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컴퓨트 대공황’ 시대의 서막
월가가 ‘컴퓨트 인플레’라 부르는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챗GPT로 불붙은 대규모 언어모델(LLM) 경쟁은 이제 하이퍼스케일러와 반도체 업체, 심지어 전력·부동산·정책 당국까지 끌어들이며 거대한 투자 전쟁으로 번졌다. OpenAI·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메타가 쏟아부을 설비투자(CAPEX)는 향후 10년간 8~10조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등장한다. 이는 냉전 시절 미·소 국방비 총액과 맞먹는 규모다. 필자는 이 흐름이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에너지–자본–산업’ 삼각 구도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1. 투자 전쟁의 구조 – 누가, 왜, 얼마나 쓰나?
1) 하이퍼스케일러 CAPEX 가속도
| 기업 | 2024 CAPEX(억$) | 2026E CAPEX(억$) | 3년 CAGR |
|---|---|---|---|
| 마이크로소프트 | 912 | 1,250 | 11.2% |
| 알파벳 | 824 | 926 | 6.0% |
| 아마존 | 1,170 | 1,260 | 3.0% |
| 메타 | 684 | 970 | 18.0% |
OpenAI의 ‘1 조 달러 슈퍼컴’ 청사진은 사실상 벤더 길들이기에 가깝다. “우리 요구를 만족시키려면 이 정도 규모의 컴퓨트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시장에 던져, 반도체·부품·전력 생태계를 줄 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도 뒤질 수 없다. 2025~2026년 CAPEX 가이던스 상향은 경쟁 기업의 ‘추격 비용’을 키워 수익 전환 시점을 멀어지게 만든다. 시장 선도자가 규모의 경제=시간의 경제를 동시에 확보하는 셈이다.
2) 반도체 공급망 병목과 ‘풀 랙(full-rack)’ 경쟁
- 엔비디아 : GB200·GB300 등 풀 랙 시스템으로 연산·메모리·인터커넥트를 번들 판매.
- AMD MI300 → MI400 : 동일 구조 추종, DOE·사우디 계약으로 볼륨 확보.
- 퀄컴·인텔 : 추론(Influence) 특화 칩·전력 최적화로 ‘틈새+저가’ 공략.
GPU 공급 부족이 풀릴 경우 가격 붕괴가 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 그러나 전력·냉각·메모리 대역폭 병목이 뒤이어 터질 공산이 크다. 따라서 생산성 당 와트(W), TOPS/$(연산/달러) 지표가 밸류에이션 척도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2. 전력 인프라 — ‘빅테크 vs. 그리드’ 충돌
미국만 보더라도 상위 5개 클라우드 사업자의 전력 수요는 2023년 28TWh에서 2028년 110TWh로 4배 급증이 예상된다. 이는 뉴욕주 연간 소비전력과 유사한 규모다. 결과적으로 :
- 전력 PPA 단가 상승 → 재생에너지 IRR 개선 → GreenCapex 투자 붐.
- 분산형 가스 터빈 확대 → SLB·베이커휴즈 ‘데이터센터 발전’ 시장 진입.
- 전력 정책 : 배전망 확충·송전 사용료 인상·원전 수명연장 카드 부상.
특히 미국 동남부–텍사스–애리조나는 태양광·부동산·세제 혜택이 겹치며 데이터센터 ‘라스트-마일’ 투자 후보지로 급부상했다. 이는 지역 경제·부동산·지방정부 세수까지 바꿔 놓을 변수다.
3. 자본시장 — ‘AI 국채’와 대체자산 붐
하이퍼스케일러의 CAPEX는 대부분 자체 현금흐름으로 충당되지만, 민간·공공 파트너십(PPP) 모델이 확산되면서 전용 AI-인프라 채권이 등장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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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PE)·인프라 펀드는 ‘AI+전력’ 교차 지점에 집중한다. 블랙스톤·KKR 등이 데이터센터 캠퍼스·수소 연료전지·액화 냉각 스타트업에 베팅 중이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도 리츠(REIT)·전력 M LP·인프라 ETF를 통해 분산투자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4. 산업·노동시장 파급 — ‘캘리포니아 → 플라이오버’ 인력 이동
① 부품·조립 네어쇼어링 : 칩 패키징·파워모듈 조립이 멕시코 북부·텍사스로 이전.
② 데이터센터 오퍼레이터 : 냉각·전력·보안 전문 인력 부족 → 평균 임금 +25% 전망.
③ 전문 인공지능 연구인력 : ‘OpenAI ≒ 실리콘밸리 독식’ 구도가 영국·프랑스·캐나다로 분산.
결과적으로 ‘Super-Tier 1’ 대학 → 빅테크 → 스타트업 일변도였던 인재 흐름이 에너지콜리전(Energy-Tech Hub)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5. 리스크 요인과 정책 쟁점
- 금리·유동성 리스크 : Fed의 FFR 4%대 고착 시 WACC 상승 → ROI 2~3년 지연.
- 규제 AI 가이드라인 : EU AI Act·미국 Executive Order 등이 ‘대규모 모델 훈련 라이선스제’ 도입 시 CAPEX 회계처리 불확실성.
- 칩 공급 지연 : CoWoS 용 HBM 공급 부족, ASML EUV 장비 리드타임 18개월.
- 탄소세·RE100 규제 : 데이터센터 Scope 2 배출 강제 → 오프셋 비용 가파른 증가.
■ 결론 및 투자 전략 – 무엇을 사야 하나?
1) 전력·냉각 네트워크 ‘픽 앤드 쇼블(Pick & Shovel)’
- SLB·베이커휴즈 : 가스 터빈·모듈형 발전 패키지.
- 에머슨·스노우플레이크 : 데이터 수위·냉각 AI 최적화 SW.
- 플러그파워·블룸에너지 : 수소 연료전지 UPS 시스템.
2) ‘AI 인프라 REIT’와 전력 MLP
- 지오디지털 리츠 (GDL REIT) : 캠퍼스형 데이터센터 임대, FFO 성장 + 배당 3% 선.
- NextEra Partners : 풍력·태양광 PPA로 ‘AI 24/7 전력 계약’ 확대.
3) 국채·회사채 조합
10년 TIPS + BBB급 인프라채 비중을 60:40으로 가져가면 인플레 헤지와 하이일드 스프레드 축소 수혜를 동시에 노릴 수 있다.
◎ 맺음말 — ‘AI 르네상스’의 두 얼굴
제2차 산업혁명이 증기기관과 전력을 기반으로 ‘시간–공간 제약’을 줄였다면, AI 인프라 전쟁은 ‘연산(Compute) 제약’을 제거해 경제·사회 구조를 다시 짤 것이다. 그러나 ‘전력·자본·인력’의 희소성을 풀기 전까지, 발전 비용과 데이터 윤리라는 두 얼굴을 동반한다.
투자자는 1) 전력-연산 비효율을 줄이는 솔루션, 2) CAPEX 부담을 빌려주는 금융 플랫폼, 3) 분산형 인력·부품 생태계에 주목해야 한다. ‘보이는 슈퍼컴퓨터’보다 ‘숨은 밸브’가 중장기 알파(α)를 제공할 확률이 높다. 2020년대 후반, 세계 자본시장은 ‘모빌리티’에서 ‘모빌리티 + 에너지 + 연산’ 복합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 지각변동 한가운데에서, 한국 투자자 역시 산업사슬을 촘촘히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이중석












