전략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편, 팬데믹 이후 이어진 판매가 인상 역시 소비자 피로도를 키우는 변수다. 2020~2023년 ‘보복 소비’(pent-up demand)로 이익률을 끌어올린 다수 브랜드들은 가격 정상화에 나서지 않았고, 이는 가격 민감도가 낮은 상위 1%를 제외한 중산층 고객 이탈로 직결됐다. RBC는 2026년도 전체 산업 성장률을 ‘한 자릿수 중반’으로 전망하면서도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이 여전히 높은 탓에 매력적 매수 구간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 시각
기자는 RBC 보고서가 제시한 ‘방어·퀄리티·언더퍼폼’ 3단 구분이 현 시점에서 합리적이라고 평가한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가 ‘보복 소비’ 후폭풍을 억누르고 있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추가 관세 불확실성까지 겹쳐 글로벌 럭셔리 소비 모멘텀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렵다. 따라서 실적 가시성이 확보된 뷰티·레저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지속가능성·리세일(중고거래)·디지털 경험은 향후 3년간 명품사의 구조조정 방향을 결정할 핵심 키워드로 꼽힌다.
용어 설명
C-스위트(C-suite)는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등 주요 임원을 통칭한다. 리레이팅은 투자자들이 향후 실적 강화 또는 위험 축소를 근거로 종목의 적정 주가수익비율을 상향 재조정하는 행위다. 이 두 개념은 신임 경영진 교체와 실적 추정치가 맞물려 진행되는 ‘명품주 랠리’의 논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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