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C, 소비 둔화 속 유럽 리테일 업종에 ‘먹구름’ 전망… “매출 회복이 최대 과제”

RBC 캐피털마켓이 최근 발표한 분석 보고서에서 유럽 리테일 업종의 전망이 전반적으로 부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가계 소비 위축으로 인한 판매 부진이 수익성 개선 여건을 상쇄해, 업종 전반에 걸쳐 매출 성장세(Top-line momentum)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2025년 9월 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RBC는 최근 영국 패션·의류 부문의 가격 동향을 조사한 결과 마크스앤드스펜서(이하 M&S), 잘란도, H&M 등의 가격 경쟁력이 전년 대비 강화됐다고 밝혔다. 반면 셰인(Shein)저가 전략을 통해 경쟁사 프라이마크(Primark)를 따라잡으며 점유율을 확대했고, 온라인 패스트패션 업체 프리티리틀띵(PrettyLittleThing)은 오히려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RBC는 이러한 ‘상대 가격 조정’만으로는 소비자들의 현금 흐름 악화, 세금 인상, 생활비 부담 등 구조적 요인을 상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할인이나 프로모션만으로는 이미 움츠러든 지갑을 열게 하긴 힘들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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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달러 약세, 원가 절감, 공급과잉 등의 외부 요인이 이익률을 방어해 주고 있지만, 결국 기업 가치(valuation)를 끌어올리려면 매출 성장이라는 근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 RBC 캐피털마켓 보고서


환율·소싱 환경이 주는 ‘숨통’… 그러나 매출이 관건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동안 미국 달러화는 유로화·영국 파운드화 대비 약 5% 약세를 기록했다. 통상 글로벌 의류 업체들은 달러 기준으로 원자재·완제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달러 약세는 원가 하락과 직결된다. 동시에 코로나19 이후 억눌렸던 공급망 투자가 재개되면서 소싱(구매) 능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이익률에는 호재로 작용한다. RBC는 이러한 요인이 기업들에 두 가지 선택지를 준다고 분석했다. 첫째는 수익성 제고, 둘째는 상품 라인업에 재투자해 미래 성장을 도모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매출 성장 정체라는 근본적인 장애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같은 호재는 일회성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특히 2024년 가을 성수기(Autumn 2024) 실적이 이미 높게 형성돼 있어, 역기저(base effect) 부담이 크다는 점이 앞으로의 실적 비교에 부정적이라는 설명이다.


주요 기업별 실적 전망·투자의견

실적 전망(EPS·주당순이익)부터 살펴보면, RBC는 인디텍스(Inditex)에 대해 2025년 EPS 2%, 2026년 7% 성장이라는 “완만한 개선” 시나리오를 유지했다. H&M2025~2026년 EPS 전망치를 1~7% 하향 조정했는데, 이는 여성복 부문의 개선 흐름이 남성·아동복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JD 스포츠는 2026~2027년 EPS 전망치가 3~5% 상향됐으며, 부후(Boohoo)WH 스미스(WH Smith)는 각각 EPS와 세전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됐다. 특히 WH Smith의 2026년 세전이익 전망치는 무려 22%나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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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견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RBC는 넥스트(Next), M&S, JD 스포츠, 잘란도에 대해 “아웃퍼폼(Outperform)”을 유지하며 긍정적 시각을 보였다. 반면 인디텍스, 부후, 온라인 식료품 배송업체 오카도(Ocado) 등은 “언더퍼폼(Underperform)”으로 분류됐다. H&M은 ‘섹터 퍼폼(Sector Perform)’으로 중립적 평가를 받았다.

가격 목표치도 조정됐다. H&M 목표주가는 145크로나(SEK)로 제시됐고, 인디텍스는 동일 등급이지만 €43 목표가를 받았다. WH Smith 목표가는 기존 12파운드(£12)에서 850펜스(850p)로 낮아진 반면, JD 스포츠는 95p에서 110p로 상향됐다.


밸류에이션(Valuation)·배당 수익률

밸류에이션 배수(PER·주가수익비율)는 업종별 성장 둔화를 반영하고 있다. 인디텍스는 2025년 이익 기준 약 22.5배에 거래되고 있으며, 배당수익률은 4% 수준이다. H&M은 2026년 이익 기준 약 18.5배 PER과 5% 배당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RBC는 “인디텍스의 현재 밸류에이션은 성장률을 고려하면 ‘풀(Full)’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재평가(re-rating)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H&M은 매출 모멘텀을 높일 경우 재평가 여지가 있지만, 현 단계에서는 “추가 증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용어 풀이

RBC 캐피털마켓은 캐나다 로열은행(Royal Bank of Canada)의 투자은행 부문으로, 주식·채권·M&A 자문 등을 제공하는 글로벌 금융기관이다.

EPS(Earnings Per Share)는 ‘주당순이익’으로,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을 발행 주식 수로 나눈 지표다. 투자자들은 EPS 성장률을 통해 기업의 수익성 개선 속도를 가늠한다.

PER(Price-Earnings Ratio)는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주가가 ‘이익의 몇 배’에 거래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PER이 높으면 성장 기대가 크거나, 반대로 고평가(over-valued) 돼 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배당수익률은 주가 대비 연간 배당금 비율로, 투자자가 얻을 수 있는 ‘현금 흐름’의 크기를 보여준다.


전망 및 시사점

결국 RBC 보고서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익률 회복”환율·원가·공급망 등 외부 요인 덕분에 단기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매출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가 리레이팅이나 장기적인 기업 가치 상승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소비 심리 위축, 생활비 상승, 세금 인상 등 구조적 환경 변화 속에서 유럽 리테일 기업들이 얼마나 빠르게 제품·가격·온라인·옴니채널 전략을 혁신해 고객 지갑을 다시 열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